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조필국기자] 2024 뮤지컬 `시카고`는 29명의 배우, 15인조 라이브 빅밴드, 17년간 손발을 맞춘 스태프가 함께한다.
지난 2021년 시즌 코로나 팬데믹에도 불구 관객 점유율 96%를 달성해 역대 최고 성적을 내며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말을 증명해 보였다. 이번 시즌에는 그 흥행의 주역들 -최정원, 윤공주, 아이비, 티파니 영, 민경아, 박건형, 최재림, 김영주, 김경선 – 이 함께하며 2021년의 뜨거운 열기를 다시 보여줄 예정이다. 특히 지난해부터 진행된 오디션을 통해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함께하게 된 17명의 앙상블 배우와 정선아가 합류, 한층 더 뜨겁고, 깊어진 뮤지컬 `시카고`를 선보일 예정이다.
1920년대 미국 이야기, 하지만 모든 시대를 초월하며 명작의 반열에 오르다. 뮤지컬 `시카고`의 근원을 따지려면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시카고 트리뷴`지의 기자이자 희곡작가였던 모린 달라스 왓킨스(Maurine Dallas Watkins)가 1926년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쿡 카운티(Cook County)의 공판에서 영감을 받아 쓴 연극 `시카고 (원제: A Brave Little Woman)`가 그것이다. 이 작품의 열광적인 호평이 바탕이 돼 1927년 무성영화 `시카고`와 1942년 극 중 여주인공의 이름을 딴 `록시 하트(Roxie Hart)`가 연이어 제작되면서 빅히트를 쳤다. 왓킨스의 원작은 특정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날카로운 풍자와 위트를 지닌 `시카고`는 언론과 사회의 속성에 대한 예지적인 시선으로 시대를 초월하는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존 칸더(John Kander)와 프레드 엡(Fred Ebb) 그리고 밥 파시(Bob Fosse)가 만든 뮤지컬 `시카고`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신화적 존재였던 밥 파시(Bob Fosse) 또한 이러한 점을 놓치지 않았다. 1975년 그는 존 칸더(John Kander)와 프레드 엡(Fred Ebb)과 함께 1920년대 격동기의 미국, 그중에서도 농염한 재즈 선율과 갱 문화가 만연했던 시카고의 어두운 뒷골목에 관능적 유혹과 살인이라는 대중적 테마를 결합해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시카고`를 만들어내어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위트 있는 가사와 재즈 특유의 끈적함이 묻어나는 매력적인 멜로디, 그리고 밥 파시(Bob Fosse)만이 표현할 수 있는 관능미 넘치는 안무는 뮤지컬 `시카고`의 진가를 확인시켜 주며 대성공으로 이어졌고, 70년대 브로드웨이를 대표하는 뮤지컬로 손꼽히게 됐다.음악과 안무 시그니처 스타일을 고수하며 리바이벌된 뮤지컬 <시카고>,미국 브로드웨이를 넘어 전 세계를 강타하다.
