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산벗 3명은 전북 완주와 충남 논산과 금산에 위치한 대둔산을 다녀왔다. 이십대 가을, 대둔산에 온 적이 있는데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암산을 오르면서 힘들었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아침 7시에 만나 김밥을 준비해서 7시 20분께 포항을 벗어난다. 날씨는 맑고 포근하다. 마침 이날은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이다. 일행을 태운 차는 경북과 대구를 지나 추풍령 휴게소에서 잠시 멈추고, 호두과자와 음료수를 사서 먹으며 쉬었다가 간다. 이윽고 대전을 지나 논산과 계룡 중간지점인 모천 교차로에서 우회전해서 논산 양촌면으로 진입한다. 오전 10시 20분경 황산벌로를 따라 가는데 길가에 커피체험농원과 드립커피전문점이라는 상호가 눈에 띄었다. 산벗 일행은 달리던 차를 되돌려 커피도 한 잔 하고 등산로도 물어볼 겸 주차를 하고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에는 여주인 혼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커피체험농장과 붙은 이층 흑백벽돌로 지어진 카페의 상호를 보니 ‘강순후커피농장커피’ 라고 적혀있다. 여주인은 이곳에서 커피 묘목 분양과 다양한 커피 체험까지 한다고 했다. 주방에 진열된 일반 커피류와 유리 진열대 속에 있는 병에 담긴 커피제품들, 통나무 탁자와 의자, 싱싱한 커피나무에 달린 초록 열매는 실내 분위기를 한층 환하게 했다. 주인이 직접 키운 커피열매로 브랜딩한 커피를 음미하는데, 열매껍질로 만든 붉은 빛이 나는 카스카라(cascara)와 완주의 특산품 흑곶감도 맛보라고 내놓았다. 낯선 곳에서 특별한 고민 없이 커피를 마시면서 느긋함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시간의 여유가 주는 행복이다. 카페에 앉아 잠깐 커피를 즐기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선망을 넘어 꿈일 수도 있다. 아프지 않고 어제처럼 별일 없이 맞을 수 있는 오늘 이 시간이 때로는 가장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커피농장 여주인과 짧은 대화를 끝내고 인근에 있는 안심사로 향한다.   안심사 일주문을 지나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20분이다. 안심사(安心寺)는 전라북도 완주군에 있는 사찰로, 638년(선덕여왕 7년)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알려져 있다. 절 구경은 하산해서 하기로 하고 주차장 좌측 팻말을 따라 지장암, 약사암 방향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안심사, 금오봉, 서각봉, 대둔산(마천대) 찍고 원점회귀하는 코스다. 비스듬한 산길을 천천히 걸어가다 보니 쌍바위와 지장암 전설이 안내판에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글자의 색깔이 벗겨져 읽기가 힘들다. 산죽(조릿대)지대를 지나 휀스를 잡고 비탈길을 계속 올라가니 큰 돌무더기가 쌓여있고 지장폭포에 얽힌 전설이 안내판에 적혀 있다. 그런데 지장폭포는 없고 커다란 바위만 서 있다. 산비탈을 묵묵히 오르다 보니 해발 690m다. 군데군데 잔설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어 미끄럽다. 지금부터는 가파른 급경사다. 날씨가 포근해서 그런지 비탈을 계속 치고 올라가니 땀이 이마를 타고 스멀스멀 흘러내린다. 스틱에 힘을 주어 한 발 한 발 걷는다. 숨은 차지만 고개를 들어보니 암봉의 위용이 대단하다. 안심사에서 대둔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는 거의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 같았다. 길도 찾기가 어렵고 사람이 다닌 흔적이 거의 없는 험한 비탈길이다. 이 코스는 암릉과 급경사로 길이 다듬어지지 않아 오르기가 몹시 까다롭다. 수락계곡에서 오르는 삼거리에 도착해서 팻말을 보니 안심사에서 2.3Km 올라왔다. 해발830m, 마천대 정상까지 1.15Km 남았다.   능선에 올라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산세가 장난이 아니다. 산이 첩첩이 겹쳐지는 산그리메는 지리산과 덕유산에 견줄만하다. 