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을 들어서는 관객의 시선을 맨 처음 사로잡는 것은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고깃덩어리 같은 붉은 설치물이다. 이 거대한 설치물 곳곳에는 인간의 손과 내장처럼 생긴 것들이 튀어나와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 다른 방으로 들어서면 방금 본 덩어리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아름답게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은 여성의 몸을 표현한 설치물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전시장을 걸어 들어가면 갈수록 거부감을 주던 불편한 작품들은 서서히 모습을 감추고, 대신 거울과 금속 조각을 붙이고 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설치물들이 전시장을 채운다. 이처럼 파격적이면서도 변화무쌍한 작품세계를 펼치는 이불이 지난 20여 년간의 작업을 아우른 작품 45점을 들고 일본 관객과 만난다. 4일(현지시각) 개막해 오는 5월27일까지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 `이불展: 나로부터, 오직 그대에게(LEE BUL: FROM ME, BELONGS TO YOU ONLY)`에서다. 모리미술관은 도쿄 롯폰기힐스의 모리타워 53층에 자리 잡은 현대미술관으로, 이불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작가로는 중국의 설치미술가 아이웨이웨이에 이어 두 번째로 이곳에서 대규모 초대전을 열었다. 작가의 초기 퍼포먼스 작업을 비롯해 대표적인 조각 및 설치작품 시리즈,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신작, 작업의 바탕을 이루는 드로잉과 작품 모형 등을 아우른다. 전시는 `순간적 존재`, `인간을 초월하여`, `유토피아와 환상풍경`과 `나로부터, 오직 그대에게`, `더 스튜디오` 등 5개 주제로 나눈다. 전시장에서 맨 처음 눈에 들어온 붉은 덩어리 형상의 작업은 작가의 초기작으로, 1990년 그가 직접 입고 도쿄 거리를 활보하며 퍼포먼스를 벌였던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가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화려한 반짝이 장식물을 단 죽은 생선이 서서히 부패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지만, 악취 때문에 전시 중간에 치운 `화엄`은 이번에 영상작업으로 관객과 다시 만난다. 1인용 노래방 형식의 `가라오케 캡슐` 시리즈와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적이고 완벽한 신체의 의미를 탐구한 `사이보그`,`아나그램` 연작도 한자리에 모았다. 2005년 이후에 작업한 작품들로 꾸민 세 번째 방에는 작가의 관심이 건축물뿐 아니라 도시로까지 확장한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의 작업공간을 재현한 `더 스튜디오`에서는 그동안의 작업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드로잉 150점과 모형 50점을 선보인다. 전시의 대미는 도쿄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창문 앞에 자리 잡은 반짝이는 개 형상의 설치물이 장식한다. 작가가 이번 회고전을 위해 준비한 신작 `더 시크릿 셰어러(The Secret Sharer)`로 20년간의 작업 과정에서 작가가 보낸 고뇌와 좌절의 시간을 곁에서 지켜본 자기 개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죽음을 앞둔 늙은 개가 서울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작가의 작업실 마당에 앉아 먹은 것을 토해내는 것을 보면서 작가가 지난 20여년간의 작업을 통해 쌓은 모든 것을 관객 앞에 있는 그대로 펼쳐보인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불 작가는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앞으로 아시아와 북미, 유럽의 미술관에서 순회 회고전에 나설 예정이다. 4일 오후 미술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회고전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자신있게 내놓을만한 것인지 부끄러웠다"면서도 "내가 그동안 그렇게 부끄럽게 살지는 않았구나` 생각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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