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국정개입의혹 문건’ 진위여부와 청와대 문건 유출 경위를 수사 중인 검찰이 5일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지목된 정윤회씨에 대한 문제의 ‘정윤회 문건’의 내용은 허위라는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유상범 3차장검사)은 이날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박관천(48) 경정이 작성한 ‘정윤회 문건’의 내용은 허위이고 ‘비선실세’로 지목된 정윤회(60)씨와 청와대 ‘십상시’들의 회동은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검찰은 문건에 나온 이른바 ‘십상시 회동’은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으나 수사가 명예훼손 고소에 맞춰 문건 내용 진위 파악에만 국한돼 정윤회씨가 실제로 국정개입을 했는지 여부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즉 검찰은 지난해 11월28일 청와대측의 고소장을 접수받아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지 38일만에 중간수사결과를 내놨지만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포괄적으로 규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3인방’ 가운데 이재만 비서관만 직접 조사했고 나머지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에 대해서는 소환조사조차 하지 않고 서면조사로 대체하는 등 애초부터 수사의지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검찰은 문건 내용의 진위 규명을 위해 회동장소로 지목된 강남 J중식당 대표와 지배인을 조사하고 J중식당 본점과 지점 예악장부 등을 확인한 결과 정씨와 청와대 ‘문고리3인방(이재만ㆍ정호성ㆍ안봉근)’이 출입한 기록을 찾지 못했다.
또 정씨의 최근 1년간 통신내역을 포함해 청와대측 고소인 8명의 업무용 및 개인 휴대전화 전체에 대한 통신사실 자료를 회신 받아 디지털증거분석시스템(IDEAS)으로 분석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 측 고소인 가운데 이재만, 안봉근 비서관이 시사저널 및 세계일보에서 정씨 관련 보도가 나온 이후인 지난해 3월24일~4월3일, 지난해 11월24일~29일 수차례 정씨와 통화한 사실만 확인됐고 ‘회동’으로 볼만한 연락은 없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문건에서 언급된 ‘십상시’모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동시간대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정보 조회결과에서도 정씨와 청와대 관계자들이 같은 장소에 있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정윤회 문건’은 박 경정이 정보출처인 박동열(62)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들은 증권가 찌라시 등 풍문과 다른 정보 등을 과장하고 짜깁기 해 사실과 다르게 작성한 것으로 검찰은 판단했다.
검찰은 박 전청장에게 찌라시나 풍문을 전해줬다는 정보담당 경찰관, 광고업체 대표 등 6명을 불러 조사한 결과 이들 역시 “시중에 유포되는 풍문 등을 박 전청장과 주고받았고 ‘십상시’ 모임관련 내용은 말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박 전청장의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여 확보한 자료에서도 정씨와 청와대 관계자들의 ‘회동’과 관련된 아무런 자료도 발견되지 않았다.
정씨와 청와대 측 고소인들은 “단체로든 개별적으로든 현 정부 출범 후 만난 사실이 없다”고 공통적으로 진술했고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 외 고소인들은 “정씨와 전혀 모르는 사이”라고 진술했다.
시사저널이 지난 3월23일 보도한 ‘정윤회의 박지만 미행설’도 사실무근으로 결론 났다. ‘박지만 미행설’은 박 회장이 2013년 말 지인 김모씨로부터 “정윤회가 미행 한다더라”는 취지의 말을 전해들은 것이 발단이 됐다.
이후 박 회장은 지난해 1월 박 경정에게서 “정윤회의 사주를 받은 남양주 카페 운영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미행한다”는 내용을 보고 받았고 그 무렵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전화해 사실확인까지 요청했다.
박 회장은 박 경정의 보고를 받은 뒤 친한 지인들에게 미행설을 언급했고 이 자리에 참석했던 인물 중 한명이 시사저널 측에 제보해 보도에 이르게 된 것으로 조사됐다.
시사저널 보도 후 박 경정은 박 회장의 요청에 따라 자신이 보고한 미행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박 회장에게 전달했고 박 회장은 박 경정에게서 전달받은 ‘회장님 미행관련 件(건)’ 제목의 4쪽 분량 문건을 검찰에 제출했다.
한편 김 비서실장은 시사저널 보도가 나온 뒤 박 회장에게 “미행관련 자료가 있으면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고 박 경정은 박 회장의 부탁에 따라 지난해 3월28일 박 회장 측근 전모씨를 서울도봉경찰서 정보보안과장실로 불러 그 자리에서 미행 관련 문건을 작성해 전달했다.
박 경정은 검찰 조사에서 해당 문건이 허위라는 사실을 인정했고 조 전비서관은 박 경정에게 미행 문건 작성을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박 경정은 박 회장이 미행 관련 문건을 청와대에 전달하려 할 때 적극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결국 ‘박지만 미행설’은 박 회장 측근 김모씨→박 회장→박 회장 지인→시사저널을 통해 유포됐고 이 과정에서 박 경정이 미행설이 실체가 있는 것처럼 허위 보고해 박 회장이 미행설을 믿게 됐다고 봤다.
한편 ‘정윤회 국정개입의혹 문건`을 비롯한 다수의 청와대 문건이 유출 된 것도 모두 박 경정이 실행하고 조응천 전비서관이 뒤에서 지시한 것으로 검찰은 판단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경정은 조 전비서관의 지시를 받고 2013년 6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자신이 청와대 행정관 시절 작성한 청와대 문건 17건을 박 회장 측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경정은 이와는 별개로 지난해 2월10일 청와대를 나오면서 ‘정윤회 문건’과 ‘박지만 문건’을 포함해 총 14건을 반출했다. 이중 6건은 박 회장에게도 전달된 것이다.
이후 서울청 정보1분실 소속 한모(45) 경위가 같은해 2월15일 주말 당직 근무를 서면서 정보1분실장 사무실에 들어가 박 경정의 짐을 뜯어 문건을 대부분 복사했고 이는 다시 숨진 최모(사망ㆍ당시 45세) 경위에게 전달됐다.
한 경위는 복사한 청와대 문건 중 일부를 한화그룹 정보팀 대관담당 직원에게 건넨 바 있다.
최 경위는 평소 친분이 있던 세계일보 조모 기자에게 ‘청와대 행정관 비위’관련 문건과 ‘H사 비자금 조성 의혹’ 문건 등 2건을 카카오톡으로 전송했고 지난해 5월8일에는 ‘정윤회 문건’이 포함된 복사본을 통째로 조 기자에게 넘겨줬다.
검찰은 이날 수사결과 발표와 함께 조 전비서관과 한 경위를 불구속기소했다.
문건 작성 및 유출자인 박관천(48) 경정은 문건 유출과 관련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공용서류은닉,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외에도 자신의 범행을 숨기기 위해 동료경찰관 등을 유출범으로 지목한 허위 ‘유출경위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제출한 무고 혐의까지 더해져 최근 구속기소됐다.
조 전비서관에게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공무상비밀누설 혐의가 적용됐고 한 경위에게는 방실침입ㆍ수색 및 공무상비밀누설 혐의가 적용됐다.
지난해 12월13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취 경위에 대해서는 공소권없음 처분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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