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창시절은 어떠했을까? 추석에 고향 풍기에 가서 앨범을 찾아봐도 학창시절은 잘 머리에 떠오르지 않고 옛날기억을 떠올릴려고 중학교때 쓴 일기랑 구름관찰일지를 찾아보았지만 도무지 찾을수 없었다. 초등학교 동창들, 중학교 동창들,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내가 어떠했는지 물어볼 수도 없고 난감했다. 경주에 살기에,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는 ‘추억의 달동네’를 찾아가 보았다. 경주에서는 40년전, 50년전의 모습이 이렇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별로 잘 느끼질 못하였다. 그러다가 학교길과 교실에 가보았다. 아이스께끼를 파는 청년을 보면서 옛날에 학교다니던 시절이 새록새록 기억이 났다. 초등학교 4학년때쯤 아버지 주머니에서 1천원을 훔쳐서 학교앞 문방구에서 오뎅, 라면, 뽑기 등등 엄청 사먹고 아버지 눈치보면서 집에 들어간 것이 생각났다. 일찍 배운 도둑질 덕분에 동생한테 칭찬(?)도 많이 듣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나는 추억속에서만큼은 엄청난 영웅이 되어 살았다. 교실에 들어가 보았다.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 가운데 뒤쪽에는 가방을 두손으로 번쩍 들고서 무릎꿇고 벌을 서는 아이, 선생님이 시켜서 일어나 말을 하고 있는 아이, 여러 가지 모습이 내 눈에 잡혔다. 초등학교 6학년 때가 기억이 났다. 나는 엄청 숙제를 해가기 싫어 했다. 그래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걸상들고 교실 뒤에서 그 다음시간 수업을 듣는 것이었다. 분명히 친구들하고 같이 놀았는데 친구들은 숙제를 언제했는지 벌은 늘 나혼자 섰던 기억이 새롭다. 유난히 성격이 내성적이었기에 선생님께서 일어나 국어책이라도 읽어보라고 시키셨을 때에는 더듬더듬 책을 조그마한 소리로 읽었고 아이들은 키득키득 웃었었다. 그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시면서 “현규가 잘할 수 있는데 지금은 떨려서 그래 우리가 조금만 기다려 주자.” 쉬는 시간엔 늘 조잘조잘 재잘재잘 거리면서 얼마나 할 말이 많았었는지 수업시간이 되어서도 그 재잘거림이 멈춰지지 않아서 단체로 선생님께 기합을 받던 기억이 났다. 우리반은 42명이었는데 그때의 친구들은 어디에 다가고 빈 교실과 옛 기억만 덩그라니 남았다. 초등학교 6학년때 우리반 담임선생님이셨던 김정묵 선생님은 지금쯤 어디에 계실까? 학교를 졸업하고 한 번도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드리거나 한번 찾아가서 대포한잔 받아드린 적이 없다. 풍기에서 살고 있는 초등학교 동창들에게 수소문해서 다음 설에는 꼭 찾아뵙고 “고맙습니다” 말 한마디를 하고 싶다. 추억의 달동네 교실을 나오면서 나는 교복자율화 세대라 교복에 대한 추억이 없지만 많은 분들이 교복을 입어보며 즐거워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도 어느새 즐거움과 행복함으로 가득찼다. 나는 평범한데 주위의 행복함이 가득하니 내 마음도 행복함에 물들었다.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서 사람들과 자유롭게 말도 하고 어울리고 하지만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외롭고 많이 힘이 들었었는데 선생님께서 그런 나를 아시고 받아주시고 품어주신 기억이 새롭다. 비록 숙제를 안해간 적이 많아서 자주 걸상을 들고 수업을 들었지만 나를 이해해주시고 품어주시는 선생님 앞에서 벌을 받으면서 듣는 수업은 하나도 힘들지 않고 즐거운 수업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내가 이제는 좀 잘살게 되었다고 다른 사람들앞에서 뻐기면서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모습을 본다. “추억의 달동네”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정신차려 이 친구야. 너의 원래 모습은 왕따를 당하고 무시받고 외로운 모습이었어 그걸 기억해 넌 지금은 자랑스러운 개구리지만 올챙이로 살 때를 기억할 때 네 삶이 지켜지는거야.” “추억의 달동네”는 그냥 한번 가보는 곳이 아니다. 옛날 나의 초라한 모습을 기억하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모습을 기억하면서 나는 현재를 잘살고 있는지 내 자신에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진다. 시골에서 살다가 도시로 나와서 정신없이 돈의 노예로 살아온 내 모습, 초등학교 때처럼 지치고 힘들고 외로운 모습으로 살아가는데 이런 나에게 따뜻한 말한마디로 친구가 되어주고 위로를 해주는 이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오랜 시간동안 초라한 과거를 잊으면서 살으려고 발버둥쳤지만 ‘추억의 달동네’에서 내 생각이 틀렸다는 마음이 들었다. 초라한 과거가 오늘의 건강한 나를 만들어 주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내 기억이 초라한 과거, 나를 감싸주시고 받아주신 선생님을 기억한다면 나는 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추억의 달동네’를 나오면서 내게 초라하지만 행복했던 과거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신 사장님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말을 하고 싶었다. 전기는 전기선을 통해 흐르고 수돗물은 수도파이프를 통해 흐르듯이 행복한 추억을 먼저 경험하신 사장님께서 나에게 행복하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건강하게 삶을 살아가라고 이 장소를 준비하시고 선물하셨다는 마음이 들었다. ‘추억의 달동네’를 통해 나는 잊어버리고 잊고 살아왔던 선생님을 다시 기억할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 부족하고 외로웠던 나를 품어주시고 기다려주셨다.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단지 영화에서 많이 보아왔기에 드라마에서 많이 본 풍경이기에 좋아보이는 장소에서 사진을 찍고 추억쌓기만 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소망과 행복이란 마음의 세계를 가지고 우리를 품어주신 분들의 마음을 알고 배웠으면 좋겠다. ‘추억의 달동네’는 말 그대로 근대사 박물관이다. 나는 박물관에서 소중한 선생님을 다시 마음으로 만났고 나의 원래 모습이 어떠했는지 발견할 수 있었다. 메말라가는 우리사회에 따뜻한 추억을 다시 생각하게 할 수 있도록 근대사 박물관을 만들어 주신 사장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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