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우경화 흐름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은 이중적이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에서 전략적 우위를 유지하려는 미국은 강한 동맹국 일본이 필요하다. 특히 국방 예산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동북아 지역에서의 안보역할 확대를 자청하고 있는 아베 내각이 고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이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용인한 후 미ㆍ일간 군사적 난제였던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가 해결된 것은 양국의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밀접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다. 반면,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나 역사교과서 문제 등 동북아의 역사 갈등은 미국으로서는 부담이다. 침략 전쟁과 식민지배 미화는 미국이 주도해온 전후 질서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동북아 안보의 한 축인 한국민의 분노를 자아내 대중(對中) 전략에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 직후 미국 정부가 ‘실망스럽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런 미국의 딜레마가 7일(현지시간) 윤병세 외교장관과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그대로 노정됐다. 윤 장관은 “과거사 이슈가 이 지역의 화해와 협력에 방해가 되고 있다”며 “(일본측의) 진정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외교적 화법인 만큼 일본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최대 동맹국인 미국측에 아베 정권의 일련의 우경화 행보가 역내 안정에 걸림돌이 됨을 지적함으로써 일본의 행동변화를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그러나 케리 장관은 한ㆍ미 양국의 확고한 동맹만 강조했을 뿐 과거사 이슈를 비롯해 일본 문제에 대해선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 윤 장관 방미를 통해 한ㆍ일 과거사 갈등 문제와 관련해 의미있는 전환점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우리 측의 기대에 미국이 제대로 호응해 주지 않은 것이다. 물론 미ㆍ일간 전략적 이해관계로 인해 미국의 전폭적 지지를 끌어내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의례적인 화답 조차 받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정문 앞에서는 매주 수요일이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주관 일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가 열린다. 바로 맞은 편이 일본 대사관이기 때문이다. 그 집회가 8일로 꼭 22주년을 맞았다. 지난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 총리 방한을 맞아 시작한 이 집회는 그동안 1천107회에 걸쳐 일본의 전쟁범죄 인정과 공식 사죄, 법적 배상 등 책임 있는 문제 해결을 촉구했지만 일본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히려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등으로 후안무치한 역사 도발을 통해 할머니들과 우리 정부, 나아가 동북아 국가들을 모욕하고 있다.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부인할 수 없고, 우리 입장을 미국에 강요할 수도 없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7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왜 아물지 않고 오히려 더 덧나고 있는지를 직시해야 한다. 가해자가 피해자인양 위선을 떨며 자신들의 잘못을 미화하고 있는 억지스런 현상이 동북아에서 계속 진행되는 한 동북아의 평화는 요원하며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중대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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