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朴泰俊)은 그의 이름 다음에 그 어떤 존칭을 붙여 말할 수가 없는 거목(巨木)이다. 그는 한국철강신화에 머물지가 않는다. 세계철강신화와 철강전설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하는, 포스코의 창업자이자 오늘의 포항시를 있게 한 뛰어난 인물이다. 그때만 해도 포항시로 불어오는 난바다의 바람과 모래벌판에 포스코 철강을 세운다고 할 때, 그 누구도 이게 오늘의 현실이 될 줄을 아무도 몰랐다.
그가 꾼 꿈이 오늘의 포스코이며, 포항시의 현실이다. 아마도 그도 오늘의 포스코가 이렇게 세계철강사를 다시 쓰게 될 줄을 모르고, 한국의 철강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애국 일념으로 앞으로만 매진했을 것이다. 이 에오라지 일념의 열매가 참으로 크게 그리고 탐스럽게 열렸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를 드높이는 동상이 없었다는 것은 우리들의 큰 잘못이다.
청암 박태준 설립자 조각상 건립위원회(위원장 백성기 전 포스텍 총장, 박재홍 포스텍 총동창회장)와 지역 시민단체가 동상 건립에 뜻을 모았다. 지난 1일부터 24일까지 총 2만1,973여 명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모인 금액은 총 7억5,500여만원이다.
모인 금액이 문제가 아니다. 참여한 인사들 중에는 포항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에까지 모금에 동참했다. 그리고 돈을 낸 금액 중에는 심지어 불과 몇 천 원에 그친 것도 있다니, 이 돈이 비록 그 누가 적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인가. 이렇게 모인 동상 건립 기금에 참된 뜻이 있다고 해도 되레 말이 부족할 지경이다.
모금은 포스텍의 경우에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자체적으로 했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마다 발행되는 ‘포스코신문’에 광고를 내는 방식을 취했다. 이런 방식이 성공을 거두었다. 말하자면, ‘한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다. 모인 금액이나 참여한 사람들의 면모를 짚어볼 때에 ‘박태준’은 그냥 보통 사람만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다시 알 수 있게, 우리들에게 깊은 각인을 시키고도 남는다.
구체적으로 보면, 포항지역사회연구소에서만 총 6,739명이 동참했다. 이 가운데는 지역의 어느 신문사의 국장과 부장 등 간부들도 시민들과 어깨를 맞추었다. 다음에 포항상공회의소에 665명, 포스텍에 접수한 시민 총 150명이다. 이를 모두 합하면, 참여한 포항시민들은 총 7,564명으로 집계되었다. 이에다 무기명으로도 500여 명에 이른다. 이 통계에는 포항제철소 사원을 제외된 사람들로써 모두 합하면, 8,000여 명을 훨씬 뛰어넘는다. ‘박태준의 위력’을 다시금 확인한다.
더 아름다운 일은 북구 항구동 박종표 씨가 이웃과 지인들에게로부터 자발적으로 모금에 뛰어들었다. 이렇게 하여 500명으로부터 211만3,000천 원을 모았다. 그러니, 한 사람당 평균 4,000원이다. 귀하기 짝이 없는 모금이다. 그리고 지난 1974년 KBS드라마 ‘꽃피는 팔도강산’의 김수동 감독과 윤혁민 작가도 각각 10만 원씩 보탰다.
한 어부는 전신환으로 2만 원을 보냈다. 포스코 기성단 18명도 성금을 냈다. 전남 광양에서도 격려의 말을 전했다. 또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어느 두 사람은 1,300만 원을 내었다. 포항철강관리공단 276명이 평균 2만 원씩 각출하여 총 552만 원을 보탰다. 포항상공회의소 665명이 2,371만 원을 내었다. ‘박태준’을 기념하는 동상이 바로 이렇게 참여한 게, ‘눈에 보이는 동상보다 더 훌륭한 동상이다.’
청암 박태준 설립자 조각상 제막식은 오는 12월 2일 포스텍 대학본부 옆 노벨동산에서 열린다. 조각은 중국 남경대 우웨이산 교수가 했다. 작품 모양새를 우선 살피면, 평소에 즐겨 입든 코트와 중절모를 썼다. 전신상 전면에 鐵鋼巨人(철강거인), 교육위인(敎育偉人) 박태준 박사(朴泰俊博士)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참으로 뜻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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