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권리에 저항하다가 부서진 바위조각들과 함께 심연으로 사라지는, 어느 세계.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선물했다는 이유로 결박되어 독수리에게 간이 뜯어 먹히는 티탄의 신족에 대한 이야기다. 극 중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신(지도자), 신(제우스)은 절대자로 등장하는데 버트런드 러셀의 저서에서 등장하는 신(일례로 제우스)과 프로메테우스는 다소 대조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신들을 도덕적 권위를 가진 신이나 절대자로 이해하기보다는 해학적이고 반인륜적인 민중지도자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혹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생각과 태도를 모두 가진 인간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호메로스 작품 속의 종교가 전혀 종교적이지 않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신들은 인간의 특성을 거의 전부 지녔는데, 불멸하고 초인적 능력을 소유한다는 점에서만 달랐다. 도덕적 측면에서도 신들에게 특이한 점이 전혀 없기 때문에, 어떻게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후대에 쓴 몇몇 구절은 신들을 볼테르처럼 불경한 태도로 다루었다.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진정한 종교심은 올림포스의 신들보다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숙명이나 운명, 필연 같은 존재와 관계가 더 깊은데, 제우스도 그것의 지배를 받는다. 숙명은 그리스 사상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을 뿐 아니라 과학이 자연법칙에 대한 믿음을 도출하게 된 원천 가운데 하나였다." -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사> 44p, 을유문화사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선사함으로써 인간은 문명을 창조해 냈고 세계를 건설하는 업적을 이루어냈는 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메시아적인 신으로 비춰질 수 있도록 극이 창작된 것은 사실이다. 반면에 제우스의 입장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인간들에게 주어서는 안 되는 선물(희망을 포함해서)을 제공한 반항아라고도 볼 수 있는데, 제우스라는 신, 즉 절대 권력에 대한 반항의 대가로 판도라의 상자를 연 에피메테우스에 대한 이야기도 뒤이어 이어진다. 불사신이지만 바위에 결박되어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프로메테우스의 저주가 무슨 이유인지 묻는 코러스에게 프로메테우스가 이야기한다."그대들은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가 나를 고문하느냐 물었는데, 이제 그것을 밝히겠소. 그(제우스)는 아버지의 왕좌에 앉자마자 지체 없이 여러 신들에게 저마다 다른 특권과 지위를 나눠주며 자신의 통치권을 분배했으나, 불쌍한 인간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소. 아니, 그는 인간들의 종족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다른 종족을 새로 만들려 했소. 나 말고는 이에 반대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소. 하지만 나는 과감히 반대했소. 그리하여 나는 인간들이 박살나 하데스의 집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인간들을 구해주었소. 그 때문에 나는 견디기 괴롭고 보기 민망한 이런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이오. 인간들을 동정하다가 나 자신은 동정받을 가치가 없다고 여겨져 이런 무자비한 벌을 받고 있지만, 이런 광경은 제우스에게 불명예가 될 것이오."-<결박된 프로메테우스> 235-241단지 불을 선사한 것만으로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게 저주를 받았을까.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좀 더 의미있는 선물, 호의적이고 권위 있는 선물을 제공한 바 있다. `인간들이 자신의 운명을 내다보지 못하게 한 뒤 그들의 마음에 맹목적인 희망을 심어놓았다(248-290)`는 부분과 `전에는 어리석었던 그들에게 사고력과 지적 능력을 주었다(442-446))`는 부분에서 프로메테우스는 희망, 사고력, 그리고 지적 능력을 선사한 것으로 나온다. 뿐만 아니라 수, 문자의 조립, 예술, 가축의 활용한 수레와 승마, 건축술 등등 인간이 국가를 건국하고 문명을 설립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제공한 신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절대적 우위를 선점한 제우스에 의해 벼락을 맞고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데, 그가 결박되어 있는 절벽도 프로메테우스와 함께 추락한다. 비극적인 요소를 찾기 어려운 결말이지만, 추락하는 것이 프로메테우스뿐만 아니라는 점에서 프로메테우스의 추락은 그를 결박하고 있는 절벽의 추락과 함께 자유의 몸으로 변화한다는 것, 희망이 항상 덧없는 희망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의미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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