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정녕 결실의 계절인가? 수확의 계절인가. 따뜻해 보이던 하늘을 뒤로하고 충분치도 않은 가을비가 내리더니 싸늘한 바람이 스치며 차갑게 느껴진다. 신이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위엔 바람을 놓아주십시오. 마지막 열매들이 영글도록 명하시어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극의 따뜻한 날을 베푸시고 완성으로 이끄시어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맛을 넣어주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는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오래도록 혼자로 남아 깨어나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뭇잎 떨어져 뒹굴면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불안스레 방황할 것입니다. 릴케의 시 가을날은 가을보다도 더욱 가을색이 짙고 너무나도 깊고 웅장하여 한편으론 한 없이 단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수없이 많은 독자들이 읽고 가을볕처럼 따사로우면서도 한편으론 허전한 정서를 마음에 아로새겼을 것이다. 열정과 폭염으로 이글거리던 여름이 지나고 만물이 영글어 결실에 이르는 대자연의 서사를 릴케는 너무나도 짧고 선명한 이미지 속에 아로새겼다. 릴케의 시 가을날은 우리의 인생의 가을을 반성하고 되돌아보게 한다. 나의 인생은 지금 어느 정도에서 익어가고 어떤 결실로 구분되며 어떤 평가와 심판을 받을까? 우리는 아직 집이 없는 존재, 아직 집이 되지 못한 존재다. 더욱 아파하고 더 깨어 있으라고 낙엽이 떨어져 뒹구는 거리고 내몰아 더욱 방황하게 만든다. 그리고 반성, 후회하고 방황이라는 말을 얼마나 오랫동안 잊고 산 것 같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요즈음 우리 주위의 자연은 아름답고 다채로운 색채를 자랑하며 인공적으론 진정 표현할 수 없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고 황홀한 색감이 온 누리에 펼쳐져 우리의 감성을 마구 자극하는 조물주의 귀한 선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의식주 해결을 위하여 바쁘게 살아왔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계절의 변화, 주위환경의 색채에 대하여 무관심했다. 공연이나 연주회-전시나 창작발표회-출판기념 등 최소한의 문화 예술행사에도 관심 밖이었다. 근로시간이 년 2,052시간으로 OECD국가 가운데 멕시코에 이어 두 번 째로 많아서 OECD 평균 1,707시간에 비하면 345시간이나 많은 것으로 나타나 영국-호주보다 400시간이 더 많고 세계에서 가장 적다는 독일에 비교하면 넉 달 가량이나 더 일을 하고 있다. 수면시간은 7시간 41분으로 OECD국가 중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은 오래하고 잠은 부족하고 몸은 피곤하기만 한 것이 현실이다. 마음도 바쁘고 불안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여유를 말하기는 어려운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자원봉사를 요구하기는 힘들고 더욱이나 문화예술생활을 즐기라고 하거나 성숙한 문화를 이야기하기에는 더더욱 어려운 이야기 아닐까. 피곤한 몸과 마음에 어떻게 여유로운 문화생활을 요구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 7월부터 대기업을 중심으로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으로 단축시행하고 있다. 이제는 빨라진 퇴근 시간만큼이나 문화생활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전시회, 공연에 가거나 개인의 취미나 여가를 즐길 여유가 조금 더 생겼다는 이야기다. 즉, 문화융성의 새로운 기회가 열린 것이다. 그렇다 해서 문화융성이 저절로 우리에게 오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대구·경북 예술문화인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대구·경북 민들이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인들이 적극적으로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대형전시나 공연이 늘어나는 것도 좋지만, 민들이 주거지 근처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작고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많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