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서양세력이 동양으로 점차 밀려오는 환난을 동양 인종이 일치단결해서 극력으로 방어해야 하는 것이 제일 상책임은 어린아이도 익히 아는 일인데, 무슨 까닭으로 일본은 순리의 형세를 돌아보지 않고 같은 인종인 이웃나라를 약탈하고 우의를 끊어, 스스로 도요새가 조개를 쪼으려다 물리는 형세를 만들어 둘다 잡히게 어부를 기다리는 듯 하는가.” 190 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가 이듬해 처형직전 여순 옥중에서 쓴 ‘동양평화론’의 일부다. 그는 재판과정에서도 이토 히로부미가 동양평화를 저해한 인물이어서 저격한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안 의사를 독립지사로만 알고 있지만 기실 그는 단순한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동양평화의 이상을 꿈꾼 인물이었다. 그가 주창한 동양평화론의 요체는 한중일 3국간 상설기구인 동양평화회의를 뤼순에 조직해 기타 아시아 국가가 참여하는 회의로 발전시키고, 동북아 3국 공동은행 설립, 공동평화군 창설로 까지 나아가자는 획기적 발상이었다. 이는 유럽연합 형태의 한중일 평화체제 구상론으로, 시대를 한 세기나 앞선 가히 선각자적 견해였다.
안 의사의 기념관이 의거현장인 하얼빈 역에서 19일 깜짝 개관됐다. 기념관 내부에서는 참관자들이 유리창 너머로 하얼빈역 1번 플랫폼에 있는 안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현장을 볼 수 있다. 기념관에는 안 의사의 흉상을 비롯해 그의 일생과 사상을 담은 사진, 사료 등이 전시됐고 일부에는 한국어 설명도 붙여졌다.
지난해 6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의거현장에 기념 표지석을 설치하자고 제안한 데 대해 중국 정부가 기념관으로 답한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일본을 자극할 수 있다며 표지석 설치마저 주저해온 중국측이 이렇게 통큰 화답을 한 배경은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추진,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 수탈 역사 부인과 같은 일련의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에 우려와 분노를 표출해온 한중 정부와 국민간 인식의 공감대가 확장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중 양국이 ‘무언의 협력’ 속에 기념관 개관을 성사시킨 것은 일본의 역사도발에 대처하는 양자 외교의 한 전형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번 개관식이 현지 지방정부 인사들만 참석한 채 조용히 치러진 점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일본은 그동안 안 의사에 대해 ‘범죄자’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비난하고 격하시키는 데 열중해 왔다. 또 이번 기념관 개관에 대해 일본 언론들은 “한국과 중국의 일본 압박 공조”라고 분석하면서 은연중 자국의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듯한 모양새다. 하지만 이번 안 의사 기념관 개관을 단순히 한중간 반일 공조로 규정하는 것은 그가 평생 이루려 노력했던 동양평화를 모독하는 것일 수 있다. 오히려 이번 기념관 개관은 그가 주창한 동양평화론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고 올바른 역사인식에 기초한 진정한 동북아 평화 협력을 다잡는 계기가 돼야 한다. 하얼빈 기념관 문 앞에 걸린 시계는 저격 당시의 시간인 9시30분에 고정돼 있다고 한다. 아직도 동아시아 정세의 시계 바늘이 105년 전의 시간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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