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현대의료체조의 기원인 스웨덴의 ‘링(Ling 1776~1839)체조’ 보다 훨씬 이전인 1547년 조선 중엽 퇴계(退溪 1501~1570) 이황 선생이 ‘활인심방’이라는 의료체조를 행한 기록이 남아있다. 링의 체조가 1830년대에 완성된 점을 볼 때 약 300년 정도 앞선 것이다. 우리 겨레가 낳고 세계가 우러르는 대학자 퇴계가 평생의 정신ㆍ육체의 건강법으로 삼았던 활인심방(活人心方)의 몇 가지 기초를 음미하며 그의 건강과 장수의 비결을 알아보고자 한다. “여보게 이황이 밤에도 이황인줄 아는 가?” 이 말은 퇴계의 둘째부인 권 씨에게 한 아낙이 “부군께서는 고명한 유학자이시니 재미가 없으시겠다”라고 한 물음에 답했다는 에피소드이다. 권 씨는 좀 4차원적인 구석이 있었던 듯한데, 어떤 날은 퇴계가 제자들에게 강의하는 모습을 문 앞에서 지켜보다가는 “아이고… 점잖은 척 하시기는, 밤에는 그렇게 나를 못살게 구시면서…”라고 했단다. 당연히 퇴계의 얼굴은 홍당무가 됐고, 제자들은 터진 웃음을 참느라 진땀 뺐을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는 그가 70세에 이르기까지 병마와 싸우면서 생활해야 했고, 관직에서도 건강악화로 오래 근무하지 못하고 물러나야만 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것으로, ‘웰빙(weell-being)’하려는 현대인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매우 크다. 퇴계는 한국적 주자학의 조종으로 유교의 도통연원을 중국에서 조선으로 옮겨 놓았다고 평가받는 위대한 사상가이며 스승이다. 안동 도산서원에서 길러낸 제자가 300여 명이 넘고, 사후 이들에 의해 영남유림의 학통이 형성된다. 성리학의 체계를 완성한 퇴계는 유학의 도통인 주자(朱子)를 넘어서는 동방의 주자로 불린다. 그러나 퇴계는 젊은 나이에 학문에 너무나 심취한 나머지 건강을 잃고 평생을 후회하며 살았다. 20세 때 주역(周易)을 읽고 그 뜻을 주야로 강구하느라 먹고 자는 것을 잊다시피 했다. 훗날 조사경(趙士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어린 나이로 일찍이 망령되게 뜻한 바 있었으나, 그 방법을 몰라 한갓 각고(刻苦)하기만 과심 했던 탓으로 파리하고 고단해지는 병을 얻었다”고 했다. 활인심방은 퇴계가 자신의 불행(병 얻음)을 당시 제자들이나 선비들, 그리고 후세 모두가 되풀이하지 않도록 마련한 건강지침서이다. 450여 년 전 퇴계가 오늘과 같은 의술이나 건강법이 없었음에도 병약함 몸으로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건강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이론지침인 활인심방을 정리하고 이를 실천한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예순을 넘긴 만년의 나이에도 안동 토계에서 봉화 청량산을 오가며 끝없이 사색할 만큼 대단한 체력을 유지했다. 이 길을 오가는 것은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여간 만만치 않은 일이다. 활인심방은 ‘마음을 통한 상상의 건강증진법과 상상의 치료법’ 그리고 ‘체조를 통한 신체의 건강 예방과 양생법’으로 이분된다. 왜냐하면 퇴계는 심신의 조화가 곧 건강의 지름길이며 도덕적인 삶이 곧 인간의 완성을 이루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신의 건강’=‘도덕적 인간’=‘경(敬)사상’이라는 퇴계식의 건강교육론과 철학이 성립한다. 이것은 현대의 체육교육 목표인 심신의 조화라는 ‘전인교육’과 동일하다는 측면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활인심방 본문은 활인심서(活人心書), 중화탕(中和湯), 화기환(和氣丸), 양생지법(養生之法), 치심(治心), 도인법(導引法), 거병연수육자결(去病延壽六字訣) 및 사계양생가(四季養生歌), 양오장법(養五臟法), 보양정신(保養精神), 보양음식(保養飮食) 등의 10개 부분으로 구성됐으며 대부분을 수양과 치심에 할애하고 있다. 활인심방 중화탕 처방은 실제로 탕약을 복용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치료하는 정신 치료법이다. 