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섬유산업 1세대인 우정(牛汀) 이동찬(李東燦)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향년 92세 노환으로 별세, 12일 애도의 물결속에 발인식을 갖고 영원한 안식처인 김천시 봉산면 금릉공원 묘원에서 영면을 시작한다.
고인은 1922년 포항에서 출생, 대구에서 사업을 했으며, 김천에 묻힌 영원한 대구·경북인으로 불려지는 인물이기도 하다.
고인은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2년 수료, 부친인 故이원만 코오롱 창업주를 도와 사업에 뛰어 들었다.
이 명예회장은 1957년 4월 12일 부친과 함께 대구에서 ‘한국나이롱주식회사’를 창립하고 국내 최초로 나일론사를 생산해 한국 섬유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설립 20주년이 되던 1977년에 코오롱그룹 회장으로 취임해 화학, 건설, 제약, 전자, 정보통신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며 국가경제 발전을 이끌었다.
이 명예회장의 경영관은 본인이 제정한 코오롱그룹의 경영이념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산업인의 사명에 투철하고 능률과 창의로써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는 보람찬 일터를 만들며 인간 생활의 풍요와 인류 문명의 발전에 이바지한다’라는 경영이념은 직원과 회사의 성공을 도모함과 동시에 국가와 세계에 기여하려는 의지를 담았다.
이 명예회장은 1982년부터 1996년 1월까지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올바른 노사관계 정립과 기업윤리의 확립에 앞장섰으며, 1983년부터 3년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며 섬유인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섬유백서’를 발간하는 등 섬유산업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고인은 대한농구협회 회장과 대한골프협회 회장, 2002 한·일월드컵대회조직위원회 초대 위원장도 역임하며 아마추어 스포츠 발전과 국가 이미지 제고에 이바지했다.
특히, 코오롱구간마라톤대회, 코오롱마라톤팀 등을 창설해 대한민국 마라톤의 전성기를 이끌어 손기정 선수 이후 56년 만에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에 기여했다.
생전에 고인은 무척 검소한 삶을 살았으며, 1996년 코오롱그룹 회장 퇴임 이후에 이 명예회장은 미술 작품 활동에 전념, 1992년 고희전(古稀展), 2001년 팔순전(八旬展)에 이어 2009년에는 미수전(米壽展)을 열었다. 2001년부터는 ‘우정선행상(牛汀善行賞)’을 제정, 올해까지 선행인들에게 직접 시상을 할 만큼 애정을 표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관계자를 빈소에 보내 유족에 위로의 말을 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당 대표와 정재계, 체육계 인사들이 빈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했으며 언론도 "그 옛날 가난했던 조국에 따뜻한 옷을 입혀주고 그는 떠났다"는 내용으로 고인을 애도했다.
오래남을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떠난 고인을 다시한번 회고하며 진심어린 마음으로 한국 경제계 큰 인물을 애도하면서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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