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케이트 디카밀로의 동화책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비룡소 펴냄)은 최근 3만 부가 넘게 팔려나갔다.
2009년에 출간됐다가 별다른 조명도 받지 못한 채 잊혀진 이 책이 뒤늦게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것은 최근 시청률이 고공행진 중인 SBS 수목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400년 전 지구에 떨어진 외계인 도민준(김수현)과 톱스타 천송이(전지현)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린 이 드라마에서 도민준이 틈틈이 꺼내 읽는 이 동화책은 단순한 소품 이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지구인과 사랑에 빠진 외계인의 순수한 감정이 동화내용 속 문장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이야기의 결을 한층 풍성하게 만들고 드라마의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드라마가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준 건 2005년 MBC의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나온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책은 방송의 소개에 힘입어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김은숙 작가는 `시크릿 가든`(2010년)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신사의 품격`(2012년)에선 신경숙의 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작품 속에 녹여냈다. 두 소설 모두 베스트셀러 목록에 재진입했다.
드라마에 소개된 책이 인기를 얻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지난해부터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지난해 중순에 방송된 SBS 주말드라마 `결혼의 여신`에 나온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1916~1956`는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 SBS 드라마 `주군의 태양`에 나왔던 일본 그림동화책 `폭풍우 치는 밤에`는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깜짝 진입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끝난 KBS 드라마 `비밀`에 나온 에밀리 브론테의 명작 `폭풍의 언덕`과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인터넷 검색어 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관심을 끌었고, 판매 부수 증가로 이어졌다.
물론 드라마에 등장했다고 해서 모든 책이 후광효과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SBS 드라마 `천일의 약속`은 출판사 편집자인 주인공이 만드는 책이라는 설정으로 김진명의 역사소설 `고구려`를 집중적으로 부각했으나 호응은 그리 크지 않았다.
간접광고(PPL)를 목적으로 드라마 내용과 잘 어울리지 않는 책을 억지스럽게 등장시킨 경우에는 아무리 책이 빈번하게 노출돼도 효과는 크지 않았던 것이다.
비룡소의 모회사인 민음사 관계자는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은 작가가 이전부터 그 책을 알고 있었고 그 책을 워낙 좋아해서 드라마에 활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확실히 스토리에 녹아든 책은 시청자들이 궁금해하고 찾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드라마에 소개됐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그 책이 가진 매력이나 힘이 있어야 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것 같다"면서 "그렇지 않은 책들은 효과가 오래 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들어 드라마에서 책이 부쩍 늘어나는 배경으로 간접광고 이외에도 젊은 드라마 작가의 약진을 꼽는 견해도 있다. 기존 드라마 문법에서 탈피해 새로운 소재를 유연하게 다룰 줄 아는 이들이 극 중 장치로 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학평론가 강유정 씨는 "젊은 작가들이 자신이 재미있게 읽은 책들, 모티브가 된 책들을 드라마 전개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최근 눈에 띄게 늘고 있다"면서 "책이라는 매체를 시청자들과 교감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로 삼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들이 책이라는 매체를 매력적으로 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주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해당 책에 대한 소비를 높이는 건 분명하지만, 문학 전체에 대한 관심으로는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문학출판사 관계자는 "방송을 통해 숨겨져 있던 책이 뒤늦게나마 알려지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방송 하나로 베스트셀러가 좌우되는 건 그만큼 국내 문학출판시장의 저변이 취약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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