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 필요한 것은 많다. 그 중 세가지를 고르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펜, 두 번째는 사전, 세 번째는 적절한 자료다. 개인의 조악한 의견이므로 진지하게 숙고하거나 궁구할 필요는 없으나, 마냥 군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펜은 글을 쓰는 용도다. 인류가 문자로 언어를 기록하던 순간부터 사용되어온 훌륭한 도구다. 고전문명의 파괴로 인해 유실되고 사라져버린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인류 역사상 치명적인 오점을 남긴 유물이지만, 펜이라는 게 없었더라면 대도서관도 없다.좋은 글을 쓰기 위해 꼭 비싸고 좋은 펜을 사용할 필요는 없지만, 익숙한 펜을 꾸준히 사용하는 건 좋다. 첫 책을 출간하고 받은 인세로 만년필을 3자루 샀다. 0.5mm 두 자루와 0.7mm 한 자루였다. 모두 인터넷에서 최저가로 구매한 플라스틱 만년필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편안하고 필기감이 좋은 0.5mm 두 자루만 남기고 0.7mm 한 자루는 지인에게 줬다. 두 자루로 4권 분량의 원고를 썼고 일부는 책으로 엮었다.
펜은 기본적으로 쓰기 위한 용도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퇴고를 위한 도구라고도 할 수 있겠다. 칼럼이든, 책이든, 일기든, 일단 아무 글이나 한 번 쓴 뒤에 퇴고를 해보자. 고치고 추가해야 할 부분이 수없이 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초고는 걸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이다. 성경을 제외하고 이 세상의 어떤 책도 퇴고의 과정을 벗어날 수는 없다. write with mercy, edit without mercy.데스크탑PC나 노트북, 혹은 태블릿 PC로 글을 쓸 때가 있다. 블로그, 브이로그, 광고 및 홍보용 글을 쓸 때는 고객심리와 마케팅, 검색 로직에 최적화된 글만 쓰면 된다. 가벼운 전자책, 쉽게 읽을 수 있는 가십거리형 에세이는 챗GPT를 사용하거나 크롤링(Crawling)기술만 조금 배우면 기가 막히게 훌륭한 글들을 수집할 수 있다. 그럴 때는 플라스틱 만년필이나 필기감이 좋은 볼펜보다는 인체공학형 키보드를 하나 구매하는 게 더 낫다. 다만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한 권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적막한 새벽 조용한 서재에서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퇴고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펜으로 글쓰기와 펜으로 퇴고하기는 고통 이전에 큰 아름다움이자 인생의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