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9월 1일 일본에서 간토(關東)대지진이 발생한 지 100년이 지났다. 당일 대지진 직후 조선인 대학살 참사 비극이 벌어졌다. 대지진의 혼란 속에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불을 질렀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졌고 수많은 조선인이 일본 자경단이나 경찰, 군인 등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했다.당시 일본 정부는 조선인 희생자를 231명으로, 조선총독부는 832명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대학살 참사를 은폐하려는 엄혹(嚴酷)한 일본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도 독립신문은 당시 조선인 학살 피해자가 6천661명이라고 보도했다.또 학계 등에선 당시 조선인 추정 거주자 수와 살아남아 수용소에 모인 사람 수를 근거로 희생자가 수천 명에 달한다는 추산이 나와 있다. 당시 조선인들은 일본어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는 등 황당한 이유로 일본인 총칼에 참혹하게 희생돼야만 했다. 이같은 참상은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과 자료 등에 의해 제기되고 확인된다.간토 조선인 대학살은 일제 강점기 시절 자행된 반인륜적 잔인한 범죄행위다. 또한 이제 다시는 절대 되풀이돼선 안 될 지구상의 비극이다.간토 조선인 대학살 참사는 지금껏 진상규명은 커녕 희생자 명단도 제대로 공개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학계에 따르면 일부 在日 사학자들이 1963년 펴낸 `현대사 자료`에서 조선인 희생자 32명이 확인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선 21명의 명단을 파악할 수 있다. 조선인 학살은 일본 교과서에도 실렸지만, 일본 정부는 학살 사건을 여전히 외면하려는 태도를 보인다.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이는 조선인 학살 사건에 대해 일본 정부 입장을 알려달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조선인 학살에 대한 반성이나 교훈과 같은 단어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 일본 언론은 "역사를 직시하지 않으면 비판을 부를 것"이라고 지적했다.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 역사를 정당화하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최근 한일관계 개선 의지와 움직임이 나타나는 와중에도 대학살 참사의 역사를 대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또 아무리 사건을 외면한다고 역사가 지워지겠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새로운 한·일 관계를 다짐하지 않았던가.진정성 있는 화해와 반성을 해야만 양국이 미래 번영의 길로 나갈 수 있다. 이 지구상 역사에는 소멸시효가 없다.지난 9월1일은 간토대학살 100년을 맞는 날이다. 이제라도 일본 정부는 확실한 진상을 반드시 규명하고 희생자와 유족에게 진정성 있는 반성과 사죄를 꼭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