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별에서 망명 온 난민인지요온몸 가득 마마 자국 더께 진 몰골에 집도 절도 없이 노숙자로 사시는 영구산(靈龜山) 운주사(雲住寺) 돌부처님들왜 하필이면 눈 뜨고 코 베어 가는 이 막돼먹은 세상에 오셨는지요아낙네가 코 떼어 속곳 속에 감춰도없어도 없지 않고 있어도 있지 않으니숨 쉬지 않고도 영겁으로 가시며아등바등 사는 이들 깨진 꿈 주워개떡탑 거지탑 요강탑 쌓아 놓고어느 새 내 맘속에 기척 없이 들어와 탐욕 덩어리 모아 돌탑 천 기 쌓더니지쳐 널브러진 우리 삶의 너럭바위에마마 자국처럼 천문도 쪼아 놓고 그 위에 누워 밤낮으로 하늘만 보면서왜 혼자 빙그레 웃는지요혹시 고향별이라도 찾았는지요아니면 여기가 극락인 걸 깨달았는지요◆시 읽기 - 북두칠성의 궤도를 따라 만들어진 영구산(靈龜山) 운주사(雲住寺)의 천불, 천 탑은 마마자국처럼 생긴 상처로 가득하고 토속적인 얼굴에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대칭이 깨어진 듯한, 고려석불상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코가 없거나, 눈이 없거나, 눈 코 입이 모두 없거나, 머리나 팔이 있거나 없거나, 누워 있거나 앉았거나 서 있거나, 갖가지 모습 그대로 바람소리 벗 삼는 노숙(露宿)이다. 탐할 것 없는 세상사 지그시 비우고, 아등바등 사는 이들의 등짐도 덜어주어 가며 비에 젖거나 볕에 마르거나 밤낮으로 그저 빙그레 미소만 지어 보일 뿐이다. 집도 절도 없이 생긴 모습 그대로 여여(如如)해서 여여한 운주사 돌부처에게 말을 건네 본다는 시인 또한 여여해지는 시간에 다만 무상(無常), 무아(無我)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불상과 탑들이 마냥 정겹고 편해서 그저 고마워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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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매일신문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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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경상매일신문 기자 gsm333@hanmail.net 입력 2015/12/03 00:00
운주사 돌부처님께 말 걸기-김창완

↑↑ 유 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문예창작 전담>
ⓒ 경상매일신문

어느 별에서 망명 온 난민인지요
온몸 가득 마마 자국 더께 진 몰골에
집도 절도 없이 노숙자로 사시는
영구산(靈龜山) 운주사(雲住寺) 돌부처님들

왜 하필이면 눈 뜨고 코 베어 가는
이 막돼먹은 세상에 오셨는지요
아낙네가 코 떼어 속곳 속에 감춰도
없어도 없지 않고 있어도 있지 않으니
숨 쉬지 않고도 영겁으로 가시며

아등바등 사는 이들 깨진 꿈 주워
개떡탑 거지탑 요강탑 쌓아 놓고
어느 새 내 맘속에 기척 없이 들어와
탐욕 덩어리 모아 돌탑 천 기 쌓더니

지쳐 널브러진 우리 삶의 너럭바위에
마마 자국처럼 천문도 쪼아 놓고
그 위에 누워 밤낮으로 하늘만 보면서
왜 혼자 빙그레 웃는지요
혹시 고향별이라도 찾았는지요
아니면 여기가 극락인 걸 깨달았는지요


◆시 읽기 - 북두칠성의 궤도를 따라 만들어진 영구산(靈龜山) 운주사(雲住寺)의 천불, 천 탑은 마마자국처럼 생긴 상처로 가득하고 토속적인 얼굴에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대칭이 깨어진 듯한, 고려석불상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코가 없거나, 눈이 없거나, 눈 코 입이 모두 없거나, 머리나 팔이 있거나 없거나, 누워 있거나 앉았거나 서 있거나, 갖가지 모습 그대로 바람소리 벗 삼는 노숙(露宿)이다. 탐할 것 없는 세상사 지그시 비우고, 아등바등 사는 이들의 등짐도 덜어주어 가며 비에 젖거나 볕에 마르거나 밤낮으로 그저 빙그레 미소만 지어 보일 뿐이다.
집도 절도 없이 생긴 모습 그대로 여여(如如)해서 여여한 운주사 돌부처에게 말을 건네 본다는 시인 또한 여여해지는 시간에 다만 무상(無常), 무아(無我)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불상과 탑들이 마냥 정겹고 편해서 그저 고마워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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