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모든 것은 두 번째 걸을 때의 이야기다. 딱 한 번뿐인 길을 이렇게 걷기는 쉽지 않다. 인생도, 까미노도 ‘딱 한번’이라면 어떻게 해도 아쉬움은 남기 마련이다. 이래도, 저래도 아쉬움만 남는다면 내 방식대로 살고, 걷는 게 상책이리라.‘안녕히 계세요.’라는 인사를 남기고 외출한 팔로마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제 800킬로미터의 산티아고 순례길도 47킬로미터만 남겨두고 있다. 이틀만 걸으면 한 달 간의 까미노는 종지부를 찍게 된다. 팔로마도 어쩌면 남아 있는 짧은 여정의 아쉬움을 달래느라 이리 오래 멜리데의 저녁을 놓아주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딱 한 번뿐인 길에서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는 어렵겠지만 아쉬움의 유무가 그 길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쉬움은 더 나은 자신으로 향하는 새로운 동력이 되기도 하고, 오래 오래 첫사랑처럼 추억할 수 있게 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쉬움을 느낀다는 까미노의 막바지에 이르러 나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된다는 후련함을 더 크게 느꼈다. 아쉬움은 까미노를 마치고 한참 후에 찾아 왔다. 어쩌면 진짜 아쉬움은 이렇게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24년간 몸담았던 곳을 속절없이 떠나던 날은 거의 패닉 상태여서 ‘아쉬움 따위’를 느낄 겨를도 없었다. 일자진을 치고 시작한 ‘빌드업’은 젊은 시절, 마저 가지 못해 아쉬운 기억으로 남아있던 그 길로 이어졌다. 묵은 아쉬움이 달래짐과 동시에 새로운 아쉬움이 깨났다. 그래도 달래지는 아쉬움이 주는 안온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저간에 ‘잉간’으로 입은 상처도 ‘인간’으로 조금씩 아물어 갔다.운명이 보내는 화해의 시그널이었을까. 높은 수행력과 포교력으로 세인들의 큰 주목을 받고 있는 한 스님의 난데없는 제안이 들어왔다. 24년 만에 돌아온 길에서 그 분야의 로망을 막 이루려는 순간 날아온 제안이어서 갈등이 컸다. 고심 끝에 그 손을 잡았다. ‘다시 돌아가시라.’며 두 손 단정히 모아 합장올린 이의 영향이 컸다.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처음 경험한 출가의 세계는 강렬했다. 지난 시간들에 대한 분에 넘치는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그새 ‘도둑떼’에 의해 떠밀려난 후 ‘불교진각종금강원’을 창립한 ‘거털먼’(거꾸로 매달아 놓고 털어도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을 사람)이 나의 출가소식을 접하고 ‘재가인의 한계를 넘어 종조의 유법인 출가 수행자로 함께 가자.’고 손짓했다. 망설였다. ‘결국 너도 그쪽 편이어서 그랬던 거냐.’는 모욕적인 비난을 피할 길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갈까 말까’, ‘할까 말까’의 순간에는 항상 가고, 하는 쪽을 선택하던 도전적 ‘관성’이 다시 살아났다. 몸과 마음을 ‘관성’에 맡겼다. 꼭 2년 전의 일이다.독재자 ‘십진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죽창을 휘둘러대던 ‘홍위병’들을 위시한 주구들 역시 대부분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아직도 남아있는 친일파의 망령처럼 ‘십진필의 아이들’과 기회주의자들은 여전히 마궁(魔宮)을 진동시키고 있다. ‘집개’의 ‘졸개’들은 그새 무럭무럭 자라 ‘신분세탁’ 끝에 지금은 ‘고위층’이 되어 ‘권력놀이’를 즐기는 중이다. 역사는 반복되고 자정능력을 잃은 오염된 풍토는 끊임없이 새로운 ‘십진필’과 ‘홍위병’과 ‘4비 잉간’들을 배출해 낼 것이다. 그 와중에 또 얼마나 많은 ‘순진하’고, ‘종단정서’를 모르는 사람들이 ‘내부자들’로부터 집단 이지메를 당해 상처 입을지 걱정이다. 그들의 인생길에 ‘부엔 까미노’ 인사를 전해 본다.육십갑자를 돌고 인생의 두 번째 챕터가 시작된 첫날 아침 산타 이레네를 향해 길을 나선다. 날씨는 요즘 계속 흐리고 쌀쌀하다. 덕분에 걷기엔 최적이다.출발 후 20여분 쯤 지났을 무렵 웬 사람이 다리에 긴 막대기를 이어 붙이고 지팡이를 짚으며 어기적어기적 걷고 있는 모습을 본다. 옆에는 청년 하나가 속도를 맞춰 걸음을 옮기고 있다. 청년이 영상을 촬영하는 나를 돌아보며 ‘사진 찍어줄까?’ 한다. 전화기를 건네주자 이번엔 놀라는 표정을 지어보라며 연출까지 시킨다.키다리 아저씨를 뒤에 두고 청년과 앞서 걸으며 ‘저 사람 왜 저러고 걷는대?’ 물으니 ‘도전하는 거라는데 재미있긴 하지만 미친 짓이지 뭐.’ 