비닐 봉지가 터졌다우르르 교문을 빠져나오는 여고생들처럼여기저기 흩어진 복숭아사내는 자전거를 세우고/ 떨어진 것들을 줍는다길이가 다른 두 다리로아까부터 사내는/ 비스듬히 페달을 밟고 있던 중이었다허리를 굽혀 복숭아를 주울 때마다울상이던 바지주름이 잠깐 펴지기도 했다퇴근길에 가게에 들러/ 털이 보송보송한 것들만 고르느라봉지가 새는지도 몰랐던 모양이다알알이 쏟아져 멍든 복숭아뱉은 씨처럼 직장에서 팽개쳐질 때그리하여 몇 달을 거리에서 보낼 때 만난어딘가에 부딪쳐 짓무른 얼굴들/ 사내는 아스팔트 위에서그것들을 가지런히 모아두고/ 한참을 두리번거렸다얼마 만에 사들고 가는 과일인데흠집이 있으면 좀 어떤가식구들은 둥그렇게 모여/ 뚝뚝 흐르는 단물까지 빨아먹을 것이다사내는 겨우 복숭아들을 싣고/ 페달을 힘꼇 밟는다자전거 바퀴가 탱탱하다<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부족한 것은 불편하다. 그러나 불편한 것은 부족하지 않다. 이것은 사는 동안 느낀 깨달음이다. 있다가 없는 것은 부족한 것이지만 이미 없어서 불편한 것은 부족함을 모른다는 의미일 수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부족’은 바라는 것이 있다는 말이고 ‘불편’은 바라는 수준을 넘어섰다라는 의미로 나름의 해석을 내린 것이다. 여기서 사내는 ‘길이가 다른 두 다리’로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터진 봉지 사이로 떨어져 흠집 난 복숭아를 주우면서 자신의 현재 처지를 잠시 상기한다. 직장이 없어‘몇 달을 거리에서 보낼 때’ 만났던 ‘짓무른 얼굴들’이 떠오른다. ‘멍든 복숭아’가 그들처럼 보인 것이다. 마치 그 당시의 사내도 ‘멍든 복숭아’와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흠집이 있으면 좀 어떤가’ 사내는 상황을 포용한다. 자신을 받아들이듯 ‘복숭아’를 담는다. 모처럼 얻은 직장에서의 퇴근길에 모처럼 만에 사들고 가는 복숭아, 이것을 식구들은 둥그렇게 모여 뚝뚝 흐르는 단물까지 ‘맛있게 먹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즐겁기만 하다. 힘이 되는 원천. 함께 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삶을 ‘탱탱’하게 한다는 것. 올해 한가위는 구름 속에 숨은 달을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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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境의 아침>복숭아/ 서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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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境의 아침>복숭아/ 서광일

경상매일신문 기자 gsm333@hanmail.net 입력 2022/09/12 21:30

비닐 봉지가 터졌다
우르르 교문을 빠져나오는 여고생들처럼
여기저기 흩어진 복숭아
사내는 자전거를 세우고/ 떨어진 것들을 줍는다

길이가 다른 두 다리로
아까부터 사내는/ 비스듬히 페달을 밟고 있던 중이었다
허리를 굽혀 복숭아를 주울 때마다
울상이던 바지주름이 잠깐 펴지기도 했다
퇴근길에 가게에 들러/ 털이 보송보송한 것들만 고르느라
봉지가 새는지도 몰랐던 모양이다

알알이 쏟아져 멍든 복숭아
뱉은 씨처럼 직장에서 팽개쳐질 때
그리하여 몇 달을 거리에서 보낼 때 만난
어딘가에 부딪쳐 짓무른 얼굴들/ 사내는 아스팔트 위에서
그것들을 가지런히 모아두고/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얼마 만에 사들고 가는 과일인데

흠집이 있으면 좀 어떤가
식구들은 둥그렇게 모여/ 뚝뚝 흐르는 단물까지 빨아먹을 것이다
사내는 겨우 복숭아들을 싣고/ 페달을 힘꼇 밟는다

자전거 바퀴가 탱탱하다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박모니카 수필가

부족한 것은 불편하다. 그러나 불편한 것은 부족하지 않다. 이것은 사는 동안 느낀 깨달음이다. 있다가 없는 것은 부족한 것이지만 이미 없어서 불편한 것은 부족함을 모른다는 의미일 수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부족’은 바라는 것이 있다는 말이고 ‘불편’은 바라는 수준을 넘어섰다라는 의미로 나름의 해석을 내린 것이다.
여기서 사내는 ‘길이가 다른 두 다리’로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터진 봉지 사이로 떨어져 흠집 난 복숭아를 주우면서 자신의 현재 처지를 잠시 상기한다. 직장이 없어‘몇 달을 거리에서 보낼 때’ 만났던 ‘짓무른 얼굴들’이 떠오른다. ‘멍든 복숭아’가 그들처럼 보인 것이다. 마치 그 당시의 사내도 ‘멍든 복숭아’와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흠집이 있으면 좀 어떤가’ 사내는 상황을 포용한다. 자신을 받아들이듯 ‘복숭아’를 담는다. 모처럼 얻은 직장에서의 퇴근길에 모처럼 만에 사들고 가는 복숭아, 이것을 식구들은 둥그렇게 모여 뚝뚝 흐르는 단물까지 ‘맛있게 먹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즐겁기만 하다. 힘이 되는 원천. 함께 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삶을 ‘탱탱’하게 한다는 것.
올해 한가위는 구름 속에 숨은 달을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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