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이란 조폭 영화가 상종가를 치며 인기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그 영화의 무엇이 그토록 관람객을 열광케 하는가.
문화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하는 새로운 세기의 첫 출발지인 새천년을 맞아. 우리사회에서 가장 흔하게 자리매김 한 말이 무엇 이였을까. 정확하게 조사하고 통계를 낸 일은 없지만 ‘조폭’ 이라는 말이 그 상위의 자리에 있었다. 이 말이 많이 쓰이게 된 것은 절대적으로 조폭 영화 때문이다. 수년 전에 나온 ‘투캅스’ ‘테러리스트’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주유소 습격사건’등에 이어 지난해 들어 ‘친구’ ‘신라의 달밤’ ‘조폭 마누라’ 등의 영화에 이르기까지 가히 시리즈라 할 만한, 이런 조폭 영화들의 대박이 있었다.
조폭이란 말은 어느덧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정치권에서도 ‘조폭정권’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이니 과히 조폭 신드롬이다.
모 경찰간부가 쓴 ‘한국 영화 속에 투영된 경찰상’ 이란 자료에 의하면 “최근의 조폭 영화들은 조폭을 영웅시하고 경찰은 그들에게 거추장스럽고 부담만 되는 가벼운 존재로 표현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영화 속에서 속된 표현으로 ‘경찰을 물 먹이고 있다’는 것이다. 조폭은 영웅시되고 경찰은 가벼운 존재가 되는 사회분위기에는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그는 “영화 창작 활동에 제재나 불만을 표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현실에 기반한 표현은 이뤄져야 한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창작 활동에 간섭을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조폭 영화들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그 단적인 예로 얼마전 부산에서 일어난, 수업 중 급우를 살해한 사건을 들 수 있다. 김모군은 입학 직후부터 폭행당한 게 억울해서 범행을 저질렀는데, “처음에는 칼로 찌를 생각은 없었으나 영화 ‘친구’에서 칼로 찌르는 장면이 생각나 칼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범행을 저지른 김군은 이 영화의 대사를 다 외울 정도로 심취해 있었다고 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에게는 폭력적이거나 폭력을 미화하는 영상물들이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폭력물, 이대로 두어도 괜찮을까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있어야 할 때이다. 조폭의 경우 중국은 한술 더 떤다.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하고, 충성과 의리를 겸비한다. 중국 4대기서 중 하나인 수호지에 나오는 108두령은 양산박 충의당에 모여 제사를 지냈다. 용ㆍ기린 등의 깃발을 세워놓고 비록 국법을 어겨 죄를 지었으나 충성과 의협심을 목숨처럼 여기겠다고 맹세한다.
중국사학자 천바오랑의 ‘중국유맹사’는 사료에서 한나라 고조 유방과 명 태조 주원장은 미천한 신분으로 대표적인 정치건달이었다고 한다.
유방은 무뢰배로 건전하지 못했고 주원장은 거지 또는 떠돌이 승려 출신으로 적고 있다. 서양의 경우 역시 의리를 내세운 도적들이 많았다.
영국에서 영웅이 되다시피한 녹림당 로빈후드를 비롯해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이름을 떨쳤던 디에고 코리엔테스, 20세기 전후에 멕시코 혁명군인이었던 판초빌라 등은 ‘이상한 폭도’(?)에 속한다는 기록이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홉스 봄의 저서 ‘의적의 사회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의적이든 협객이든 폭력이 발호하고 조폭의 생리가 일반에 만연하는 것은 한 때에 그쳐야 한다.
최근 서울 송파경찰서 안흥남 경위가 출간한 한국 조폭 해부서에 따르면 고려 의종 때 정중부를 죽이고 정권을 장악한 경대승이 신변보호를 위해 사병을 배치한 도방이 조폭의 효시라고 했다.
구한말 흥선대원군의 개인 수족이었던 ‘천ㆍ하ㆍ장ㆍ안’역시 이 범주에 든다고 말하고 엄밀한 이론의 고증은 없지만 베테랑 형사반장의 주장이다.
최근 조폭의 생리에 대한 모방과 관심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이는 조폭영상물의 영향 때문이다. 흥행기록에 취했을 뿐 폭력의 해악에 대해서는 누구도 유의하지 않는다.
드라마가 이 지경인 것은 정치권 등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끼리끼리’ 정서 발로다. 특정지역의 조폭과 정치인이 돈독한 끈을 맺고 있는 것은 다반사다.
배신과 불신이 판치는 세태 속에서 화끈한 힘에 끌리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솔직히 말하면 문제는 힘의 논리다.
후진사회일수록 권력과 돈과 주먹은 힘든 과정을 생략해주고 빠른 시간 안에 목적을 달성해 준다는 매력이 있다.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은 건들거리며 놀고먹다가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건달바’란 성인(聖人)의 칭호를 받아다는 건달의 유래이고 보면 정치권과 폭력배의 유착의 역사는 사실 오래된 것이다.
자유당 시절 임화수ㆍ유지광ㆍ이정재로 대표되는 ‘정치깡패’들은 당시 부정선거에까지 개입해 마침내 4.19 혁명으로 자유당정권이 붕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후 어느 정권에서든 심심찮게 정치인과 조폭의 연계설은 계속 되어왔다. 정치인이 어느 누군들 못 만나겠냐 만 정권 실세라면 실세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 못잖은 도덕적 의무(노블레스 오블리제)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배동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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