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경제를 넘어 창조경제로 국가는 달려가고 있지만 그 실체가 피부로 느껴지는 데는 아직도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창조경제를 이루어갈 핵심 인재는 바로 창조적인 기업가 인데, 기업가 정신을 놓고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이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내세울 사람이 많지 않다.
기업가 정신이 도대체 무엇인가? 일정한 수입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지칭하였던 초기 생각은 포스트모던 운동이 들끓기 시작한 시기가 되자 슘페터에 의해 새롭게 정의 되었다. 그는 기업가란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용해 시장을 변화시킬 새로운 혁신으로 이끌어내는 창조적 파괴의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으로 정의했다. 그는 말이 끄는 마차에서 말을 때어내고 대신 엔진으로 바꾸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만들어진 자동차가 바꾸어낸 세상에 주목하였고 이것이야 말로 자신이 말하는 기업가 정신의 사례로 칭송했다. 그러나 슘페터는 이러한 과정에 존재하는 위험은 자본가의 몫이라고 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끓어오른 실리콘 밸리의 기적을 바라본 피터 드러커는 위험을 무릅쓰고 혁신으로 달려가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기업가라고 정의했다. 차고에서 만들어낸 개인용 컴퓨터가 세상을 바꿔 이제는 사람마다 손바닥에 인터넷이 연결된 시대가 되었다. 다르게 생각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제품을 만들어내는 메이커들의 시대가 온 것이다. 스티브잡스가 그랬고 빌게이츠가 그랬고 져커버그가 그랬다. 그러니 이들이 짊어지었던 초기의 위험은 그다지 크지 않았고 짊어질 만 한 것이었다. 그래서 드러커는 “위험을 짊어지지 않는 사람은 일년에 두 번 정도는 큰 실수를 한다, 그러나 위험을 짊어지는 사람은 일 년에 두번 정도는 큰 실수를 한다” 는 약간 농담 섞인 진담을 하면서 위험을 짊어지는 도전정신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슘페터와 피터 드러커의 차이는 위험을 누가 지느냐로 결정적인 차이를 갖는다. 위험을 감내하는 도전정신에 충만한 사람이란 참으로 애매하다. 그 위험의 크기에 따라 감내할 수 있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드러커의 생각을 따르려면 위험도를 짊어지는 벤쳐기업가가 될 것이다. 이들의 위험을 나눠지기 위해 사회는 엔젤펀드를 만드는 등 노력을 한다.
기업가 중에는 이러한 슘페터나 드러커의 정의에 맞지 않게 그저 선친의 가업을 물려받는 사람들도 있고, 일부 악덕 기업가들의 행태로 부정적인 시각도 있어, 혹자는 기업가라고 하지 말고 창업가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일본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슘페터나 드러커가 말한 그런 새로운 경제를 창조할 창조경제 역군으로 기업가 말고 더 좋은 말은 없을까? 기업가는 앙트러프러너(entrepreneur)라는 불란서 말을 전 세계적으로 사용하므로 그 말의 원래 뜻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 말로 앙트레(entre)는 무엇과 무엇 사이, 즉 틈새를 의미한다. 또한 프레니어(preneur)는 영어로는 테이커(taker)이고 우리말로는 “잽이”가 된다. 그러니 순수 우리말로 하면 “틈새잽이”가 맞다.
이 말은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와 피터드러커의 위험을 무릅쓴 도전 정신을 모두 포함한다. 틈새를 찾으려면 얼핏 겉보기에는 연결된 듯 한 틈을 창조적으로 파괴해야 하고, 기존의 시각을 파괴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꿔야 한다. 틈새에는 길이 없으니 연결하는 모든 과정에는 위험이 따른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식의 틈새에 끼여 죽는 것이 아니라 견우와 직녀 만나게 까치가 은하수 다리를 놓듯 멀고먼 틈새를 연결할 때 엄청난 경제가 창조되는 것이다.
그러니 벤쳐기업가를 만나면 어김없이 물어야 할 것은 도대체 무슨 틈새를 보고 있느냐? 그 틈새는 얼마나 벌어져 있느냐? 그 틈새를 어떻게 잡아 낼 거냐? 이 세 가지만 물어보면 된다. 정부도 창조경제 하려면 이스라엘을 배우자, 핀랜드를 배우자 이런 것도 필요하지만 진지하게 무슨 틈새를 잡아낼 것인지 전략을 짜야 할 것이다. 포항도 철강 산업 안쪽만 들여다 볼것이 아니라 철강 산업과 다른 산업사이의 넓은 틈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고 이를 잡아채는 틈새잽이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 옛날 차마고도의 절벽을 타고 강물을 외줄로 건너던 마방들의 틈새잽이 정신을 오늘에 살려내야 할 것이다.
이재영 한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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