암릉을 조심조심 넘어서 건너편을 보니 대둔산 정상이 가까이에 있다. 평평하고 넓은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정면에 늘어선 기암괴석들과 산세를 보며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김밥과 숭늉, 과일을 꺼내놓고 맛있게 점심을 먹고 인중샷도 찍는다.점심을 먹으며 30여 분을 쉬고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조금 걸으니 안심사에서 3.4Km다. 암봉을 내려가다가 다시 조금 더 올라가니 평상이 놓여있고 눈앞에 보이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오르니 드디어 개척탑이 세워진 마천대(摩天臺), 대둔산(878M)이다. 아래를 보니 케이블카가 마천대를 향해 올라오고 있다. 뭉개구름 위로 밝은 햇살이 쏟아지고 역광 속에서 산그리메가 물결친다.  지리산과 덕유산처럼 큰 산은 아니지만 산이 첩첩이 펼쳐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정상에서 몇 장의 개인 인생샷을 찍고 단체 사진도 찍는다.정상에서 바라본 대둔산의 경관은 정말 뛰어나다. 푸른 하늘에 듬성듬성 떠 있는 흰구름들, 그 아래에 겹겹이 솟아있는 암봉들, 푸른 창공을 배경으로 희붉은 바위에 자라는 작은 소나무들은 가히 경이로울 뿐이다. 일행은 출발지인 안심사로 하산을 서두른다. 올라올 때의 시간을 생각하면 갈 길이 바쁘다. 부지런히 왔던 길을 되짚어가다가 조릿대 숲길에서 아뿔사, 길을 잃고 계곡으로 빠졌다. 길을 찾지 못하고 1시간여를 헤매다가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버렸다. 안심사 코스로 가기에는 시간상 어렵고, 가파른 비탈길을 어둠 속에 내려가기는 위험이 따를 것 같아 일단 마천대(정상)로 다시 방향을 잡았다.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엄홍길 산악인은 그가 쓴 책에서 “내가 산에서 배운 것은 기다릴 줄 아는 지혜와 포기할 줄 아는 용기다”라고 했다. 의욕이 앞서 일행이 안심사 방향으로 내려갔을 경우 어두운 산에서 길을 잃고 가파른 비탈길에서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무턱대고 밀고 나가다가는 자칫 위험할 수도 있기에 포기를 한다. 가장 중요한 산은 에베레스트가 아닌 하산(下山)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산행과 인생은 준비한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늘 변수가 따른다. 정해진 답이 없다. 산벗 일행은 케이블카 주차장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가거나 아니면 걸어서 대둔산 도립공원 주차장으로 가기로 했다. 정상에서 150m정도 내려오니 상부 케이블카 주차장이 500m 남았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케이블카는 이미 운행이 끊겼고 금강구름다리(금강현수교)까지는 500m 남았다. 주차장은 4.2Km 남은 거리다. 이제는 걸어서 내려갈 수밖에 없다. 가파른 돌계단을 쉬지않고 내려가니 약수정 휴게소가 나온다. 주인장을 불렀으나 대답이 없다. 약수정 휴게소에서 250m 정도 내려가면 삼선계단이다. 삼선계단 아래 철계단을 올라 흔들거리는 금강구름다리 위에서 수직으로 오르는 삼선계단을 배경으로 각자 인증샷과 단체 사진을 남긴다. 대둔산의 명소로 불리는 금강구름다리는 1985년 길이 50m, 높이 81m, 폭 1.2m로 세워졌으며, 삼선계단으로 가는 중간에 있다. 구름다리를 빠져나와 돌계단을 따라서 빠르게 내려간다.  동심정 휴게소를 지나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하다. 돌계단이 미끄러워 다칠 우려가 있어 조심해서 내려온다. 머리와 얼굴에 땀이 흐른다. 열심히 내려오니 정자가 나오고 그 앞에 동심바위가 있다. 신라 문무왕 때 국사 원효대사는 이 바위를 보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3일을 바위 아래서 지냈다고 한다. 동심바위를 지나니 등산로 입구 120m의 팻말이 보인다. 조금 더 내려오니 동학농민혁명 대둔산 항쟁전적비가 나온다.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등산로를 벗어나니 대둔산 힐링센터다. 돌비석에는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는 금두꺼비 돌할머니의 집”리라고 새겨져 있다, 하대 케이블카 주차장에 도착하니 저녁 6시 30분이었다. 