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있어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다. 정치사상 중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전적 체계에서도 행복(에우다이모니아)은 궁극의 목적이었다. 행복을 배려하는 것은 시대의 중요한 역할인데, 행복을 어떠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가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구성원이 갖는 행복 관점의 변모에 따라 그 사회의 정책과 산업방향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사회구성원에 아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일년전 퇴근해 집에 오니 큰 아이가 묻는다. “아빠는 행복을 원해? 불행을 원해?”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하교길에 ‘한수원은 행복을 원하는가? 불행을 원하는가?’라고 적힌 학교 앞 현수막을 보고 묻는 것이었다. 원자력이 지역에 들어선 이래 주민과의 갈등은 있어온 것이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품질검증위조 사건이 터진 최근 그 대척점이 최고조에 달하는 느낌이다. 원전반대 수준을 넘어 원전의 존폐를 논할 만큼 시선이 좋지 않다. 원자력 종사자도 가족과 함께 원전주변에 거주하고 있는 지역주민이다. 안전하지 않은 것을 맹신하며 부르짖을 만큼 어리석지 않다. 안전에 대한 신념과 최선이 있기에 직장에 자긍심을 갖는 것이고 가정을 영위하기에 행복을 갖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자괴감을 느끼더라도 내 가족과 이 나라를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백퍼센트 찬성이란 어렵다. 현수막을 설치한 지역주민의 의견도 존중되어야 한다. 문제는 지역주민이 원하는 행복관점에는 원자력발전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현기술로 신재생에너지와 태양광 등을 이용한 대규모 전력생산은 요원하고, 유가는 높은 상태에서 원자력발전을 제외한다면 국민부담은 증가하고 산업경쟁력이 저하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원자력을 반대하면서 이 부분을 간과했다면 난센스이다. 이제 원자력발전은 국민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발전소임을 알아야 한다. 모든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 최우선 운영 확보는 기본 전제이다. 원자력발전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 보다 ‘실(失)’ 보다 ‘득(得)’을 가져다주는 에너지라는 것을 인정하고 원자력산업계가 안전하게 관리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국민 개개인의 관심과 격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정욱 월성원전 1발전소 화학기술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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