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귀한 돌섬인 독도에 무궁화를 심은 지 벌써 30년이 다가온다.
독도에 나무를 심기 위해 28살때인 지난 88년 지역 선후배들과 단체를 결성하고 나무심기에 한창 열을 올릴 때 무궁화 묘목 10여 그루도 신주 모시듯이 가져가 독도 서도에 고이고이 심었다.
이때는 매년 봄에 나무도 심었지만 그해 가을에 다시 독도에 들어가 육림사업도 함께 했다.
흙과 물이 귀하면서 바람마저 거센 독도에서 나무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우리는 갖은 방법을 동원하곤 했었다.
매년 독도에 들어가 무궁화가 커가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하지만 1996년 당시 김영삼 정부는 독도 생태계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나무심기를 전면 금지시켜 버렸다.
이때부터 우리 땅 우리 영토에 나무를 심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수년 뒤 다른 행사를 핑계로 서도에 들러 무궁화의 생존을 확인했다. 우거진 잡초들 속에서도 모진 비바람을 이겨내고 나지막한 모습으로 꽃을 피운 한그루의 무궁화를 보고 얼마나 반갑던지 울컥한 적이 있었다.
이후로는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지난 2000년 초 육지의 무궁화심기 단체 회장과 독도 동도에 무궁화를 몰래 심기로 작정하고 날짜를 잡아 실행에 옮겼다. 그당시 독도에 들어가는 것은 관계기관들의 허가를 받아야 했기에 아무나 쉽게 들어가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다른 행사를 틈타 둘이서 빠져 나가 독도경비대가 있는 동도에 3그루를 심는데 성공했다. 그에게 신신당부했다.
독도에 나무를 심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다.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 반드시 무궁화는 수난을 맞을 것이니 절대 보안유지를 해달라고 수차례나 다짐을 받았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가 언론에 발설한 것이었다. 결국 이 무궁화는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독도에서 퇴출당했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모 부서와 함께 일본의 독도 야욕에 대응한 우리의 독도정책을 극비에 공동으로 수립하고 추진했다.
독도 유인도화 사업, 독도과학기지 건설, 독도방파제 건설, 독도 입도 전면개방 등 굵직한 주권사업들이 극비리에 계획되고 진행됐다. 특히 유인도화 사업은 `독도 입도 전면개방 발표`와 함께 ‘독도마을’ 프로젝트로 이름 붙이고 2006년 독도 서도에 김성도 부부, 이예균 푸른울릉독도가꾸기 회장이 먼저 들어가 보금자리를 틀었다. 2차로 필자를 포함한 1명이 더 들어가 5명이 독도 마을 만들기 사업을 본격 추진하려 했었다.
이 극비사업 내면에는 청와대도 모르게 나무심기도 재추진하려 했으나 2007년 대통령 선거때 여야 정권이 전면 교체됨에 따라 비밀에 묻힌 채 미완성으로 파묻혔다.
독도 무궁화 심기는 필자 혼자서 또 다시 진행했다. 지난 2013년 무궁화 5그루를 몰래 숨겨 독도에 들어가 동도 중턱에 심었다. 수 차례 들어가 몰래 물을 주면서 무럭 무럭 자라는 것을 조바심으로 지켜 봤지만 이것마저도 지난 해 관련 공무원들에게 발각돼 퇴출당했다.
무궁화만 생각하면 가슴이 저민다. 자다가 문득 문득 깨어 날 때도 있다. 길가에 핀 무궁화를 보면 애써 고개를 돌려 버린다.
내나라 내 땅에 국화(國化)하나 제대로 못 심는 경우가 어디 있는지. 저들 나라 저희 땅에 그들의 나라 꽃을 못 심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20대 청년은 이제 육십을 코 앞에 두고 있다. 몰래 무궁화를 심는 것도 지치고 힘이 든다. 애가 탄다. 또 시도할 수 도 있지만 좁은 독도 땅에서 그리 오래 숨길 수 없을 것이다.
이 지면을 빌어 독도 동도에 무궁화 한그루라도 심기를 간청한다. 경비대원들이 공식적으로 관리하게 되면 분명히 꽃을 피울것이다. 기념식수가 좋을 듯하다.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그 누구라도 좋다. 독도에 무궁화를 심는 것은 단순한 나무심기가 아니다. 민족혼을 심고 우리 영토 주권을 강력하게 선언하는 생명의 나무, 긍지의 나무, 겨레의 나무를 심는 것이다. 이제 그 반가운 소식이 들리기를 하늘로 돌아갈 때 까지 지나새나 기다릴 것이다. [경상매일신문=조영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