정상에서 하산한 시간을 보니 1시간 가까이 되었다. 오전부터 산에서 보낸 시간을 생각해보니 7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오를 때보다 하산 길은 아무래도 여유로웠다. 즐겁게 산에 올라서 받은 덤 때문이다. 내려가다보면 길이 끝날 것임을 알기에 오를 때보다 힘이 덜든다. 택시를 불러서 출발지인 안심사 주차장으로 가려고 했으나 택시는 없었고, 막차 시내버스도 이미 끊겼다. 날은 어둡고 교통편은 없고 해서 순간 일행은 당황스러웠다. 그때 주차장 인근에서 곶감을 판매하고 있는 사장이 자리를 비웠다가 가게로 오고 있었다. 안심사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물었더니 친절하게도 자가용으로 20~30분 정도 걸리는데 그냥 태워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고마운 마음에 완주의 특산물인 흑곶감 3봉지를 사고, 선배는 선물할 데가 있다면서 비싼 흑곶감 1통을 더 구입했다. 친절한 사장님 덕분에 안심사 주차장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모두 감사인사를 하고 전화번호도 주고 받았다.    하산길에 안심사를 보고 가겠다던 생각은 사라지고, 곧바로 차는 논산 양촌면 식당으로 향했다. 자칫하다가 저녁도 놓칠 수 있어서다. 산에 갔다가 저녁시간에 내려와서 식당이 없어 고생한 기억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로변에 위치한 고향칼국수 식당에 들러 얼큰칼국수와 만두를 시켜 먹었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꿀맛이었다. 얼큰칼국수는 매콤해서 중독성이 있다. 가던 길을 되돌아오면서 늦은 시간 와촌휴게소에 들러 음료수 한 병씩 마시고 포항에 도착하니 밤 10시다. 일행들과 헤어져 귀가하니 밤 10시 30분이었다. 대둔산은 예로부터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렸고, 제1경은 암봉들과 어울린 오색단풍을 꼽는다. 늦가을 풍경이 환상적이라고 한다. 대둔산의 길은 거칠지만 산중턱까지 케이블카가 놓여 남녀노소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는 대둔산 케이블카 입구 하대 매표소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마천대(정상)을 거쳐 칠성봉, 칠성봉 전망대, 장군봉, 상대 매표소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팬데믹 이후 산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등산장비도 몇 년 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으며 등산복장도 다양해졌다.    전문산악인이 아닌 이상 산을 찾는 사람은 개인의 취미나 건강을 위해서 일 것이다. 선배는 힘든 산을 오를 때나 전망이 뛰어난 곳에서는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난다고 말한다. 자신의 두 발로 걸어서 높은 산을 오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할 일이다. 스스로 감격할 수밖에 없다. 등산은 집을 떠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 비로소 끝난다. 7여 년 동안 산을 오르면서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고 다녔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없이 세월을 보낸 것은 아닌가 싶어서 산행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각자의 체험은 자신의 것이고 언제나 소중하다. 감정이 메마르고 사색이 빈곤한 삶은 생각만 해도 삭막하다.하루를 되돌아보면서 지난 주 한 지역신문에 능인스님이 쓴 종교칼럼을 떠올려본다. “지금 일어나는 일을 잘 기록하는 것, 기록된 경험을 잘 보존하는 것, 그리고 기록을 통해 잘 재현하는 것, 이것이 역사입니다.”    오늘도 대둔산행에 대한 기록을 남기면서 나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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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둔산, 뭉개구름아래 산그리메가 아름다운..
오피니언

