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00년 전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문학가인 연암 박지원 선생은 최고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최고의 권세가 가문에서 자랐으며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였지만, 과거에 여러 번 낙방한 뒤 아예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에만 전념하고 살았다. 연암 선생이 과거시험에서 번번이 낙방한 이유는 당시의 양반을 비판하고 소외받는 서민들을 대변하는 글을 썼기 때문이었다. 연암 선생은 일찍이 실학과 인본주의를 주장했던 민족의 선각자이지만, 조선사회는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럼 개성과 창의성을 중요시하는 요즘, 우리 교육 현장에서는 각기 다른 아이들을 얼마나 인정하고 수용하고 있을까. 연암 선생과 같은 학생들을 극히 한정된 평가와 안목으로 그냥 지나치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는가? 요즘 들어 각종 대중매체에 무상 급식, 반액등록금 등 교육복지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교육에서 소외되는 학생들에게 관심과 배려로 교육의 혜택을 주자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우리가 우선해야 할 일이다.
기초생활수급자 자녀여서, 또는 사교육을 받을 형편이 못되어서, 방과후학교 교육을 받지 못해서 교육복지 대상자로 선정해 지원하는 것보다는 한 학생의 능력을 발견하고, 그 능력을 계발시켜주는 교육복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교육계획에서 주장하고 있는 맞춤형교육을 우리 교육현장에서는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 부진학생을 특별 지도하는 것만으로 맞춤형교육을 다했다고 하지는 않는지, 우리 교육자는 자주 스스로 반성해 봐야 한다. 학교공부는 편의상 객관적이고 공통적인 교육과정에 불과한 것이지 인생의 최고 가치인 행복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은 아니다. 한 학생의 행복을 위해서는 꿈꾸고 있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진정한 맞춤형교육이다. 지독한 문제 학생도 어느 한 영역에서는 분명 천재성이 있다고 믿고, 그것을 발견하고 신장시켜주는 것이 교육자로서의 기본자세가 아닐까? 그 천재성을 찾아보기도 전에 쉽게 포기하고 문제 학생으로 지목함으로써 자신의 무능을 덮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문제 학생이 어떤 계기를 통해 변화되고 성공하는 사례를 많이 본다. 그러한 사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학생들이 우리의 품 안에 있다. 부적응 아이들이라고 쉽게 포기하지 말고 성공 사례의 주인공이 될 것을 굳게 믿고 감동과 감화를 통해 변화를 줄 수 있는 교육자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기대한다면 먼저 그를 믿어야 한다. 믿지 않으면서 기대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기대감의 바탕에는 반드시 믿음과 사랑이 있다. 그러나 너무 지나친 욕심은 갈등을, 갈등은 분노를, 분노는 분열을 가져올 수 있기에 서두르지 않으며 욕심을 내려놓고 기다려 줄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형형색색 피어나는 꽃을 보면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아름다움이란 자기 모습으로 자기 자리에서 자기 때에 최선을 다해 피어나는 것임을 우리 선생님들은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피어나는 한 송이의 꽃을 가꾸듯 조급함을 접어두고 아이들을 뒤에서 지켜보고 격려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차분하게 기다려 주는 여유를 갖기를 소망해 본다. 꽃은 우연히 피지 않는다.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나기 위해서는 수많은 원인과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한다. 학생들의 능력을 믿고 기다려주는 교육, 눈높이를 맞추는 교육을 실천할 때 우리의 미래도 꿈도 피어날 것이다. <신상순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