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벙하게 생긴 사람이 다방 커피를 시켜놓고는 열변을 토했다. 그 시절, 그곳에서 사람 냄새 나는 유일한 변호사였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이 개봉 33일 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해 흥행 돌풍을 이어가는 가운데 `변호인`의 당시 활동상을 회고한 글이 법조계 안팎에서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앤장에서 일하는 황정근(53·사법연수원 15기) 변호사는 최근 법률신문에 기고한 글 `영화 변호인의 추억`에서 노 전 대통령의 1980년대 부산 지역 활동상과 당시 판결을 둘러싼 법리에 관한 의견을 풀어놓았다.
황 변호사는 1985년 부산 부민동의 법원에서 6개월간 시보를 했다. 당시에는 시보 15명이 교실 같이 큰 사무실을 함께 썼다고 한다. 사무실은 낡은 별관 2층에 있었으며 이 건물은 현재 동아대 로스쿨 건물로 쓰이고 있다.
그는 "꺼벙하게 생긴 40살 정도 되는 남자가 가방을 들고 시보실 문을 열고 들어와 명함을 죽 돌리고는 소파로 시보들을 불러모았다"며 "`노 변`은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고 첫 만남의 순간을 떠올렸다.
이어 그는 "`노 변`은 다방에 전화를 걸어 커피를 시켜 놓고는 열변을 토했다"며 "한참 후배인 시보들에게 인사하러 와서 다방 커피까지 시켜준, 사람 냄새 나는 유일한 변호사였다"고 회상했다.
당시 부산 법원은 시대 상황을 반영하듯 시국 재판으로 늘 시끄러웠다는 게 황 변호사의 증언이다. 그런데 창 밖을 내다보면 방청하러 온 가족들과 학생들 앞에서 일장연설을 하는 `노 변`이 있었다고 그는 술회했다.
황 변호사는 1981~82년 `부림사건` 피고인들이 고문에 의한 진술에도 불구하고 유죄를 선고받을 수밖에 없었던 법리적 배경도 설명했다.
그는 "영화에서 피고인들은 고문에 의한 진술 증거에 의해 모조리 실형을 선고받는다"며 "거기에는 형사재판에서 `전가의 보도`로 사용된 `실질적 진정성립 추정론`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다"고 말했다.
이는 수사기관이 만든 조서에 `(피의자가) 읽어보고 서명 무인(날인)했다`고 적혀 있으면 그 조서는 진술한 대로 적힌 것으로 추정한다는 법리다. 이것이 당시 법원의 판례였고 실무에서도 통용됐다.
이에 대해 황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에는 `원진술자의 진술에 의해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된 때` 증거능력을 인정하라고 돼 있었음에도 당시 법원은 법을 아예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부림사건 피고인들을 옥죈 대법원 판례는 결국 2004년 12월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해 폐기됐다. 이 판결을 이끌어낸 변호인은 후일 대법원장이 된 이용훈 변호사였다.
당시 대법원은 "원진술자의 진술에 의해 형식적 진정성립뿐만 아니라 실질적 진정성립까지 인정된 때에 한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전원 일치의 의견으로 판결했다.
황 변호사는 "형소법 규정대로 돌아오는 데 20여년이 걸렸다. 20여년 후에 폐기될 판례에 따라 유죄 판결을 받았던 영화 속 피고인들을 생각한다"며 "다시는 영화 속의 장면과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인 그는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역임했다. 1995년 행정처 재직 당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신설, 긴급구속 폐지 및 긴급체포 도입 등을 통해 인신구속 제도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온 대법원의 형소법 개정 실무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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