<편집국에서> 대둔산, 뭉개구름아래 산그리메가 아름다운

경상매일신문 기자 gsm333@hanmail.net 입력 2023/02/08 21:50
허경태 편집국장


지난 주말, 산벗 3명은 전북 완주와 충남 논산과 금산에 위치한 대둔산을 다녀왔다. 이십대 가을, 대둔산에 온 적이 있는데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암산을 오르면서 힘들었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아침 7시에 만나 김밥을 준비해서 7시 20분께 포항을 벗어난다. 날씨는 맑고 포근하다. 마침 이날은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이다. 일행을 태운 차는 경북과 대구를 지나 추풍령 휴게소에서 잠시 멈추고, 호두과자와 음료수를 사서 먹으며 쉬었다가 간다. 이윽고 대전을 지나 논산과 계룡 중간지점인 모천 교차로에서 우회전해서 논산 양촌면으로 진입한다. 오전 10시 20분경 황산벌로를 따라 가는데 길가에 커피체험농원과 드립커피전문점이라는 상호가 눈에 띄었다. 산벗 일행은 달리던 차를 되돌려 커피도 한 잔 하고 등산로도 물어볼 겸 주차를 하고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에는 여주인 혼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커피체험농장과 붙은 이층 흑백벽돌로 지어진 카페의 상호를 보니 ‘강순후커피농장커피’ 라고 적혀있다. 여주인은 이곳에서 커피 묘목 분양과 다양한 커피 체험까지 한다고 했다. 주방에 진열된 일반 커피류와 유리 진열대 속에 있는 병에 담긴 커피제품들, 통나무 탁자와 의자, 싱싱한 커피나무에 달린 초록 열매는 실내 분위기를 한층 환하게 했다. 주인이 직접 키운 커피열매로 브랜딩한 커피를 음미하는데, 열매껍질로 만든 붉은 빛이 나는 카스카라(cascara)와 완주의 특산품 흑곶감도 맛보라고 내놓았다. 낯선 곳에서 특별한 고민 없이 커피를 마시면서 느긋함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시간의 여유가 주는 행복이다. 카페에 앉아 잠깐 커피를 즐기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선망을 넘어 꿈일 수도 있다. 아프지 않고 어제처럼 별일 없이 맞을 수 있는 오늘 이 시간이 때로는 가장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커피농장 여주인과 짧은 대화를 끝내고 인근에 있는 안심사로 향한다.

 

안심사 일주문을 지나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20분이다. 안심사(安心寺)는 전라북도 완주군에 있는 사찰로, 638년(선덕여왕 7년)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알려져 있다. 절 구경은 하산해서 하기로 하고 주차장 좌측 팻말을 따라 지장암, 약사암 방향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안심사, 금오봉, 서각봉, 대둔산(마천대) 찍고 원점회귀하는 코스다. 비스듬한 산길을 천천히 걸어가다 보니 쌍바위와 지장암 전설이 안내판에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글자의 색깔이 벗겨져 읽기가 힘들다. 산죽(조릿대)지대를 지나 휀스를 잡고 비탈길을 계속 올라가니 큰 돌무더기가 쌓여있고 지장폭포에 얽힌 전설이 안내판에 적혀 있다. 그런데 지장폭포는 없고 커다란 바위만 서 있다. 산비탈을 묵묵히 오르다 보니 해발 690m다. 군데군데 잔설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어 미끄럽다. 지금부터는 가파른 급경사다. 날씨가 포근해서 그런지 비탈을 계속 치고 올라가니 땀이 이마를 타고 스멀스멀 흘러내린다. 스틱에 힘을 주어 한 발 한 발 걷는다. 숨은 차지만 고개를 들어보니 암봉의 위용이 대단하다. 안심사에서 대둔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는 거의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 같았다. 길도 찾기가 어렵고 사람이 다닌 흔적이 거의 없는 험한 비탈길이다. 이 코스는 암릉과 급경사로 길이 다듬어지지 않아 오르기가 몹시 까다롭다. 수락계곡에서 오르는 삼거리에 도착해서 팻말을 보니 안심사에서 2.3Km 올라왔다. 해발830m, 마천대 정상까지 1.15Km 남았다.

