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쯤 더 가자 산타 카타리나 데 소모사 마을이 나타났다. 새벽 영업을 하는 알베르게 겸 바가 보인다. 야외 테이블과 의자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을 곁들인 대형 메뉴판도 세워뒀다. 나 같은 문맹들에게는 눈이 번쩍 뜨이는 친절이다. 무엇보다도 환한 불빛을 받으며 서 있는 태극기가 반갑다. 밖에 배낭을 내려놓고 또르띠야와 오렌지 주스를 가져와 먹으며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내가 50대 때 걸었던 길과는 달리 까미노의 500킬로미터 대는 콧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지는 길이었다. 지방도로를 따라 나란히 이어진 흙길도 좋았고, 얼마 가지 않아 엘 간소 마을이 나타나 준 것도 좋았다. 지칠 만 할 때 나타나 준 라바넬 데 까미노 마을도 고마웠다. 작은 마을인 엘 간소도, 라바넬도 한결같이 정겨웠다. 아담하고 정갈하고 소박하면서도 예쁜 마을들이었다. 무엇보다 길 자체가 좋았다. 삭막한 메세타 구간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는 듯 초목으로 덮인 주변풍광들이 마음을 달뜨게 한다. 내가 걸어온 50대의 그 길이 이렇게 산뜻하고 감칠맛 나는 길이었다면, 이렇게 정겹고 아늑한 길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또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내가 어떤 선택을 했어야 이런 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 그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갔더라면 지금의 나 보다 더 나은 나를 만날 수 있었을까. 자기모순과 자가당착을 침묵으로 회피해 왔다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자신에게 더 너그럽고 더 그윽할 수 있을까. 다시 톨스토이를 소환해 본다. 톨스토이는 종교적 가르침과 삶을 일치시키고자 했다. 누구보다 도덕적이었던 그로서는 종교적 가르침과 삶의 불일치를 견딜 수 없었다.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리나>를 통해 상류계층의 위선을 꼬집고 도덕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에세이 <고백>을 통해서는 집요하게 자신의 도덕성을 점검하면서 고통스런 질문을 던져댄다.명문 귀족이었던 톨스토이는 작품 속에서 농민의 삶을 찬양했다. 그는 말과 글로써만 찬양하는 위선자가 아니었다. 노년에는 스스로 영지(領地)와 재산을 포기하고 가난한 농부처럼 살았다. 거름통을 지고 ‘나는 농부다!’ 라고 외치기도 했다.죽을 때조차 농부처럼 죽고자 병석에서 ‘농부들은 어떻게 죽지?’라고 물었다는 톨스토이는 언필칭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위선과 가식을 벗어 던져라. 네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렇게 살아야 하고, 네가 그렇게 살지 않는다면 그렇게 말하지 말아야 한다.’말년의 톨스토이는 ‘교회는 악마의 발명품’이라 일갈했다. 그가 이런 극언을 한 자세한 배경까지는 모르겠다. 다만 자신이 예수이기라도 한 양 한껏 고매한 말씀을 ‘분사(噴射)’하면서도 행동은 말을 따라잡지 못하고, 말은 행동을 톺아보지 않는 가식과 위선의 삶을 사는 모든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질타로 나는 받아들인다.말과 행동의 간극이 벌어질 때 괴로워하거나 심지어 자기혐오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기혐오 대신 자기도취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다. 자아 존중감이 낮고 부박(浮薄)한 이들이 그렇다. 정신건강에는 후자가 월등히 유리하다. 누리는 삶도 후자가 훨씬 ‘간지’날 것이다. 톨스토이는 반면교사다. 귀족이면서도 농부의 삶을 찬양하고, 마침내 농부가 되고자 했던 그는 이로 인해 아내 소피아와의 불화를 피하지 못했다. 가출 끝에 아스타포보의 초라한 역사(驛舍)에서 죽어간 것도 언행일치의 삶을 추구한 결과였다. 계속 내면의 소리에 귀를 막고 가식과 위선에 찬 삶을 선택했더라면 그의 말년은 얼마나 ‘간지’났을까.모두가 톨스토이처럼 살 수는 없다. 