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박동수기자]권호문의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장중 호는 송암이다. 아버지는 안주교수 권육이고 어머니는 퇴계의 맏형 이잠의 딸이다. 1561년(명종 16)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33세에 모친상을 당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청성산 아래 무민재에서 은거했다. 스승 퇴계는 송암이 소쇄산림지풍이 있다고 했고 서애는 강호고사라 칭했을 만큼 학문과 덕망이 높았다. 특히 초간 권문해, 학봉 김성일과 크게 교유했는데 만년에 학봉에게는 청성산의 반쪽을 떼어줄 만큼 우정이 깊었다. 지금도 청성산에는 이들의 우정을 상징하는 권호문의 연어헌과 학봉의 석문정사가 위아래에 나란히 있다. 만년에 덕망이 높아져 찾아오는 문인이 많아지고 집경전참봉, 내시교관 등 벼슬도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56세로 관물당에서 일생을 마쳤다. 야은집, 화담집, 퇴계집 등을 교정하였으며 저서로 송암집 4책이 있다. 문집 속에 경기체가의 변형 형식인 독락팔곡과 연시조 한거십팔곡이 실려 있다. 묘소는 청성서원 위 마감산에 있다. 1612년(광해군 4) 청성서원에 제향 되었다.영남가단호남가단이 송순을 기점으로 김성원, 기대승, 고경명, 정철, 임제로 이어진다면 영남가단의 핵심 원류는 이현보, 이황, 권호문으로 이어진 계보다. 물론 더 넓게 본다면 역동 우탁의 ‘탄로가’ 신제 주세붕의 ‘오륜가’ 청음 김상헌의 ‘가노라 삼각산아’ 존재 이휘일의 ‘전가팔곡’ 갈봉 김득연의 ‘산중잡곡’ 안축의 ‘죽계별곡’ 내방가사 ‘덴동어미 화전가’를 포함시킬 수 있겠지만 송암의 독락팔곡과 한거십팔곡‘에 비할 바는 못 된다.독락팔곡조선 선조 때 권호문이 지은 경기체가. 제목에는 8곡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7곡만이 작자의 문집인 송암별집에 수록되어 있다. 현존하는 경기체가 가운데 가장 마지막 작품이어서 쇠퇴기 혹은 소멸기의 형태적 변형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즉, 전통적인 경기체가의 양식은 1연이 6행으로 되어 있는 연장체로서 각 연의 제4행과 제6행에 “위……景긔엇더imagefont니잇고”라는 특별한 구조적 기능을 하는 구절이 반드시 놓여진다. 각 행의 음보수에 있어서도 제1∼3행까지는 3음보격으로, 제4∼6행까지는 4음보격으로 되어 있고, 각 연은 전대절(前大節)과 후소절(後小節)로 크게 나누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각 연이 전대절과 후소절로 나뉘어 있지 않을 뿐더러 행수에 있어서도 6∼10행 혹은 그 이상으로 장형화되어 있다. 음보격에 있어서도 4 음보격이 압도적으로 중심을 이룬다. 또, 경기체가 특유의 구조적 기능을 하는 “景긔엇더imagefont니잇고”라는 구절이 각 연의 맨 끝에 1회씩만 실현되어 있다. 이처럼 경기체가 고유의 정통적 양식에서 크게 이탈하여 장형화하고 4음보격이 중심이 된 것은 인접 장르인 가사문학이 전성기에 있었으므로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의 서문에서 작자는 “고인이 말하기를 노래[歌]라 하는 것은 흔히 시름[憂思]에서 나오는 것이라 하였듯이 이 노래 또한 나의 불평에서 나온 것이니, 한편 주자의 말처럼 노래함으로써 뜻을 펴고 성정을 기르겠다.”라고 제작 동기를 피력하였다. 이로 보아 작자는 강호자연의 유연한 정서생활을 노래하면서 그것을 성정을 닦고 기르는 도학의 자세로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 이면에는 외로움과 불평이 서려 있었음이 느껴진다. 실제로 작자는 평생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였으며 산림처사로 자처하면서 산수에서 노닐며 노래로써 시름을 달래었다. 특히 이 작품의 제5연을 보면 그의 의기가 얼마나 드높으며, 그러면서도 불평에 가득 찬 사람이 세상을 저 아래로 내려다보는 고고한 태도가 여실히 나타나 있다. 작자는 작품의 전편에 표면적으로는 강호자연 속에 파묻혀 한가로이 지내는 즐거움을 노래하고 태평성대에 한 일민으로 자연을 사랑하며 유유히 살아가는 삶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이면적으로는 홀로 즐기는 소외감과 마음껏 의기를 펴보지 못하는 불평이 짙게 깔려 있다.한거십팔곡조선 선조 때 권호문(權好文)이 지은 연시조. 모두 19수로, 그의 문집 송암별집에 수록되어 있다. 각 연은 독자적인 주제를 개별적으로 노래한 것이 아니라, 의미상의 맥락을 가지고 구조적으로 짜여 있어 시상과 주제의 전개 및 흐름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벼슬길과 은거생활의 갈등에서부터, 속세에 미련을 갖지 않고 강호의 풍류를 즐기며 살아가는 담담한 심회를 적어 내려간다. 이어서 현실세계의 티끌을 초월한 자신의 모습을 마지막 1수에 덧보태어 끝맺었다. 