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멈, 날씨가 더운데 주스 한 잔 마시구려.” 영정 사진 앞에 주스를 부어 놓으며 말을 건넨다.평남 맹산이 고향인 노병은 이북에 있을 당시 천우당에 입당하여 노동당인 아버지와 한 집에 살았었다. 사상이 다른 한 지붕 두 당이 존재하여 부자지간이라도 마음 놓고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6.25 가 터지자 17세부터 45세까지 강제 징집 명령이 내려지자 노병도 예외 없이 친구 네 명과 함께 인민군에 입대해야만 했다. 노동당이 싫었던 노병은 군에 입대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탈출의 기회를 엿 보았다. 마침, 인민군이 후퇴하여 북으로 올라가는 도중 친구와 같이 부대에서 이탈하여 아군에 입대했다. 총알은 빗발치듯 쏟아졌다. 이데올로기의 이념 앞에 한 형제끼리 총을 겨누며 너도 죽고 나는 죽는 치열한 전쟁은 전향한 친구도 없어지고 해가 바뀌어도 끝이 나지 않았다. 주먹밥을 같이 먹던 아군은 다 삼키지도 전에 적의 총에 쓰러졌다. 곳곳마다 시체는 지천에 깔렸고 강물은 핏빛으로 흘렀다. 먹을 것이 부족하여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익지 않은 옥수수, 목화, 가지 등등 주인의 허락도 없이 보이대로 먹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삼년이 지나서야 끝이 났고 승자도 패자도 없이 폐허만 남긴 채 지도의 허리를 가로질러 놓았다.휴전이 되었지만 일가친척 하나 없는 노병은 갈 곳이 없었다. 동가식서가숙하며 오늘은 부둣가에서 쪽잠을 자고, 내일은 어느 초가집 추녀에서 선잠을 자기가 일쑤였다. 일할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부둣가 노동자, 냉차장사, 공장 노무자 등등 열 손가락에 꼽고도 남을 정도로 여러 가지 일을 했다.북한에 두고 온 부모 형제가 그리웠고 두고 온 4살 된 아들과 아내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술로 밤을 새우기가 여러 날이었다고 했다. 명절이 되어 전국이 대이동을 했어도 노병의 명절날은 오늘이 어제이고 어제가 오늘이었다고 했다.희망이 절망인 상태에서 이 곳 저 곳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외롭게 살다가 불혹의 나이에 남한의 아내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새로운 음식이 생길 때 마다 아내의 영정사진 앞에 먼저 음식을 가져다 놓아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먹는다. 배불리 먹지 못한 아내의 생각에 목이 메인다. “못난 남편을 만나 고생 많이 했소이다.” 노병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무공수훈 국가유공자인 이 홀몸 어르신을 1년 전부터 가사와 말벗을 해드리고 있는 대구지방보훈청의 보훈섬김이인 나에게 한마디 한다. “부모와 처자식도 버리고 선택한 남한입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