어느 정도의 언행불일치는 인간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책이나 부끄러움은 고사하고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비루하고 부박한지 자각하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니체의 말처럼 신이 죽었다면 사인은 틀림없이 자살일 것이다. 신은 인간을 만들 때 자신을 닮게 만들었다는데 그 피조물이 저렇게 간특하고 사악하고 요사스럽다면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만들어진 피조물에 큰 충격을 받아 자살했을 가능성이다. 그는 인간들의 비인간적인 속성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인간세상이 복마전이 되어버리자 불량품을 만들었다는 충격으로 곡기를 끊어 버렸을 것이다. 그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스스로 세상을 등져 버렸을 것이다. 신이라면 응당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그는 정치인과는 달리 책임을 지는 ‘신’이므로.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의도대로 자신을 쏙 빼닮게 인간을 제대로 만들었음에도 자살했을 가능성이다. 신은 분명 자신과 똑 같은 인간을 만들었으나 피조물들의 비루함과 사특함이 여실히 드러나자 ‘나의 내면에 저런 저열한 것들이 숨어 있었단 말인가.’ 자탄하며 스스로 목을 매어 버렸을 것이다. 완전무결한 줄 알았던 자신이 저렇게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머리를 감싸 쥐며 ‘오, 마이 갓!’을 외쳤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자살로 신의 직위를 내려놓았을 것이다. 그는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종교인과는 다른 ‘신’이니까. 여전히 ‘인간세계가 비인간적’으로 돌아가는 걸 보면 후사(後嗣)나 후임은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있다고 해도 그는 ‘국정농단’ 이상의 인간세상을 농단하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혼신(昏神)에 불과할 것이다.니체, 당신의 말은 옳았다. 신은 죽었다. 사인은 자살이다. 국과수의 부검도, 법의학자의 소견도 필요 없는, 명백한.당시 가장 고통스런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의 태도를 지켜보는 일이었다. 그들은 내 앞에 ‘스크린 도어’를 치거나 ‘방화벽’을 쌓았다. 가끔씩 두드려도 보았지만 부질없었다. 부질없는 행동은 부질없기만 했다. 가까웠던 인간관계들이 다 무너져 내렸다. 내가 처한 현실보다도 그것이 더 나를 아프게 했다.내 아주 어렸을 적 ‘누가 우리 집에 왔다가 방을 나서면, 가는 꼴을 못 보더라.’는 얘기를 들려준 어머니의 말씀대로라면 ‘분리불안장애’는 내 가장 오랜 지병인지도 모른다. 친구와 하교하다 길이 갈라지면 끝까지 친구의 뒷모습을 돌아보는 것은 언제나 나였다. 내 생애 첫 활자화된 글은 친구와 우정과 의(義)에 관한 내용이었고, 사춘기 영혼을 흔들었던 책이나 영화는 모두 인간애에 관한 내용이었다. 지금도 그런 책이나 영화나 기사를 접하면 별 내용이 아닌데도 눈물부터 차오른다. 세상에 사람보다 더 좋은 건 없다고 믿어 온 내게 인간관계의 붕괴는 세상의 종말과 같았다.그렇게 죽고 싶은 것도 아니고, 죽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닌 시간이 지속되었다. 나는 산 채로 바르도(中陰)에 있었다.그 무렵 나는 노트에 마틴 루터 킹의 말을 이렇게 적어내려 갔다.‘역사는 이와 같이 기록할 것이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고함소리가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고.’킹 목사가 앞에 있다면 그의 품에 안겨 하염없이 울고 싶었다. 울다가 울다가 혼절한대도 좋았다. 그 ‘소름끼치는 침묵’ 앞에서 혼절했듯이. 그의 품은 한없이 넓고 따뜻할 것 같았다. 중이 언어도 통하지 않는, 다른 시대를 산 목사의 품에 안겨 울 때, 목사가 중을 쓸어안고 ‘그래, 그래. 다 안다, 다 안다.’ 말하듯 중의 등을 토닥여 줄 때 그것은 분명 완벽한 소통일 것이다. 말없는 가운데서 우리는 수많은 말을 주고받을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아무 말도 듣지 않아도 다 말하고, 다 들을 수 있는 이 자리를 나는 ‘나의 천국’이라 부르겠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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