한다. 청년의 말처럼 그의 도전은 미친 짓일까. 도전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돌아보면 나의 60년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성취도 있었고, 좌절도 있었으나 실패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의 도전은 성공했거나 배웠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아 브레아를 지날 무렵 어디선가 들려온 내 이름 석 자가 몸을 돌려 세운다. 고개를 돌려보니 차미와 라지다. 둘의 표정이 환하다. 주위에 못 보던 3명의 남녀가 함께 서 있다. 그새 미국인 길벗들이 또 늘었나 보다.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내처 걷는다.30킬로미터를 걸어 산타 이레네에 도착한다. 예약한 알베르게는 한적한 길처에 울창한 숲을 거느리고 홀로 서 있다. 어제 식당에서 만났던 리투아니아 아가씨가 먼저 투숙해 있다가 방긋 웃으며 반긴다. 알베르게에 바가 없다. 100여 미터를 거슬러 가 치킨 스테이크와 붉은 음료 한잔을 먹고 돌아왔다.이튿날 까미노의 ‘라스트 댄스’가 시작됐다. 까미노 800킬로미터가 한 사람의 일생이라면 생장에서의 출발은 탄생이었고,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오늘은 신산했던 생의 닻을 내리는 퇴임일이다. 한 달 전 얼떨결에 길벗들에 묻어서 시작한 까미노가 생각보다 싱겁게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7시 50분부터 시작된 마지막 17킬로미터는 ‘지겹다.’ ‘지루하다.’고 메모는 거듭 투덜거리고 있다. 산티아고 시내에 진입한 후 눈에 띄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모처럼 빠에야를 배불리 먹고 나선 길에서도 맥 빠진 걸음은 여전하다.   26일 일요일 오후 3시 30분 경 대성당에 도착했다. 짧은 거리를 8시간 가까이 걸은 것을 누가 알면 아쉬움 때문이라 짐작하겠지만 지겨워서 걷는 재미가 없었던 탓이었다. 스스로도 실망스러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오전 10시에 시작된다는 그 유명한 향로미사에 참석할 뜻이 있었다. 마지막 날 거리를 짧게 남겨 둔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런데 숙소출발부터 너무 늦어버렸다. 남은 17킬로미터를 무의식적으로 7킬로미터로 여기고 두어 시간 걸으면 충분히 오전미사에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렇게 사람이든 미사든 ‘만인어만 못인어못’(만날 인연은 어떻게 해서든 만나게 되고, 못 만날 인연은 어떻게 해도 만나지 못 한다)의 법칙을 피하지 못 한다.광장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대성당을 향해 합장 묵례로 한 성인의 생애를 추모하고는 자리를 떴다. 순례자 사무소에 들러 완주 인증서를 받고 다시 길을 3킬로미터 가까이 되돌아가 예약한 알베르게에 투숙했다. 내일 묵시아로 가려면 버스 정류소가 있는 대성당 근처에 투숙해야 편한데 어쩔 수 없다. 숙소의 시설과 분위기는 좋다. 저녁을 먹으러 이곳저곳을 배회하다 결국 숙소 옆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치킨 스테이크는 별로였다.실망스럽고 허탈한 하루였다. 이런 결말은 내 머릿속에 없었다. 하지만 현실에는 있었다. 세라비(c`est la vie)― 인생이 원래 그렇지 뭐.다음날 아침 숙소에서 가까운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대성당 근처로 가야 묵시아로 가는 시외버스를 탈 수 있다. 정류소 부스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 길 건너편에서 ‘안녕하세요?’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팔로마 해리스다. 대성당으로 가는 길인 듯하다. ‘바이 팔로마, 굿럭!’ 손을 흔들어 주며 그녀의 남은 길을 축원해 주었다.버스를 탔는데 어제 갔던 대성당 방향으로 직진하지 않고 우회전해서 계속 간다. 잘 못 탔다. 내려서 택시를 잡으려 해도 안 된다. 야고보 사도의 마지막 선교지역인 묵시아 행 버스 출발 시각이 임박했다. 걷는 쪽을 선택하고 뛰듯이 걷는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9시 15분발 버스의 매연 냄새만 남아 있었다. 하릴없이 10시 45분 버스를 탔다. 예정보다 빠른 12시 20분에 묵시아 해변에서 하차했다. 점심을 먹고 ‘세상의 끝’ 피스테라를 향해 걸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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