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있어도 너랑 같이 있어 줄게너만은 절대 내 곁을 떠나지 않아<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그림자’의 ‘약속’은 절대적이다. 변하지 않는다는 말.사람이라는 존재가 있는 한 그림자도 있다. 단지 햇볕이 있을 때만-이라는 조건은 있다. 햇볕이 없을 때는 보이지 않을 뿐이다. 절대의 개념은 ‘그 무엇에도 의존, 제약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면서 모든 것을 뛰어넘어 있는 것. 상대하여 견줄 만한 다른 것이 없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절대’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절대자’라는 언어는 ‘神’에게만 통한다.그럼에도 그림자와의 약속은 감히 절대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모든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의 총칭’인 世上에서 변함없이 그리고 한결같이 일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가족을 제외하고 단 세 명만 있어도 그 사람은 성공한 사람으로 본다고 한다. 중견 사업가로 탄탄히 자리매김한 한 분이 찾아와서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금까지 함께 사업을 일궈온 친구가 어느 날 자기 사업체를 차려 나갔다는 것이었다.매우 마음 아파했다. 그리고 괘씸한 마음이 든다고도 했다. 그래서 내가 질문했다. 피해를 주지는 않았느냐고 했다. 아니라고 했다. 나간다고 미리 말했느냐고 했다. 말하더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처음에는 서운하겠지만 둘이서 손을 잡고 어려운 일을 상의해가면서 경영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그렇게 할 수 있겠다고 했다. 그러면 잘된 일이라고 결론을 내주었다. 어차피 끝까지 같이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적은 만들지 말아야한다는 것이 내 소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가 해꼬지를 안한다는 조건이라면 그렇다.역사적으로도 모든 불미스런 일들은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사람으로부터 일어났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즉 시저가 권력이 커져가는 것을 시기한 원로원은 시저의 심복이었던 데시무스 브루투스를 보내어 그를 살해했다. 믿었던 신복에게 찔린 시저는 죽어가면서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다윗 역시 특별한 애정과 신임을 주었던 다윗의 최고 책사였던 아히도벨과 그의 친아들 압살롬이 모반하여 왕권을 탈취하기위한 다윗 암살계획을 알게 되었고 박정희대통령도 가장 가까이 지내던 사람의 총탄에 쓰러졌다. 예수님도 열두제자 중 한 명의 배반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인간이 가진 시기와 질투로 행해진 ‘잔인’ 이라는 이름.神은 한 사람에게 하나씩 그림자를 만들어 주셨다. 인간의 곁을 떠나지 않게 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는 의미였을까. 어두운 생각의 끝장인 시기와 질투를 버리고 밝을 때 나온 그림자를 보며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되라는 의미였을까. 다시 세상을 덮치려는 ‘힌남노 태풍’은 무엇에 분노한 것일까? <수필가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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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매일신문

<詩境의 아침>그림자 약속/ 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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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境의 아침>그림자 약속/ 이안

경상매일신문 기자 gsm333@hanmail.net 입력 2022/09/05 21:30

무슨 일이 있어도 너랑 같이 있어 줄게

너만은 절대 내 곁을 떠나지 않아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박모니카 수필가

‘그림자’의 ‘약속’은 절대적이다. 변하지 않는다는 말.
사람이라는 존재가 있는 한 그림자도 있다. 단지 햇볕이 있을 때만-이라는 조건은 있다. 햇볕이 없을 때는 보이지 않을 뿐이다.

절대의 개념은 ‘그 무엇에도 의존, 제약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면서 모든 것을 뛰어넘어 있는 것. 상대하여 견줄 만한 다른 것이 없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절대’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절대자’라는 언어는 ‘神’에게만 통한다.
그럼에도 그림자와의 약속은 감히 절대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모든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의 총칭’인 世上에서 변함없이 그리고 한결같이 일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가족을 제외하고 단 세 명만 있어도 그 사람은 성공한 사람으로 본다고 한다.
중견 사업가로 탄탄히 자리매김한 한 분이 찾아와서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금까지 함께 사업을 일궈온 친구가 어느 날 자기 사업체를 차려 나갔다는 것이었다.
매우 마음 아파했다. 그리고 괘씸한 마음이 든다고도 했다. 그래서 내가 질문했다. 피해를 주지는 않았느냐고 했다. 아니라고 했다. 나간다고 미리 말했느냐고 했다. 말하더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처음에는 서운하겠지만 둘이서 손을 잡고 어려운 일을 상의해가면서 경영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그렇게 할 수 있겠다고 했다. 그러면 잘된 일이라고 결론을 내주었다. 어차피 끝까지 같이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적은 만들지 말아야한다는 것이 내 소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가 해꼬지를 안한다는 조건이라면 그렇다.

역사적으로도 모든 불미스런 일들은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사람으로부터 일어났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즉 시저가 권력이 커져가는 것을 시기한 원로원은 시저의 심복이었던 데시무스 브루투스를 보내어 그를 살해했다. 믿었던 신복에게 찔린 시저는 죽어가면서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다윗 역시 특별한 애정과 신임을 주었던 다윗의 최고 책사였던 아히도벨과 그의 친아들 압살롬이 모반하여 왕권을 탈취하기위한 다윗 암살계획을 알게 되었고 박정희대통령도 가장 가까이 지내던 사람의 총탄에 쓰러졌다. 예수님도 열두제자 중 한 명의 배반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인간이 가진 시기와 질투로 행해진 ‘잔인’ 이라는 이름.

神은 한 사람에게 하나씩 그림자를 만들어 주셨다. 인간의 곁을 떠나지 않게 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는 의미였을까. 어두운 생각의 끝장인 시기와 질투를 버리고 밝을 때 나온 그림자를 보며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되라는 의미였을까.
다시 세상을 덮치려는 ‘힌남노 태풍’은 무엇에 분노한 것일까? <수필가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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