뮤지컬 `시카고`의 생명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96년 연출가 월터 바비(Walter Bobbie)는 밥 파시(Bob Fosse)가 브로드웨이 뮤지컬 계에 기여했던 공헌뿐 아니라 열정적인 예술가로서의 인생 전체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자 했다. 그는 재능 있는 안무가 앤 레인킹(Ann Reinking)과 함께 뮤지컬 `시카고`의 리바이벌 공연을 계획한다. 그렇게 1996년 11월, 수백만 달러를 들여 조명, 무대장치 등을 재정비한 뮤지컬 `시카고`는 리처드 로저스 극장(Richard Rodgers Theater)에서 재공연됐다. 당시, 공연은 파시의 작품 같으면서도 1975년도의 무대와는 완전히 다르게 진일보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브로드웨이 뮤지컬 계에 태풍의 눈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 이듬해에는 초연 당시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코러스라인`에게 넘겨줘야만 했던 ‘토니상(Tony Awards)’ 중 리바이벌 뮤지컬상, 연출상 등 6개 부문을 휩쓸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됐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시카고`의 성공은 곧바로 웨스트엔드 진출로 이어졌다. 1997년부터 웨스트엔드 아델피 극장(Adelphi Theatre)에서 공연된 뮤지컬 `시카고`는 영국의 대표적인 공연에 수여하는 상인 ‘올리비에상(Olivier Awards)’ 베스트 뮤지컬 제작상 등 2개 부문을 수상하며, 까다로운 영국 공연계에서 롱런 대열에 합류했다.뮤지컬 `시카고`의 미국과 영국에서의 연이은 성공은 세계 각지로 이어져 한국을 비롯 캐나다, 호주, 독일, 일본, 브라질, 스웨덴, 프랑스, 스페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덴마크 등 38개 국가, 525개 이상의 도시에서 3만3500회 이상 공연되며 34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동원, 시대를 뛰어넘는 사랑을 받으며 공연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뮤지컬 <시카고> 브로드웨이 공연은 27년간 1만500회를 넘어섰고, 이는 브로드웨이 공연 역사상 가장 롱런하고 있는 미국 뮤지컬로 기록되고 있다. 뮤지컬 `시카고`는 보편적인 기승전결의 플롯 구조를 갖추기보다는 아주 비사실적이고 양식적인 방법으로 주제를 부각시키고, 이야기 전개보다 표현 방식을 부각시키는 컨셉 뮤지컬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뮤지컬 `시카고`가 다른 공연과 차별화되는 점이다. 또한 뮤지컬 `시카고`에서는 벨마(Velma)라는 극 중 인물이 사회자 역할을 함께 함으로써, 관객들의 몰입을 제한하고 마치 브레히트 연극처럼 ‘이 상황이 얼마나 웃깁니까?’라고 설명하며 주제를 부각시키는 서사극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1920년대 시대를 대표하는 보드빌(Vaudeville) 형식의 무대와 재즈풍의 음악이 밥 파시의 안무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뮤지컬 `시카고`만의 독특한 형식이 완성되었다.화려한 관능의 몸짓 속에 숨겨진 통렬한 사회 풍자
파시, 칸더, 엡 등 뮤지컬 영화 <캬바레 (Cabaret)>에 참여했던 `캬바레 팀`이 다시 뭉쳐 만든 뮤지컬 `시카고`는 뮤지컬 `캬바레`를 통해 보여줬던 통렬한 사회비판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살인, 욕망, 부패, 폭력, 착취, 간통, 배신`이라는 선전 문구처럼 뮤지컬 `시카고`에는 1920년대 당시 미국 사회의 치부에 대한 비판의식이 과감하게 묘사돼 있다.이른바 `1전 신문(penny paper)`이라 불리며 당시의 언론을 주도하던 극도로 선정주의적이면서도 통속적인 싸구려 저널리즘에 대한 시니컬한 묘사와 풍자, 그리고 O.J.심슨 사건에서도 우리가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던 미 형법 제도의 모순을 뮤지컬 `시카고`에서는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또한 남성 중심의 도덕관과 황금만능주의, 진실보다는 포장을 중시하는 외형주의의 편향된 시각에도 일침을 가하고 있다. 1920년대 시대상을 보여주는 이야기와 표현 방식돈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하던 1920년대 시카고. 거리엔 환락이 넘쳐나고, 마피아가 지하 세계의 돈으로 도시를 장악했던 시절, 살인을 저지르고도 스타가 되길 꿈꾸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지만 당시에는 있을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뮤지컬 `시카고`에서는 위트 있게 그려내고 있다. 또한 시가, 권총, 살인, 갱, 무법천지, 보드빌, 재즈, 애교 가득한 여성 등 1920년대 시카고를 대표하는 상징물들이 뮤지컬 `시카고`에는 가득하다. 이처럼 뮤지컬 <시카고>는 시종일관 어두웠던 1920년대 미국의 현실에 국한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주제나 음악, 춤, 세트, 의상, 조명 등의 표현 방법은 현재 우리 한국의 이야기, 전 세계의 이야기로 해석해도 좋을 만큼 시사적이고 현대적이다.