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이 비판 아닌 비난과 말싸움의 착종(錯綜)이 되어서는 안 된다. 비판에는 몇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논리적 근거가 있어야 되며 그 목적이 상대로 하여금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를 기대하는 충정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최대한 인격적인 존엄을 살려야 한다. 이런 요건을 무시한 비판은 비난이 되어 곧잘 말싸움으로 변질된다. 니가 옳으니 내가 맞니 하며 삿대질이 되고 급기야 ‘하늘아래 어찌 너 같은 족속과 어찌 같이 살 수 있을소냐’ 며 영영 등을 돌리고 만다. 버섯 캐는 사람 둘이서 숲을 걷다가 한 사람이 무심코 땅위에 떨어진 과일을 밟았다. 그런데 그 과일이 갑자기 두 배로 커지는 것이었다. 다른 사내가 신기해 재차 밟았다. 그랬더니 다시 두 배로 커지는 것이었다. 그때, 짠-하고 산신령이 나타나 하는 말이 “자꾸 건드리지 마라. 건드릴수록 커져 종내는 너희들 갈 길을 막고야 말리라”고 했다. 한 사내가 궁금하여 과일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자 산신령은 “말싸움”이라고 가르쳐 주었다는 것이다. 요즘 사이버 공간에서는 이런 말싸움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한 주 동안 뉴스사이트에 오른 60여개의 의견(댓글) 중 절반이상이 상대를 헐뜯고 비하시키는 내용이었음을 비추어 볼 때 우리가 얼마나 비판에 대한 적정한 교육을 못 받았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비판을 받는 사람의 태도도 문제다. 자신의 비판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상대가 자신을 비판하는 것은 공격이고 험담이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집어 치우라고 얼굴을 붉힌다. 어떤 스님은 살아생전에 일부러 큰 그릇에 물을 담아 마셨다고 한다. 자신이 부지부식간에 작은 그릇이 되지 않기 위해 그리 했다는 후문이다.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그것을 발전의 계기로 삼는 사람을 우리는 큰 그릇이라 여기며 그런 사람이 우리의 지도자가 되기를 여망한다. 큰 그릇의 인물은 자신이 비판을 받을 때 오히려 감사해 하며 더 좋은 의견을 듣기 위해 직접 자리를 청하기도 한다. 유비가 방통을 수하 막료로 삼은 것은 그 좋은 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 그런 인물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최근 2017년 지진피해를 입은 흥해지역이 최근 정부로부터 특별재생사업 승인을 받고 내년 이 사업 시행을 앞두고 있다. 흥해읍 주민들은 도시재생사업이 펼쳐질 흥해읍 중심부가 문화재 현상변경 대상지역으로 경북도 문화재 관련 규제에는 건축물을 16m로 제한하고 있다며 주민들의 주거안정실현에 가장 큰 걸림돌인 지정문화재 규제 완화를 촉구했다. 주민들은 문재인 대통령과 정관계 고위인사, 경북도지사가 지진이 발생한 현장을 찾은 자리에서 문화재 규제완화를 건의했고 하나같이 긍정적인 답변을 했지만 지금까지 이에 대한 행정절차가 아직까지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말로만 피해지역을 돕겠다고 외치면서 시민 서명운동을 함께 동참하거나 나서서 돕는 지역 정치인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주민들은 이번의 서명운동을 지켜보면서 지역 국회의원, 시•도의원, 시장 모두 눈치만 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포항사회에는 시민을 생각하는 큰 그릇의 지도자가 없다고 했다. 아무도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며 아무도 진지한 자세로 대화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서로 인정하지 않으면 허공만 채워질 뿐이라고 했다. <이형광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