작품 전체가 현실세계로부터 일탈하여 강호자연 속으로 침잠하기까지의 과정을 시간적 계기에 의하여 논리적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제 1연에서는 작자의 마음이 현실세계에 이끌려(충효관념으로 나타남.) 마음의 방황을 거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시 작자의 마음을 “생평(生平)애 원(願)ᄒᆞᄂᆞ니 다ᄆᆞᆫ 충효(忠孝) ᄲᅮᆫ이로다/이두일 말면 금수(禽獸)나 다라리야/ᄆᆞᄅᆡ애 ᄒᆞ고져 ᄒᆞ야 십재황황(十載遑遑)ᄒᆞ노라.”라고 표현하였다. 제4 · 5연을 전후하여 현실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과 강호생활을 즐기자는 마음 사이의 갈등을 겪고 있음이 드러난다. 제9∼15연에 이르러서는 자연 속에서 안분자족(安分自足)하는 삶을 노래하였다. 이어서 자연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관을 확고히 한다. 그후에, 마지막 제19연에서 “강간(江干)애 누어셔 강수(江水) 보ᄂᆞᆫᄠᅳ든/서자(逝者) 여사(如斯)ᄒᆞ니 백세(百歲)○들 멷근이료/십년전(十年前) 진세일념(塵世一念)이 어ᄅᆞᆷ녹듯 ᄒᆞᆫ다.”라고 끝맺는다. 즉 첫연에서의 현세에 대한 미련의 감정이 ‘얼음 녹듯’ 해소되었음을 적고 있는 것이다. 작자는 이렇게 강호자연에 침잠하는 삶을 통해 현세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해소한 듯이 선언했다. 그러나 이 작품이 현실과의 끈끈한 맥에서 출발하여 현실과의 관련성에서 끝맺는 구조를 취하고 있음은, 작자의 본심이 강호에 있음이 아니라 현세에 있음을 반증한다. 즉, 현실의 근심을 잊기 위하여 처사적(處士的) 삶을 선택하지만, 무위자연의 노장적(老莊的) 삶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관념으로 허구화된 자연의 공간 속에서 현세의 불평과 시름을 치유하고자 할 뿐이다. 그것은 현실이 아무리 불만스러워도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사대부적인 은일 자세 때문이다. 제8연에 “출(出)ᄒᆞ면 치군택민(致君澤民) 처(處)ᄒᆞ면 조월경운(釣月耕雲)”이라 노래한 것에서도 이 점은 확인된다. 이러한 현세 긍정의 끈끈한 맥은 다음과 같은 심적 갈등의 내면표출이라는 문학성을 낳는다. “강호(江湖)애 노쟈ᄒᆞ니 성주(聖主)를 ᄇᆞ리례고/성주(聖主)를 셤기쟈ᄒᆞ니 소락(所樂)애 어긔예라/호온자 기로(岐路)애 셔셔 갈ᄃᆡ몰라 ᄒᆞ노라.”(제4연). 실제로 작자는 현실에 대한 불평을 바탕으로 하여 노래를 지었음을 밝힌 바 있다. 평생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처사로 살았지만, 현실을 외면한 채 은둔하는 자세는 취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노래는 강호가도(江湖歌道)의 후기 모습을 보여주는 한 사례로서, 자연이라는 공간을 문학 속으로 끌어들여 작자의 실존적 모습을 제시한 작품으로 문학사적 의미를 가진다.청성서원1612년(광해군 4)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권호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었으나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그 뒤 1909년 도내 유림의 공의로 옛터에 복원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묘우(廟宇), 8칸의 중정당(重正堂), 신문(神門),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6칸의 주소(厨所) 등이 있다. 묘우에는 권호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인 중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夾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강론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동재는 재원들의 숙소로, 서재는 유생들의 공부하는 장소로 사용되며, 주소는 원내를 수호하는 고자(庫子)가 사용하고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2월 하정(下丁 : 세번째 丁日)과 8월 하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籩)4두(豆)이다. 1985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책판(목판)과 이황(李滉)의 필첩을 소장하고 있다. 재산으로는 전답 5,000여 평 등이 있다.                                                                                                `글: 최성달 작가   사진: 박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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