뮤지컬 `시카고`는 등장인물들이 관객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건네기도 하는 등 서사 극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살려내면서, 여타 뮤지컬에서 보이는 치장이 많고 화려한 사실적인 세트가 아닌 단순한 세트와 강렬한 조명만으로 움직이는 연기자들의 춤, 연기와 드라마에 자연히 눈과 귀를 모으게 하는 특별한 컨셉 뮤지컬 형식을 취한다. 군더더기 없는 무대 위에서 흐느끼는 듯 절규하는 재즈가 흐르고, 단순하면서도 상징적인 의상을 입은 연기자들의 관능적인 춤이 무대를 채워나가면서,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코믹하게 야유하고 조롱하며 사회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드라마를 펼쳐 보인다.활력 있고 감미로운 재즈의 향연작품의 메인 테마인 “All That Jazz”에서 보여주듯 뮤지컬 <시카고>의 음악은 재즈풍이 지배적이다. 작품의 배경이 1920년대 미국 시카고의 클럽이고 그 시대 시카고의 소위 ‘대중가요’가 바로 그런 클럽에서 연주되었던 재즈였기 때문이다. 15인조로 구성되어 있는 뮤지컬 <시카고>의 밴드는 튜바, 트럼펫 등의 미국적인 사운드를 표현하는 악기들로 편성되어 있다. 또한 이들은 다른 공연과는 달리 무대 정 중앙 계단 형 피트에 위치하여, 제2의 배우로 극에 참여하기도 한다. 특히 지휘자가 익살맞게 배우들과 대사를 주고받는 모습과 막간에 연주되는 신나는 밴드의 애드립은 뮤지컬 <시카고>만의 특별한 즐거움이다.밥 파시(Bob Fosse)의 숨결이 그대로 묻어나는 안무뮤지컬 <시카고>는 밥 파시(Bob Fosse)에 의해 탄생하였고 그의 독특한 안무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밥 파시(Bob Fosse) 안무의 특이한 점은 그가 자신의 결점으로부터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창조해 내었다는 점이다. 안짱다리로 발을 바깥쪽으로 턴 아웃 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던 그는 오히려 결점을 이용하여 크고 시원시원한 동작들보다는 꾸부정하면서도 소소한 근육들의 움직임을 시각화하는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내었다. 이처럼 밥 파시(Bob Fosse)의 춤은 심플하면서 드라마틱하고 섹슈얼리티한 안무의 진수를 보여준다. 특히, 앤 레인킹(Ann Reinking)이 1996년 재현한 뮤지컬 <시카고> 중 벨마와 록시가 클라이막스에서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인 ‘Hot Honey Rag’는 밥 파시(Bob Fosse)의 1975년 초연 안무를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더욱 눈여겨볼 만하다. 그 외에도 심플하고 섹시한 의상을 입은 여배우들과 단단한 근육질의 몸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섹시한 남자 배우들이 보여주는 밥 파시(Bob Fosse)의 절도 있고 관능적인 춤은 뮤지컬 <시카고>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Billy Flynn역 최재림`All I Care About`"이 넘버는 빌리 플린,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곡이에요. 그것도 매우 솔직하고 정직하게요. 많은 분이 이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돈 밝히면서, 돈 필요 없다고 하고. 명품 좋아하면서 명품 필요 없다고 하고. 그건 거짓말 아닌가?’ 하고요. 제가 생각하는 빌리 플린은 이미 성공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어요. 그는 물질적으로 풍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정말 ‘돈 과 명품’이 필요 없다는 진심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관객분들이 바라보는 빌리는 사기꾼이기도 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변호사라 보시면 그게 맞아요. 혹은 자기 일을 사랑하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공평하게 일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해도 맞고요! ‘2024 시카고는 많이 달라질 거예요.’ 라고, 말할 순 없어요. 똑같은 의상과 넘버, 대사를 하는 하드웨어는 같으니까요. 하지만 새로운 걸 찾아내려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있어요. 무대에 있는 모든 순간을 더 특별하고 명확하게 만들기 위해 대사 하나, 몸짓 하나에 의도를 가지고 채워가며 풍요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처음 보시는 분들은 정교하게 짜인 시카고의 매력을 느끼실 수 있을 거고, 관람 경험이 있는 분들에겐 달라진 배우와 달라진 디테일을 찾는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