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하면 우리나라 국민 거의가 다 아는 높이 1,950m로 남한에서는 제일 높은 산이다. 사계절 모두 색다른 풍광을 보여주며 백록담 분화구를 비롯한 수많은 오름을 거느리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산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산이다. 지난 17일, 설국(雪國)의 한라산을 즐기러 제주도를 찾았다. 한라산 산행은 이미 여러 차례 해 보았기 때문에 낯선 산행지가 아니라 가벼운 마음으로 일행을 리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상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아 등반에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일행 중 오래 걷기가 어려운 분이 있어 백록담 정상 까지는 힘들 것 같아 영실(靈室)쪽 코스로 올라 어리목으로 내려서는 비교적 짧은 코스를 택하기로 하고 맛있는 흑돼지구이를 곁들여 저녁을 먹고 돌아와 잠을 청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채비를 챙겨 내려가 기다리고 있는 택시를 타려는데 기사가 영실 쪽은 갈 수 없다고 한다. 지난밤과 새벽에 눈이 내려 빙판에다 제설작업이 안되어 접근이 어렵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고도가 낮은 성판악으로 가기로 했다. 한라산 산행에는 대개 6개 코스가 있다. 첫째는 1,100고지 도로에서 갈라진 어리목(970m)에서 시작하여 사제비동산을 거쳐 윗세오름 대피소(1,700m)까지 가는 코스이다. 둘째는 영실휴게소(1,280m)에서 오백장군 병풍바위를 지나 윗세오름 대피소(1,700m)까지 오르는 코스로써 어리목코스와 마찬가지로 정상 남벽의 훼손 등으로 출입을 제한하여 정상을 갈 수 없어 산악인들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코스다. 셋째는 등산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성판악(750m)코스다. 속밭대피소를 지나 진달래밭대피소(1,500m)를 거쳐 백록담 정상을 오를 수 있는 가장 쉬운 산행로 이다. 넷째는 한라산 북쪽인 관음사에서 정상까지 가는 코스로 한라산 산행 중 가장 다이나믹한 코스로서 개미등, 삼각봉(1,500m) 등을 거치는 전문산악인들의 동계훈련장소로도 유명한 코스다. 다섯째는 최근 몇 해 전부터 개방된 서귀포 쪽에서 출발하는 돈네코(500m)코스로 평궤대피소를 거쳐 남벽 분기점까지 가는 비교적 완만한 산행로이다. 마지막 여섯째는 어리목 탐방 안내소에서 1.3Km떨어진 어승생악(1,169m)까지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를 말한다. 한라산에는 이렇듯 여러 갈래의 등반로가 있지만 어느 코스든 겨울산행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기상 변화가 심하고 삼다(三多)의 고장답게 바람 많아 방한과 방풍 등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산행지이다. 아침 8시에 산행을 시작한 우리는 부지런히 오르면 정상등반 허용시점인 12시전에 진달래밭대피소를 통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날씨가 점점 더 나빠지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고 주말을 맞아 눈꽃 산행에 나선 많은 등산객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산행속도가 엄청 느려 엄두를 못 낸다. 속밭대피소 까지는 그런대로 정상 속도로 오를 수 있었으나 점점 밀리기 시작한 행렬이 아예 전진을 못 할 정도로 정체현상이 일어난다. 사라오름 입구에서 진달래밭대피소 구간에 엄청난 등산객이 두 줄을 지어 오르면서 산속은 사람 물결로 넘쳐난다. 이건 산행이 아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명절 때 고속도로마냥 좀처럼 나아가지 못한다. 진달래밭대피소를 500여m 남기고 등반을 포기하고 뒤돌아섰다. 도저히 오를 수도 없지만 12시전에는 대피소를 통과 할 수 없어 정상을 가보지도 못 할 것 같아 눈밭길을 내려섰다. 꾸역꾸역 올라오는 수많은 등산객들 때문에 내려가는 길도 막힌다. 간신히 빠져나와 성판악 입구에 도달했지만 내려와 들은 바로는 기상악화로 정상등반이 통제되어 오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자꾸만 올라가고 있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등산인구가 이렇게 많았던가? 통계에 의하면 등산인구가 1,8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정말 엄청난 숫자다. 성인남녀 3분의 2가 산을 좋아하고 산을 찾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듯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는 국민이 많아 자랑스럽다. 하지만 숫자의 많음에 좋아 할 일만은 아니다. 산이 몸살을 앓을 정도로 한꺼번에 몰리면 자연보호도 환경보전도 어렵다. 자연을 즐기고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다지는 산행에도 자연에 대한 예절이 꼭 필요하다. 민족의 영산, 한라산이 아프다. 오래두고 자손만대가 자랑하며 즐길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가 자제하고 보호하는데 주저하지 말자. 설국의 경치를 만끽 하는 것도 좋지만 후손들을 위해 조금씩 양보하고 아끼는 미덕(美德)도 아름답다. 김유복 경북산악연맹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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