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그룹 창업주 김우중 전 회장은 1999년 대우그룹 해체와 관련해‘정부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된 바 있다. 2014년 8월 발간한 자서전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통해서다. 정부가 대우자동차를 GM사에 헐값으로 매각해 210억달러 손실을 봤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우그룹의 해체가 본인 보다는‘정부의 잘못이 크다’는 주장이다.한때 세계를 삼킬 듯 질주하면서 신화적인 존재를 과시했던 김우중 전 회장답지 않은 변명이기에 비난 받았다. 정말 김 전회장의 주장처럼 대우그룹의 해체가 정부 탓일까? 대우그룹은 1967년 대우실업에서 출발해 건설을 기반으로 고속성장하면서 현대그룹과 쌍벽을 이뤘다.특히 1993년 세계경영이란 슬로건아래 옛 소비에트 공산권국가들을 대상으로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인수합병을 통한 사세확장으로 단기간에 엄청난 성장을 이끌었다. 30여년 만에 41개 계열사, 39개 해외법인에 자산총액이 76조원에 달하는 재계 2위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그러나 대우의 세계화전략은 1997년 IMF 외환이 닥치면서 위기를 맞게 된다. 무리한 차입경영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게다가 쌍용자동차인수로 인한 현금고갈, GM과의 협상결렬, 삼성자동차-대우전자간 빅딜 협상결렬로 결국은 파국을 맞으면서 대우그룹은 해체의 수순을 밟게 된다. 그룹해체 당시 대우그룹는 90조원의( 국외 60조원, 국내 30조원)의 차입금에다 부채비율이 400%가 넘었다. 더 큰 문제는 41조가 넘는 분식회계(장부조작)다. 분식회계는 기업이 고의로 자산이나 이익 등을 크게 부풀리고 부채를 적게 계산해 재무 상태나 경영 성과 등을 고의로 조작하는 회계다. 기업이 자금 차입 비용을 절감하고 주가를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범법행위다. 때문에 대우의 분식회계로 인해 금융기관은 물론 40만명에 달하는 주식피해자가 발생하면서 사회적인 파장이 크게 일었다. 결국 대우그룹의 몰락은 분식회계와 무리한 차입경영, 투자실패에다 김 전 회장의 과도한 욕심이 근본적인 원인 이였던 셈이다. 김 전 회장이 정부를 탓하기에는 논리가 부족했다. 이처럼 인간은 왜 비이성적으로 판단할까? 하버드대 맥스 베저먼 교수는 인간을 비이성적으로 이끄는 요인으로‘손실기피’와‘집착’을 꼽았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20달러 경매 실험이다. 경영학을 전공한 베저먼 교수는 새학기가 되면 학생들에게 `20달러 경매`를 한다. 입찰가를 1달러 단위로 높여 불러야 하고 차점자(2등)는 자신이 부른 입찰가만큼 돈을 내놓아야하는 게 규칙이다. 1달러부터 시작한 경매는 순식간에 16달러까지 올라간다. 베저먼 교수는 “이쯤 되면 참가자들은 싼 값에 20달러를 손에 넣는 멋진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자신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서 댐에 물이 차오르는 걸 감지하기라도 한 듯 학생들은 조바심을 내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리고 상위 입찰자 두 명만 남게 된다. 최고가를 부른 두 학생이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 미끼에 걸려든 것이다. 차점자가 여기에서 멈추면 15달러를 내놓아야 한다. 물론 낙찰자는 20달러를 가져간다. 베저먼 교수는 "한 입찰자가 16달러를 부르고 다른 입찰자가 17달러를 부릅니다. 16달러를 부른 학생은 18달러를 부르거나 16달러의 손실을 감당해야 하죠."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지지 않기 위해 전략에 집착하기 시작하는 단계다. 경매는 18, 19달러를 지나 20달러에 이른다. 이성적인 관점에서 보면 입찰자들은 손실을 인정하고 경매를 중단해야 하지만 멈출 수가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경매는 21달러, 50달러, 100달러를 훌쩍 넘어 최고 204달러에 이른 적도 있었다는 게 베저먼 교수의 설명이다.‘손실기피’와 ‘집착’으로 스스로 함정에 깊이 빠져든 것이다.지난 4.13총선에서 새누리당의 모습이 그렇다. 총선 전만 해도 콘크리트와 같은 고정지지층과 야권분열이라는 호재에 힘입어 과반을 뛰어넘어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 할 수 있는 180석까지 얻을 수 있는 자신감에 넘쳐났다.때문에 ‘진박’타령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었고 지루하게 이어진 공천파동도 개의치 않았다. 선거 중간 몇 번의 파열음의 시그널이 있었지만 새누리당은 이를 무시하고 넘겼다. 새누리당의 선거과정을 베저먼 교수의 20달러 경매로 표현하면 이미 20달러를 넘어 50달러를 향하고 있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한 셈이다. 이런 비루한 새누리당의 행태에 지지자들의 피로도는 점점 높아지면서 균열이 가고, 위기의식을 느낀 야권지지층의 결집은 다져지고 있었다. 결국 새누리당은 선거는 참패하고 8년간 이어온 1당 자리마저 더불어민주당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김무성 대표의 옥쇄파동이 20달러의 경계였다면 훨씬 전에 멈춰야 옳았다. 고정지지층과 야권분열 상황을 너무 과신한 판단착오가 참사를 초래한 것이다.이번 선거로 기우려진 운동장은 야당에서 여당으로 넘어왔다. 우리나라 보수층을 대변하는 새누리당의 위기다. 천막당사와 같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때다. 꼰대근성을 버리면서 21세기를 대비하고 디지털 당으로 거듭나는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고정지지층의 고령화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젊은층에게 다가설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면서 지지층의 확장도 꾀해야 한다. 이번 과오를 반면교사로 삼아‘20달러 경매’의 우매함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경상매일신문=노재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