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크리스마스 휴일을 맞아 모처럼 가까운 장기읍성(長鬐邑城)을 다녀왔다. 우리지역에서는 찾기 힘든 성곽이라 새삼스럽고 다시 보아도 가치가 있는 곳이다. 바람 한 점 없는 따뜻한 겨울 산자락에는 햇살에 바스락거리는 낙엽이 포근히 쌓여 산길을 더욱 아늑하게 만든다.
장기읍성의 성곽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파란 하늘아래 형형색색으로 실루엣되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잘 정비된 읍성이 붉은 깃발과 함께 2.5km나 되는 ‘장기읍성 길’로 이어져 찾아오는 탐방객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고려 현종2년(1,011년)에 토성(土城)으로 처음 축조 되었다가 조선조 세종21년(1,439년) 석성(石城)으로 바뀐 장기읍성은 그 둘레가 1,440m로 옛 장기현의 중심지를 가늠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사적지임에 틀림없다.
장기읍성 일대에 ‘장기읍성 감사둘레길’을 만들어 찾아오는 탐방객과 등산객들에게 아름다운 숲길에서 즐거운 힐링의 시간을 선사하고 있는 포항시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장기(長鬐)는 예부터 큰 고을로 고관대작이 많이 배출 되는 등 경상도 동남쪽에서 이름 난 곳이었으며 조선시대 거물급 인사들의 유배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조선 후기 성리학의 대가(大家)이며 문신(文臣)이었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하여 읍성에서 망해산(望海山 202m)가는 숲길 한 구간(1.3km)을 ‘우암 송시열 길’이라 이름 붙여 우암과 얽힌 이야기를 곳곳에 내걸어 놓았다.
또한 조선 정조 때 실학자, 과학자로 뛰어났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장기로 유배 와 거닐었을 숲길(1km)을 ‘다산 정약용 길’로 명명하고 갖가지 다산이 남긴 시(詩)와 어록 등을 등산로 여기저기에 붙여놓아 숲길 워킹의 지루함을 달래며 다산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는 즐거움도 준다.
다산 생애 마지막 시(詩)가 된 회혼시(回婚詩)를 보노라면 부인 홍씨와의 절절한 부부애(夫婦愛)를 느낄 수 있어 숙연한 마음마저 든다.
포근하고 아늑한 숲길을 거닐며 다산과 우암을 만나다 보면 어느새 망해산 정상에 닿는다.
읍성에서 4.4km 거리에 쉬엄쉬엄 걸어도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한 평탄한 산행길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신창리 앞 바다가 시원스레 보이고 장기면 소재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이 산의 이름이 ‘망해(望海)’, 바다를 바라보는 산으로 지어졌을 것이다.
산 정상에서 왼쪽 아래로 십 여분 내려서면 고석사라는 조그마한 절을 만난다.
그 절 보광전에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 된 ‘미륵불좌상 마애불’이 있어 찾는 이가 많은 이름 난 절이다.
법당 안에 마애불을 모신 흔치 않은 사찰로 우리 지역의 훌륭한 문화재로도 오래도록 보존하여야 할 가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읍성 쪽으로 내려오면서 만난 양지바른 묘 등에서 갖가지 한식뷔페(?)로 마음에 점을 찍는 점심에 반주 한잔으로 따사로운 겨울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야트막한 야산이라 기복이 없는 등산로가 여유롭게 느껴지면서 한 낮의 겨울산은 고요하다.
내려가며 마주하는 파란하늘이 더욱 맑게 다가오고 푸른 솔 내음이 현기증을 자아낸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장기읍성의 뒷산 동악산(252.5m)이 봉긋하게 떠올라 있고 갈림길 삼거리에는 억새밭이 아직도 가을 운치를 남기며 분위기를 잡는다.
한 여름 산딸기가 지천에 늘렸던 농장을 지나 다시 장기읍성 성곽길을 오른다. 읍성 안에 다소곳이 남아 있는 장기향교의 근엄한 기와지붕이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읍성을 둘러 싼 성곽길이 구불구불 돌아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3시간 남짓한 산속의 머무름이 엄청난 힐링의 시간으로 변하고 자연과 함께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만들어 준다.
우리지역 가까이에 이런 읍성과 숲길이 만들어져 있음은 우리들의 남다른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자연과 조화를 잘 이룬 장기읍성 사적지를 이렇게 잘 복원하고 가꿔 준 장기면과 면민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장기읍성과 동악산, 망해산, 고석사 그리고 감사둘레길이 팍팍한 우리네 일상의 고단함을 치유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임을 다시 한 번 느끼며 떠나는 길이 유난히 빛난다.
계사년이 저물어 간다.
다가오는 갑오년 새해에도 우리 모두 즐겁고 안전한 산행으로 멋진 한해가 되기를 빌어 본다.
경북산악연맹 수석부회장 김유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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