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 고통스런 일은 법문을 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집단도, 개인도 바닥까지 다 드러내 버린 터에 ‘인과’와 ‘참회’와 ‘인욕’과 ‘자비’와 ‘마음공부’가 다 무엇인가. 그것들을 운운하기에는 내 자의식이 용납해 주지 않았다. 그런 것들과는 전혀 무관한 모리배 집단임을 스스로 드러내 놓고도 대중을 기만할 뻔뻔함이 내게는 부족했다. 대중들에게 삼배를 올리며 참회했다. 전혀 종교적이지 않은 종교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신도들 눈에 피눈물이 흐르게 해서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엎드렸다. 그런다고 이미 다 드러내버린 밑바닥이 달라지지 않았다. 법문은 허공을 맴돌았고 시선은 정처 없이 흩어졌다. 스승과 신도는 공명(共鳴)하지 못하고 먼 곳을 부유했다.긴 내전 끝에 불온하고 무도한 자들에 의해 빈손으로 내쫓긴 이들은 ‘도둑떼’에 분노한 일부 의로운 신도들의 자발적 기금으로 법당을 사거나 짓고 새롭게 이름을 내걸었다. 그렇게 ‘불교진각종금강원’이 탄생했다. 모든 정재(淨財)를 신도들이 관리하면서 불조(佛祖)와 종조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겠다는 정신아래 출가문도 열었다. 당시의 불행한 내전이 재가수행자의 한계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종조의 유법인 출가제도를 시행한 것이다.불온무도한 자들의 손을 잡을 만큼 비굴하지도 못하고 의로운 이들과 함께 할 용기도 내지 못한 나는 광야에 홀로 섰다. 홀로 남겨진 광야는 거칠고 추웠다. 추위보다 추위에 떠는 자신을 보는 일이 더 추웠다. 비굴해지려 하는 추한 자신을 볼 때는 참혹하다 못해 비애감마저 들었다. 가치와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은 종종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지만 자기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그때 내가 지키려 한 것은 신념이었을까, 자기 존엄성이었을까.
권력의 주구가 되어 ‘합법적’ 보복에 앞장섰던 어떤 이는 ‘스크린 도어’ 너머로 ‘나는 배부른 집개, 그대는 배고픈 들개’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던져 주었다. 그 한 마디에 나는 하마터면 그를 용서해 줄 뻔 했다. ‘배고픈 들개’ 보다는 ‘외로운 들개’가 더 핍진하지만 어쨌든 나는 한동안 이 말을 주워들고 뼈다귀 핥듯 만지작거리며 남몰래 위안으로 삼았다.라바넬 마을을 지나자 길가에 알로롱달로롱 들꽃들과 간들간들 들풀들이 바람에 출렁이는 장관을 연출한다. 시인의 말처럼 가까이서 볼수록 예쁘고 사랑스럽다. 이런 길을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이가 나라는 게 감사하다. 또 다른 시인의 말처럼 ‘누구도 다치지 않고 걸어가는 향기 나는 길’이다. 이런 길에서 죽으면 나도 꽃대롱에 내려앉은 노랑나비 한 마리랑 늦도록 놀다가 밤이슬 맺히면 달빛 타고 고요히 흔들리는 들꽃이나 들풀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신은 죽어 아름다운 길이 된 것일까. 생전에 인간을 잘못 만든 과오를 피조물들의 발에 밟히며 참회하기 위해 이렇게 애틋한 길로 환생한 것일까. 신은 죽어 길이 되었고, 나는 살아 길을 간다. 피조물이 신을 밟으며 신나게 간다. OMG!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덜 순진했거나 ‘홍위병’의 손을 잡았더라면 이런 길을 걸었을까. 그때의 나는 어둠 속을 홀로 걷는 외로움에 서러웠지만 오늘의 나는 홀로 걷는 자유로움에 향기로운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때의 나는 바라는 것도 많았고, 그것이 채워지지 않을까봐 조바심과 두려움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안다. 그것이 나를 질곡으로 몰아넣은 제1원인이었음을. 아무 것도 바라지 않을 때 두려움은 사라지고 마침내 참 자유인이 될 수 있음을.지금의 나는 외칠 수 있다. ‘희랍사람 조르바’처럼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라고.