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갓 진출한 초년생들에게 ‘한국의 기적적 고도성장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강의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한 수강생이 느닷없이 질문을 하였다. “안철수씨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느냐”는 것이다. 의원이라 하지 않고 ‘씨’라 하였으니 아마 국회의원이 되기 전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이 시간에는 특정인을 두고 평가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한 것 같다”면서 비껴나갈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상대는 그냥 물러설 기미가 아니어서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하는 조건을 달고 말하였다.
“안철수씨에 대하여 왜 이렇게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외관상 보아서 안철수씨는 참으로 선량한 사람 같다. 하지만 공인으로서 평가할 때, 안철수라는 사람은 무엇을 하나도 제대로 이룩한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의사로서도 그 의무를 제대로 못한 사람이고, 컴퓨터 프로그램으로서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고, 대학 교수로서도 제대로 그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못한 사람이다. 따라서 그 사람은 정치가로서도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할 사람일 것 같다”라고 답변하였다.
지금 안철수와 김한길간의 정치도박을 보고 있으면 안철수라는 사람을 평가한 나의 관전평은 적중한 것이며 결코 비난 받을 일은 아닐 것이다.
여론조사를 하면 안철수 신당이 어떤 때는 새누리당을 능가하고, 조금 하락한다 하여도 민주당에는 언제나 두 배가 넘는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물론 최근에는 조금 뒤지기도 하였지만.
왜 이런 기현상이 한국 정치 판도를 흔들었을까? 안철수 의원 개인이 가지는 카리스마나 능력이 아니라, 기존 정치에 대한 환멸을 갖고 있는 절대다수의 국민 정서가 작동한 결과라는 것은 정치평론가들의 진단이 아니어도 다 아는 사실이다.
안철수 의원의 언어의 유희에 치밀함과 교활함을 더 한 것인지? 아니면 최소한도의 정치인으로서 소신도 없는 무골충이었는지는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그 실체가 드러나겠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작태를 봐서는 선량한 지지자들의 순수성에 환멸과 절망을 안겨주어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왜 비난을 피할 수 없느냐 하면, 민주당과 당 대 당 통합이던지, 민주당에 백기를 들고 투항한 것이던지, 아니면 흡수통합이 되었던지? 가부간에 국민에게 먼저 최소한도의 예의는 갖추어야 한다.
안 의원은 ‘기초의원 무공천 공약’을 파기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하여 민주당과 통합을 한다면서 “거짓의 정치를 심판하고 약속의 정치를 정초하기 위해 합당키로 했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 통합의 변은 기막힌 요설이다.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는 기존정당들을 ‘기득권 세력’으로 단정하고 이 세력을 타파하지 않는 한 한국의 정치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는 주장을 앞세워 선량한 국민들을 비몽사몽하게 만든 것이니 요설일 수밖에 없다.
지난 달 28일, 광주를 방문하여 “광주의 뜨거운 열기로 낡은 정치를 날려달라”고 호소하였다. 이 말은 민주당과 합당하기 이틀 전이었다. 이미 합당을 추진하면서 어떻게 이런 거짓의 몸짓을 하였을까! 안 의원은 그 전에도 광주를 찾아 와서는 ‘지역주의에 안주하고 혁신을 거부하는 세력’이라고 민주당을 맹비난을 하였다.
안 의원과 함께 신당 창당의 주역이었던 윤여준 의장도 2월 26일 기자들과 만나 “(구 정치와) 피투성이가 되어 싸울 것”이라면서 민주당과의 연대는 상상도 할 수 없다는 입장 표명을 하였을 뿐 아니라 “정치공학적 연대는 절대 결코 없을 것”이란 말을 한 두 번 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분통이 터졌으면 운명적으로 함께 갈 것이라고 항시 말하던 윤여준 의장이 지난 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안철수 이 자(者)가 얼마나 거짓말했는지 알아야겠다”고 노골적이고 원색적으로 비난을 하였을까!
어려운 가운데서도 ‘새정치’라는 원대한 꿈을 함께하겠다고 뜻을 같이하던 새정치기획팀장 이태규, 전략기획팀장 윤석규, 실무책임자 김성식 등 창당을 추진하여야 할 최고 동지들이 모두 떠났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정치는 개나 돼지가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제일 큰 덕목은
‘신뢰’다. 즉 믿음이다. 그런데 운명을 함께하겠다고 결집한 동지들, 그 중에서도 최고 브레인들이 한마디도 없이 떠난 것은 평소 안 의원이 그렇게 주장하던 ‘약속’을 자신은 지키지 않았다는 증좌(證左)다.
특히 안 의원의 딜레마(Dilemma)는 민주당과는 함께할 수 없는 대북ㆍ안보문제가 있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금강산 관광문제에 대해 “우선 관광을 재개하자”고 주장하였을 때, 안철수 의원은 관광 재개 조건으로 ‘북의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을 뿐 아니라 북한인권법제정에 대해서도 민주당과는 반대 목소릴 내었으며 남북관계 대해서는 튼튼한 안보를 주장하였는데 어떻게 이를 조정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만약 이 문제를 그냥 덮어두고 넘어간다면 원칙을 저버린 정치야합이라는 도덕적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박영근 한동대 교수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