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살기 위한 노력으로 점철되어 왔는 듯 싶다. 더 적은 노력으로 더많은 결실을 얻으려는 노력은 의식주의 모든 분야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성과를 획득했다. 기계가 농사를 짓고 기계가 옷감을 짜내고 기계가 집을 짓는다. 인간의 손발은 점점 쉬어 있는 시간이 많아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각종 전자제품과 컴퓨터의 출현은 생활의 여유와 풍요로움을 예고해 준다. 최첨단 기술이 쏟아내는 갖가지 문명의 이기(利器)는 5년이나 10년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인간의 편리를 위한 과학문명의 발달이 과연 어디까지 갈런지 모르지만 이런 과학의 발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편리한 만큼 거기에 따른 공해문제라든지 여러가지 부작용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거기에 비해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알랭’은 더 빨리 달리는 철도를 건설하려는 정부의 계획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하면서 ‘다섯시간 걸려서 갈 수 있는 거리를 두 시간이나 세 시간 걸려서 갔다고 해서 그 남는 시간을 우리는 과연 어디에 쓰고 있을까, 부부싸움이나 하고 일 없이 거리를 배회하고 찻집에 앉아 노닥거리는 데에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남아 돌아야 할 시간은 행방이 묘연하니 어디에도 간 곳을 찾을 길이 없다. 분명한 것은 모두가 하나같이 더 빨리 더 편리하게 살려는 육상경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쉽고 편리하게 사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가기 쉬운 드넓은 길만 따라 걸어서는 한평생 보람없이 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해도 우리는 글자를 등지고는 살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쓴 글을 읽고 또 쓰기도 한다. 인터넷 매체가 쏟아지면서 종이 매체의 쇠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지금도 종이 매체는 여전히 건재하다. 그것은 종이에 글을 쓰는 사람이 있고 또 읽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바슐라르’가 만년의 저서에 에서 밝혔듯이 무엇을 쓴다는 것은 외롭고 고독한 작업이며 의식의 모험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정신의 암흑, 영혼의 어둠을 밝히기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글을 써왔고 영혼에서 울어나는 감동을 언어를 통하여 종이 위에 기록했던 것이다. 그렇게 고독하게 기록된 언어들이 책이 되어 지상에 등장하고 누군가에 의해 그 책이 읽히고 또 읽힌다는 것은 분명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누구나 한번쯤 밤을 지새워 책을 읽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삶의 허무를 일깨우는 책, 의식의 지평선 너머를 가리켜 보이며 우리에게는 넘어야 할 강이 있고 산이 있고 바다에는 파도가 있음을 일깨워 주는 책, 내가 사는 좋은 집과 마을, 그리고 사회를 떠나 더 광대한 세상으로 나아가라고 손을 이끌어 주는 책, 지식을 쌓고 지혜를 얻고 보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라는 책, 우리들이 기쁨과 슬픔을 적나라하게 펼쳐 보여주며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게 하는 책, 수많은 책들과 만나고 그 책들만큼 많은 깨어 있는 영혼들과 공존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책의 가치는 그것이 없을 때의 빈곤과 내 누추함을 생각해 보았을 때라야 더욱 별처럼 반짝이며 나에게 다가선다. 하지만 이제 책을 읽는다는 것이 지식과 정보를 얻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온갖 전파매체가 책의 자리를 야금야금 침투해 오고 있다. 그것들은 편리함에 있어서는 감히 활자매체가 따라갈 수 없다. 그저 눈과 귀만 빌려 줄 것을 요구할뿐이다. 이런 시대일수록 책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은 물처럼 흘러 내리면서 자신을 정화하는 것은 물론이다. ‘책은 불행한 사람에게는 나무랄데 없는 상냥한 벗이다. 인생을 즐기도록 해주지는 못할지 몰라도 적어도 인생을 견디도록 가르쳐 준다’는 O. 골드 스미스의 말을 한번쯤 음미해 보면 어떨가 싶다. 세속적인 물질과 영혼을 살찌우는 정신의 유산을 저울질하여 보자. 잠시 잠간 반짝이다 가는 금세 변하고 없어지고 부서져 버리는 몇 푼의 재물보다 눈에 보이고 손안에 잡힌다는 그러한 재물을 탐내는 것보다는 인간의 맑은 지혜와 슬기를 더욱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정신적 유산을 물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빈(正賓) 집안에 감도는 서책의 빛깔과 향기야말로 값진 가풍일 수 있다. 우리 민족도 물질의 풍요로움 보다는 정신을 맑게 할 줄 아는 책의 문화에 다 많은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명리학자·사회평론가 권우상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 제보하기
[메일] jebo@ksmnews.co.kr
[카카오톡] 경상매일신문 채널 검색, 채널 추가
유튜브에서 경상매일방송 채널을 구독해주세요!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 / 150자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비밀번호를 8자 이상 20자 이하로 입력하시고, 영문 문자와 숫자를 포함해야 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