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청하면에 위치한 용산(龍山)이란 야트막한 산이 있다.
높이가 200m도 채 안 되는 189.8m로 표기된 산이지만 스토리가 있고 전망이 좋아 교외 산행지로 꽤 알려진 곳이다.
전국에서 이름이 난 월포해수욕장을 끼고 있는데다 포항시에서 만든 감사나눔 둘레길이 잘 정비되어 오르고 내리는 탐방객들이 즐겁게 다닐 수 있어 편한 산이다.
용산은 이름 그대로 용(龍)과 관련된 설화가 있는 곳이다.
그 옛날 금슬 좋은 부부가 어렵게 얻은 아들이 타고난 기구한 운명 때문에 죽자마자 이 산에서 용이 승천(昇天)하였다 하여 ‘용이 하늘로 날아가 버린 산’ 이라며 이름 지은 게 용산이다.
용두리(龍頭里)에서 시작되는 산행로 들머리에 ‘겸재 정선 길’이라고 이름 지은 둘레길이 이어진다.
겸재(謙齋) 정선(鄭歚)은 조선 후기 산수화의 대가로 영조 9년(1733년) 58세의 나이에 청하 현감으로 부임해 이 지역 최고의 명승지인 내연산을 배경으로 산수화를 그려 우리나라 진경산수화의 발원지로 명성을 날리게 만든 분이다.
유명한 ‘내연삼용추도’, ‘청하읍성도’, ‘고사의송관란도’ 등 최고의 걸작을 이곳에서 그렸다.
조금 가다 보면 이 지역에서 보기 드문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우뚝 솟아 있어 선사시대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음을 증명해 보이고 있어 중요한 가치가 있는 유적들을 볼 수 있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오르막도 있고 거친 해풍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꼿꼿한 소나무들이 빼곡히 자라나는 솔숲길이 이어지기도 한다.
둘레길 안내판에 ‘감사100계단’ 이라고 쓰여 있는 계단을 어렵게 오르면 너른 바위가 나타나고 바위에 올라서면 월포해수욕장과 앞바다가 훤하게 시야를 시원스럽게 틔워준다.
바위이름이 ‘용두암’, ‘용머리바위’이다.
높이가 20여m 족히 되어 보이는 바위가 누군가는 김해 봉하마을의 부엉이 바위와 닮았다고 우스개를 하기도 하지만 이곳에는 그런 슬픈 사연은 없다.
용두암에서 북쪽으로 월포리 마을 안뜰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동해중부선(포항-삼척 간) 철도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용산을 관통하는 터널을 나와 월포 안뜰을 내질러 달리는 동해중부선 기차가 삼척, 속초, 고성을 넘어 금강산, 원산을 지나 러시아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모스크바를 거치는 유라시아 철도를 마음껏 달릴 수 있는 그 날이 언제일까?
꿈의 대륙횡단 기차여행을 즐길 날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그려보며 상념에 젖어 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인 것 같다.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 산길을 조금 더 오르니 용산 정상이다.
그저 밋밋한 정상이라 용두암에서 보는 조망이나 다름이 없지만 이색적으로 산 정상에 빨간 우체통이 세워져 있어 퍽이나 인상적이다.
행복의 소식을 전해 주려고 산 속에서도 오롯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여 반갑기 그지없다.
정상을 약간 벗어난 지점에 붉은 내화벽돌로 쌓은 2m 남짓의 탑이 세워져 새삼스럽다.
이곳 용산은 포스코 월포수련관이 산 아래 바닷가에 있어 포스코 관련 회사 임직원들의 연수교육과 팀워크 훈련 등이 빈번이 이루어지고 있어 용산 산행은 필수코스가 되고 있다. 아마도 훈련에 참가한 사원들이 하나 둘 들고 와 쌓은 공든 탑이 틀림없을 것 같다.
해마다 1월 1일 포스코 임원, 간부들과 패밀리사 임원들이 함께 모여 안전기원제를 올리며 한해의 무사안전을 비는 장소도 이곳 용산이다.
그리고 십여 년 전 방사선폐기물처리장 설치가 전국적 이슈가 되었을 때 이곳 용산도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되어 거센 반대로 무산되긴 했지만 암반으로 형성된 용산이 천혜의 요새로 각광 받은 바 있었다.
금빛 모래밭을 끼고 하얗게 부셔지는 파도의 포말과 해안가 암릉과 소나무들이 어울려 수려한 해안 절경을 보이고 있는 이 곳 풍광이 용산을 배경으로 한 폭의 풍경화가 되기도 한다.
정상을 지나 다시 남쪽으로 내려서면 바로 ‘솥바위’ 라고 불리는 암반이 나타난다.
‘임금바위’ 라고도 불리는 이 바위에 움푹 파인 구덩이에 가뭄이 들면 그곳에 물을 채워 액땜을 한다는 이야기가 얽혀 있는 바위다.
다시 발품을 팔아 30여분 내려서며 만나는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을 건너 너른 초지로 나서면 용산 산행의 날머리인 주차장에 닿는다.
산행시간이 2시간 채 안되지만 바다와 산바람에 취해 용(龍)을 타고 하늘을 나는 듯 용산에서의 한 나절을 즐겨봄도 재미나다.
경북산악연맹 수석부회장 김유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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