그때는 세상 모든 것들이 내게서 등을 돌려 앉은 것 같았다면 지금은 세상 만물들이 나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듯하다. 누군가 그 끝없이 길고 황량했던 생(生)의 메세타 지대를 용케 통과해 온 보상이라고 말한다면 단호히 보상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말하련다. 인간세계의 실상과 인간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본 것만으로도 보상은 이미 충분하니까. 만약 ‘역사바로세우기’나 ‘과거청산’의 일환으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라고 한다면 그건 하고 싶다. 손해배상청구금액은 10원. 내가 잘못하지 않았음을, 나는 그저 인간이 비인간적이고, 종교가 비종교적인 이 도저한 형용모순을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었음을 확인만 받으면 그만이다. 기어이 내게 죄를 물으려는 자 있거든 ‘(60년)인생을 낭비한 죄’를 물어라. 모든 피의사실을 인정해 주겠다. 보상금 10원을 받으면 주머닛돈을 보태 스페인 군부독재자 프랑코 같았던 그 사악한 ‘십진필’과 ‘홍위병’과 ‘완장’들의 갱생기관에 기부하겠다. 참, ‘스크린 도어’와 ‘방화벽’을 치던 ‘침묵의 착한 사람들’을 빼놓으면 섭섭하겠다.이 향기로운 길을 그냥 두고 갈 수 없어서 동영상에 담았다. 귀국해서 재생해 보니 ‘길은 예쁜데 발도 아프고, 허기도 지고…. 걷기 싫다.’고 ‘배고픈 들개’ 한 마리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길이 좋아 초반에 너무 무리를 한 모양이었다. 허기 탓인지 다리에 힘도 없다. 황량한 메세타 구간이었으면 아무 문제 되지 않았을 것들이 이렇게 편한 길을 걷게 되니 또다시 여기저기서 아우성을 질러 대는 꼴이라니. 참 인간의 요사함이란.고심 끝에 32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엘 아세보 데 산 미구엘로 가기로 한 목표를 폐기했다. 21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이번 마을 폰세바돈에서 묵어가기로 한다. 산 중턱에 들어선 마을이 멀리서 보니 산장촌 같다. 입때껏 바둑판같은 밀밭 한 가운데 소심하게 들어 앉아 있는 마을들만 보아왔다. 산 중턱에 당당히 서 있는 마을을 보자 온몸의 세포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깨난다. 비록 ‘베수비오 화산의 비탈’에 선 마을은 아니라도 가슴은 뛴다. 숙소 위치만 따진다면 역대급이다.
산 능선을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조금 가다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완만한 오르막을 오른다. 마을 앞을 지나는 도로를 버리고 마을 가운데로 들어가는 길로 접어든다. 넓은 도로 가운데 어서 오라고 팔을 벌리고 선 목재 십자가 너머로 마을이 길게 늘어서 있다.마을 입구에 여기저기 허물어진 폐가가 눈에 띈다. 저기에서도 한 때는 엄마의 양배추 써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고, 아이들이 창밖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꿈을 키웠을 것이고, 아빠가 와인 병 코르크 마개를 따며 부르는 콧노래가 흘러 나왔을 것이다. 지금은 잔해만 남은 단란했을 한 가정의 흔적. 사람의 생애도 저러하여서 크고 작은 희로애락이 다 저렇게 스러져 가고 끝내 흔적조차 남지 않을 테지. 그리고 마침내 아무도 기억해 주는 이 없는 완벽한 소멸이 이루어지리라. 나도 곧 그렇게 사라지게 되리라. 그 영겁의 적멸이 이제 조금씩 다가오고 있고 은근히 기대도 된다. 다시없을 좋은 경험이 될 것이 분명하다. 다만 소멸로 가는 남은 여정이 지루하지 않기를, 잠시 비바람이 몰아치더라도 이내 무지개가 뜨기를, 여정이 끝나는 어느 늦가을 오후 4시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들거리는 코스모스와 억새의 무리들을 바라보며 눈감을 수 있기를. 생은 비루하였으나 죽음은 사내다웠다고 기억해 줄 이 하나 곁에 있어주면 좋고, 없으면 말고.(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