약제는 ▲간사한 생각을 하지 않음 ▲좋은 일만 행함 ▲마음을 속이지 않음 ▲필요한 방법을 잘 선택함 ▲분수를 지킴 ▲시기하거나 샘내지 않음 ▲성실히 행함 등 30가지로써 자신의 환경과 처지에 맞게 제조해 자신의 병을 치료하고 또 적당한 치료법을 찾는다. 화기환은 ‘참을 인(忍)’을 말하며 기(氣)를 조화한다는 뜻으로서 필요할 대 한 알씩 복용해서 효과를 보는 것이다. 이는 본인이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고 때로는 남을 위해서도 사용될 수 있다. 중화탕 30알과 마찬가지로 마음을 다스리는 정신치료법의 하나이다. 보양음식에는 백탕(栢湯), 서여주(薯蕷酒), 지황주(地黃酒), 무술주(戊戌酒), 유죽(乳粥), 녹각죽(鹿角粥), 산서죽(山墅粥), 산서면(山薯麵) 등이 서술됐다. 서여(薯蕷)는 산약(山藥)을 말한다. 일명 ‘마’라고도 하는 데 맛은 달고 성질이 따듯하며 독이 없다. 심신이 허약한 사람의 건강을 회복시켜주고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운 증세를 막아주며 생식기를 강하게 해준다. 장복하면 귀와 눈이 밝아지고 몸을 가볍게 하는 데 안동을 비롯해 영주, 봉화 등 경북 북부지역에 산약의 생산량이 많은 것도 활인심방의 영향인 듯하다. 도인법은 굴신과 호흡운동을 통해 체내 기혈의 순환을 촉진시키고 나쁜 기운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일종의 양생법으로서 기공체조의 개념이다. 특히 도인법에 표기된 도인도는 현대의 건강 체조와 흡사한 훌륭한 운동요법을 제시하고 있다. 도인법에는 고치집신운동(叩齒集神運動), 요천주운동(搖天柱運動), 설교수인운동(舌攪漱咽運動), 마신당운동(摩腎堂運動), 단관녹로운동(單關轆轤運動), 쌍관녹로운동(雙腎堂運動), 양수안정운동(兩手按頂運動), 구반운동(鉤攀運動)이 있다. 요천주운동은 목운동으로서 양다리를 책상다리하고 편한 자세로 앉아 허리를 펴고 양손을 맞잡은 후 목을 좌우로 각각 24회 돌린다. 목운동 시 어깨도 함께 움직이며, 포개어 있는 손 모양에 유의하되 일반 맥을 잡을 때의 위치이며 손과 머리 부분은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인다. 오늘날 스트레칭 하듯이 하면 된다. 양수안정운동은 양다리를 뻗고 앉거나 책상다리하고 앉아 양손을 맞비비면서 ‘커허~’ 소리내기 운동을 5회한다. 양손을 맞잡아 깍지를 끼고 양손을 머리 위로 벋어 올리되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하는 운동을 9회 한다. 양손을 뻗을 때는 마치 하늘을 떠받쳐 올리는 기분으로 하되 자세가 구부러지면 안 된다. 퇴계는 평생 습증(濕症)과 위장질환·담증·부종·복통·토혈·심화열기(心火熱氣)와 같은 병고에 시달렸지만, 일흔 살의 장수를 누린 것은 활인심방을 필사한 노력에도 나타나듯이 마음과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철저히 자기관리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퇴계는 우리 몸이 우주의 법칙인 오행에 적절하게 순응하지 못했을 때 질병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몸이 우주의 자연법칙과 합일할 때 심신의 수련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는 다름 아닌 퇴계의 경(敬) 사상과 합치한다. 서양의 의료체조는 단순히 신체적 질병치유에 목적을 둔 것이지만, 양생체조인 퇴계의 활인심방은 예방의학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신건강까지 고려해 체육학적인 높은 운동효과를 거두는 체계화된 운동이다. 퇴계는 회복하기 힘든 질병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이를 잘 다스리면서 건강증진을 위한 적합한 방법을 찾고 또 자신에게 적용했다. 이것이 ‘활인심방’이다. 퇴계의 수적(手迹) ‘활인심방’은 퇴계의 건강이론(교육지침)이자 건강철학(비결)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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