 

능선에 올라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산세가 장난이 아니다. 산이 첩첩이 겹쳐지는 산그리메는 지리산과 덕유산에 견줄만하다. 암릉을 조심조심 넘어서 건너편을 보니 대둔산 정상이 가까이에 있다. 평평하고 넓은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정면에 늘어선 기암괴석들과 산세를 보며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김밥과 숭늉, 과일을 꺼내놓고 맛있게 점심을 먹고 인중샷도 찍는다.점심을 먹으며 30여 분을 쉬고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조금 걸으니 안심사에서 3.4Km다. 암봉을 내려가다가 다시 조금 더 올라가니 평상이 놓여있고 눈앞에 보이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오르니 드디어 개척탑이 세워진 마천대(摩天臺), 대둔산(878M)이다. 아래를 보니 케이블카가 마천대를 향해 올라오고 있다. 뭉개구름 위로 밝은 햇살이 쏟아지고 역광 속에서 산그리메가 물결친다. 


↑↑ 대둔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모습.

지리산과 덕유산처럼 큰 산은 아니지만 산이 첩첩이 펼쳐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정상에서 몇 장의 개인 인생샷을 찍고 단체 사진도 찍는다.정상에서 바라본 대둔산의 경관은 정말 뛰어나다. 푸른 하늘에 듬성듬성 떠 있는 흰구름들, 그 아래에 겹겹이 솟아있는 암봉들, 푸른 창공을 배경으로 희붉은 바위에 자라는 작은 소나무들은 가히 경이로울 뿐이다. 일행은 출발지인 안심사로 하산을 서두른다. 올라올 때의 시간을 생각하면 갈 길이 바쁘다. 부지런히 왔던 길을 되짚어가다가 조릿대 숲길에서 아뿔사, 길을 잃고 계곡으로 빠졌다. 길을 찾지 못하고 1시간여를 헤매다가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버렸다. 안심사 코스로 가기에는 시간상 어렵고, 가파른 비탈길을 어둠 속에 내려가기는 위험이 따를 것 같아 일단 마천대(정상)로 다시 방향을 잡았다.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엄홍길 산악인은 그가 쓴 책에서 “내가 산에서 배운 것은 기다릴 줄 아는 지혜와 포기할 줄 아는 용기다”라고 했다. 의욕이 앞서 일행이 안심사 방향으로 내려갔을 경우 어두운 산에서 길을 잃고 가파른 비탈길에서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무턱대고 밀고 나가다가는 자칫 위험할 수도 있기에 포기를 한다. 가장 중요한 산은 에베레스트가 아닌 하산(下山)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 서각봉에서 바라본 대둔산.


산행과 인생은 준비한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늘 변수가 따른다. 정해진 답이 없다. 산벗 일행은 케이블카 주차장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가거나 아니면 걸어서 대둔산 도립공원 주차장으로 가기로 했다. 정상에서 150m정도 내려오니 상부 케이블카 주차장이 500m 남았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케이블카는 이미 운행이 끊겼고 금강구름다리(금강현수교)까지는 500m 남았다. 주차장은 4.2Km 남은 거리다. 이제는 걸어서 내려갈 수밖에 없다. 가파른 돌계단을 쉬지않고 내려가니 약수정 휴게소가 나온다. 주인장을 불렀으나 대답이 없다. 약수정 휴게소에서 250m 정도 내려가면 삼선계단이다. 삼선계단 아래 철계단을 올라 흔들거리는 금강구름다리 위에서 수직으로 오르는 삼선계단을 배경으로 각자 인증샷과 단체 사진을 남긴다. 대둔산의 명소로 불리는 금강구름다리는 1985년 길이 50m, 높이 81m, 폭 1.2m로 세워졌으며, 삼선계단으로 가는 중간에 있다. 구름다리를 빠져나와 돌계단을 따라서 빠르게 내려간다. 

↑↑ 대둔산 금강구름다리(금강현수교).

