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9일 신림동 한 고시학원의 강사 강모(당시 33세)씨는 초조했다.
9년 동안 준비하던 사법시험의 최종합격 발표일이었지만 저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강의를 하기 위해 학원에 들어선 강씨는 그제서야 합격했다는 말을 들었다.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런 그가 미래의 횡령·사기 피의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강씨가 2000년에 쓴 합격수기에 따르면 고등학교 3학년 때 삼성그룹 고졸 공채에 합격했다. 이후 방위병으로 근무하던 시절 대학을 간 주위 선후배들에게 도움을 받아 대학 진학의 꿈을 갖게 됐고 25세가 되던 1991년 회사에 사표를 냈다.
강씨는 고등학교 교과서와 문제집만 구입해 시골집으로 내려가 대학 입시 준비를 했고 1991년 말 한양대학교 행정학과에 합격해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
대학 1학년 시절부터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한 강씨는 재학 중이던 1995년 제39회 행정고시 검찰사무직에, 졸업 후인 1998년에는 제16회 법원행정고시에도 합격했다.
이후 강씨는 신림동의 고시학원에서 강사로 일해 번 돈으로 생계를 꾸려가며 사법시험 공부에 매진했다. 결국 2000년 제42회 사법시험에도 합격하면서 `고시 3관왕`을 달성했다.
사법시험 합격 이후에도 한 법무법인에서 기업법무와 M&A 분야 전문가로 승승장구해오던 그였다.
하지만 강씨가 그동안 쌓아온 경력은 한 순간에 무너졌다. 현직 변호사로 활동하던 강씨는 지난달 27일 서울 성동구 한 지인의 집에 숨어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지난해 7월 강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받은 후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그를 끈질기게 추적해왔다.
강씨가 받는 혐의는 업무상 횡령과 사기다. 그는 자신이 맡은 소송에서 이겨 받은 보상금과 지인에게서 받은 투자금 등 총 8억4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3월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아파트 주민들이 공사가 늦어져 입주가 지연됐다며 시행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해 받은 보상금과 이자 등 4억9000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다.
또 `연예기획사의 주식매각 의뢰를 받았다`면서 지인 2명에게 주식을 사라고 속여 투자금 명목으로 3억500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강씨는 경찰조사에서 "횡령한 돈은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고 하면서도 세부적인 사용처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경찰 관계자는 "강씨가 도주한 사실도 있고 범행액수가 커 구속했다"면서 "현재 범행동기와 자세한 경위를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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