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광복 70주년, 6.25전쟁 65주년을 맞아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형산강 전투’에 참전했던 학도병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전쟁의 참상과 세계 최빈국에서 21세기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자유 대한민국의 존재 가치를 후세들에게 알리기 위해 군번 없는 한 노병을 만나 보았다.
[경상매일신문=김놀기자]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을 해서도 안 되고, 전쟁이 일어나서도 안 됩니다.”
‘44일간의 포항전투’에 학도병으로 참전, 대한민국을 위해 젊은 날을 바친 최봉소(83ㆍ사진) 6ㆍ25참전유공자회 포항지회장의 굳은 다짐이다.
1950년 8월 11일부터 9월 23일까지 이어졌던 ‘44일간의 포항전투’는 낙동강의 최남단을 잇는 형산강에서 일어난 전투로 형산강마저 뚫린다면 부산까지는 순식간에 점령당하는, 대한민국의 존망이 달린 절체절명의 전투였다.
그는 당시 전투에서 형산강은 붉은 피로 물들어 ‘형산강(兄山江)’이 아닌 ‘혈산강’(血山江)이라며 당시의 피비린내 나는 참상을 전했다.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고 전투에 참전했던 17살의 군번 없는 학도병이 이제는 팔순을 넘긴 참전유공자가 됐다.
포항시 북구 중앙로에 위치한 6ㆍ25참전유공자회 포항지회의 벽 면 곳곳에는 6ㆍ25 전쟁에 대한 사진과 그림, 글 등이 걸려 있어 전쟁의 참혹함과 긴박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곳에서 만난 최봉소 지회장은 긴박하고 아찔했던 65년 전을 회고하고 인터뷰 내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전쟁의 참상을 알렸다.
최 지회장은 대구상고 4학년이던 시절, 17세란 가장 어린 나이에 학생들로 급조된 육본 직할 26연대 소속의 학도병으로 안강기계전투에 참전해 살아남은 몇 안 되는 학도병이다.
그는 다시 3사단 26연대 소속 작전상황병으로 참전해 그해 10월 1일 최초로 38선을 탈환해 국군의 날을 만든 한 부대원이 됐다.
3사단은 원산을 거쳐서 만주가 손에 닿을 듯한 두만강의 혜산진까지 진격했었다며 굶주림과 부상, 추위 등으로 수많은 전우의 주검을 앞에서 봤다며 억지로 눈물을 참는 듯 했다.
북한 공산군의 불법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에서 대한민국은 경상도 지역 일부만 남긴 채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일촉즉발의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잡혀오다시피 한 학도병 81명 중 대다수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으며 훈련 역시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군번 없는 군인’으로 전투에 참전야만 했다.
이에 대해 최 지회장은 “무식해서 많이 죽고, 무식해서 용감했다”며 “미치지 않고서는 전쟁을 할 수 없었다”고 당시 우리 군의 수준을 회고했다.
1950년 9월 23일에 끝난 ‘44일간의 형산강전투’에서 학도병를 비롯한 아군은 2천301명이 사망했으며 인민군 1만5천명을 사살해 형산강 전투사에 가장 빛나는 전과를 올리는 데 일조를 했다.
이처럼 형산강 일대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생했지만 군번도 없이 참전한 전우들은 이름 세자조차 남기지 못 한 채 지금까지도 땅에 묻혀 있는 실정이다.
특히 최 지회장은 “사실상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투가 된 형산강 도하작전에서 연제근 상사만 있는 게 아니라 6.25 전사에 나오는 나머지 12분들의 이름과 업적을 기르는 게 필요하다”며 “국방부와 당시 3사단에 요청해 도하작적에 참가한 분들을 찾아달라고 요청했으나 해당 부대는 자료가 없다며 전사를 잘못 알리는 오류가 될 수도 있다”며 연 상사만 영웅시 하는 것을 우려했다.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포항에 사는 참전유공자 중 생존자는 1천51명이다.
이분들의 평균 연령은 86세로 이들 중에 90살 이상은 27명, 93살은 3명으로 이제 여생이 그리 길지 않다.
청춘을 바친 우리들의 희생에 돌아온 건 국가와 국민들의 무관심이 더 슬프다는 최 지회장의 말씀 앞에 고개가 숙여졌다.
그는 “매달 평균 15명이 사망하는 등 이제는 모두 늙고 병들어 대다수가 거동이 불편하고 요양병원에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차가운 땅 속에 묻혀있는 동료들도 9만 명이 넘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월호 인양에 수천억 원씩 들이면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전우들의 유해 발굴에는 별 관심도 없으니 정말 답답할 지경입니다. 그들의 명예와 조국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6.25 전사자 유해 발굴과 참전유공자에 대한 처우개선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라며 살아남아 훈장을 두 번이나 탄 게 오히려 숨진 전우들에게 죄스럽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들에게 주어진 숙제가 있다는 그는 “6ㆍ25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잊혀 진 전쟁일 뿐입니다.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을 해서는 안 되고, 전쟁이 일어나서도 안 되는 만큼 우리는 6ㆍ25 전쟁에 대해 알리고 전쟁을 막아야 합니다”라며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6.25의 참상을 알리는 일에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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