동심정 휴게소를 지나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하다. 돌계단이 미끄러워 다칠 우려가 있어 조심해서 내려온다. 머리와 얼굴에 땀이 흐른다. 열심히 내려오니 정자가 나오고 그 앞에 동심바위가 있다. 신라 문무왕 때 국사 원효대사는 이 바위를 보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3일을 바위 아래서 지냈다고 한다. 동심바위를 지나니 등산로 입구 120m의 팻말이 보인다. 조금 더 내려오니 동학농민혁명 대둔산 항쟁전적비가 나온다.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등산로를 벗어나니 대둔산 힐링센터다. 돌비석에는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는 금두꺼비 돌할머니의 집”리라고 새겨져 있다, 하대 케이블카 주차장에 도착하니 저녁 6시 30분이었다. 정상에서 하산한 시간을 보니 1시간 가까이 되었다. 오전부터 산에서 보낸 시간을 생각해보니 7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오를 때보다 하산 길은 아무래도 여유로웠다. 즐겁게 산에 올라서 받은 덤 때문이다. 내려가다보면 길이 끝날 것임을 알기에 오를 때보다 힘이 덜든다. 택시를 불러서 출발지인 안심사 주차장으로 가려고 했으나 택시는 없었고, 막차 시내버스도 이미 끊겼다. 날은 어둡고 교통편은 없고 해서 순간 일행은 당황스러웠다. 그때 주차장 인근에서 곶감을 판매하고 있는 사장이 자리를 비웠다가 가게로 오고 있었다. 안심사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물었더니 친절하게도 자가용으로 20~30분 정도 걸리는데 그냥 태워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고마운 마음에 완주의 특산물인 흑곶감 3봉지를 사고, 선배는 선물할 데가 있다면서 비싼 흑곶감 1통을 더 구입했다. 친절한 사장님 덕분에 안심사 주차장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모두 감사인사를 하고 전화번호도 주고 받았다. 

 

하산길에 안심사를 보고 가겠다던 생각은 사라지고, 곧바로 차는 논산 양촌면 식당으로 향했다. 자칫하다가 저녁도 놓칠 수 있어서다. 산에 갔다가 저녁시간에 내려와서 식당이 없어 고생한 기억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로변에 위치한 고향칼국수 식당에 들러 얼큰칼국수와 만두를 시켜 먹었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꿀맛이었다. 얼큰칼국수는 매콤해서 중독성이 있다. 가던 길을 되돌아오면서 늦은 시간 와촌휴게소에 들러 음료수 한 병씩 마시고 포항에 도착하니 밤 10시다. 일행들과 헤어져 귀가하니 밤 10시 30분이었다. 대둔산은 예로부터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렸고, 제1경은 암봉들과 어울린 오색단풍을 꼽는다. 늦가을 풍경이 환상적이라고 한다. 대둔산의 길은 거칠지만 산중턱까지 케이블카가 놓여 남녀노소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는 대둔산 케이블카 입구 하대 매표소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마천대(정상)을 거쳐 칠성봉, 칠성봉 전망대, 장군봉, 상대 매표소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팬데믹 이후 산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등산장비도 몇 년 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으며 등산복장도 다양해졌다. 

 

전문산악인이 아닌 이상 산을 찾는 사람은 개인의 취미나 건강을 위해서 일 것이다. 선배는 힘든 산을 오를 때나 전망이 뛰어난 곳에서는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난다고 말한다. 자신의 두 발로 걸어서 높은 산을 오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할 일이다. 스스로 감격할 수밖에 없다. 등산은 집을 떠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 비로소 끝난다. 7여 년 동안 산을 오르면서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고 다녔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없이 세월을 보낸 것은 아닌가 싶어서 산행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각자의 체험은 자신의 것이고 언제나 소중하다. 감정이 메마르고 사색이 빈곤한 삶은 생각만 해도 삭막하다.하루를 되돌아보면서 지난 주 한 지역신문에 능인스님이 쓴 종교칼럼을 떠올려본다. “지금 일어나는 일을 잘 기록하는 것, 기록된 경험을 잘 보존하는 것, 그리고 기록을 통해 잘 재현하는 것, 이것이 역사입니다.” 

 

오늘도 대둔산행에 대한 기록을 남기면서 나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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