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끝자락이다. 거리에는 트리가 반짝이고 구세군의 빨간 자선냄비가 종소리와 함께 저물어가는 한해를 알리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 가난한 이들은 배고픔 또한 더하기 마련이다. 이런 와중에 청와대는 권력암투에 진실게임이 한창이고 정치는 밥그릇 싸움이 한창이다.
이래저래 한기(寒氣)와 허기(虛飢)는 민초들의 몫이다.
예나 지금이나 문화예술인은 대부분 가난하다. 그런데도 문화예술가 지망생들은 꾸준히 늘어나니 불가사이한 일이기도 하다.
어느 오페라의 애기처럼 젊은이들은 가난조차 낭만이고 이들이 겪는 고통은 그때마다 아름다운 아리아로 승화되지만 현실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한 젊은이들에게는 사랑이나 결혼은 사치가 된지 이미 오래다.
유례없는 실업대란에 청년실업으로 젊은이들의 삶은 팍팍하기 그지없다. 그러다보니 사회적으로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하는데도 크게 관심을 둘리가 없다.
고생인줄 알면서도 본인 스스로가 택한 길이라고만 생각하기 일쑤이다. 그 와중에서 살아남는 자가 진짜 예술가가 아닌가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한마디로 훌륭한 글 뛰어난 작품은 잘 팔리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좋은 글이나 작품이라고 해서 다 잘 팔리는 것도 아니고 또 팔린다고 해서 다 좋은 글이나 작품이 아니다.
문학인이나 예술가가 어떻게 하면 잘 팔릴 글을 쓰고 작품을 만들까 고민하기 시작할 때 그의 글이나 작품은 이미 예술이 아니라 상품이 된다.
만약 금아 피천득 선생이나 황진이, 섹스피어의 글이나 모차르트의 작품을 잘 팔릴 것으로 쓰고 작곡했다면 우리는 지금 그들의 글과 작곡으로부터 위대한 감동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집 없는 서러움과 빚에 쪼들리면서도 가난을 선택한 덕분에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풍성해졌는가?
이언 가난한 예술인들을 돕기 위해 2년전 예술인복지법이 생겼다. 이른바 최고의 법이다. 그러나 법제정 이후에도 문화예술인들의 현실은 여전히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고통이 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지난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도 젊은 예술가들은 하나같이 사회안전망 밖에 사는 삶의 고단함을 토로한 바 있다.
때로 이들은 힘든 현실을 견디다 못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 이들의 죽음에는 애도라도 표할 수 있지만 소리없이 이름없이 사라진 문화예술인들에게는 그마저 허용되지 않는다.
이들의 한기와 허기를 메꿔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문학이며 예술이라니 하며 사치라고 여기는 분들도 있을 터이다.
무엇보다 먹고 사는 일이 소중하니까. 그러나 먹고 사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에는 우리네 인생이 너무 아쉽다.
문화와 예술을 뒷전으로 밀어둔 결과 우리 아이들은 어느새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이 되어 버렸다.
영어와 수학에만 올인하면서 정작 아이들을 위한 가치나 문화는 외면해 버린 때문이 아니겠는가?
따지고 보면 불행한 것이 어디 아이들뿐이랴. 청년, 중년, 노년을 막론하고 무한경쟁사회에서 지치고 위로가 필요한 것은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살율, 저출산율, 청년실업, 노인빈곤 세계 1위인데 두말이 필요하겠는가.
권력놀음과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환관들이여 꺼져가는 문화예술의 혼을 놓지 않으려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한기와 허기를 면치 못하는 그들의 시린 손을 한번쯤 잡아주면 어떻겠는가?
문화예술이 우리의 미래요 살길이요 국민통합의 명약이니 말이다.
좋은 文學 경북지회장 박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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