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의회에서 3일(현지시간) 정부 불신임안이 부결됐지만 유럽연합(EU)과 협력협정 체결중단에서 촉발된 시위는 2주째 이어지고 있다.
이날 불신임안 부결 소식이 알려지자 `독립 광장` 등 수도 키예프 도심에는 3만여명이 모여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미 지난 1일 저녁 시청을 점거한 시위대는 침낭을 준비하는 등 이곳을 거점으로 장기 시위를 벌일 준비에 들어갔다.
시위대는 또 인근 정부청사도 이틀째 출입을 막고 있다.
이들은 진압병력이 쉽게 접근할 수 없도록 합판과 벤치, 크리스마스트리 등을 이용해 거리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한편 물을 부어 빙판길을 만들기도 했다.
곳곳에서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지피고 서로 두꺼운 옷가지도 나눴다.
1천여명은 국가를 부르며 대통령 집무실을 향해 행진하기도 했다.
시위에 참가한 미술교사 이반(35)은 "정부가 싫고 대통령이 싫고 경찰이 국민을 때리고 민주적 권리를 부르짖는 학생들을 구속하는 상황이 싫다"며 "우리가 유럽이고 유럽 한복판에 있는데 정부는 아니라고 한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말했다.
그는 2004년 몇 주간 이어지며 친서방 성향의 빅토르 유셴코 정권을 탄생시킨 오렌지 혁명을 언급하며 "얼마가 걸리더라도 여기 있겠다"고 강조했다.
권투 세계챔피언 출신의 제2야당 `개혁을 위한 우크라이나 민주동맹`(UDAR) 당수 비탈리 클리치코는 시위대를 향해 "포기하지 마라"며 대통령 사퇴 요구 목소리를 높였다.
제1야당 `바티키프쉬나`(조국당)의 아르세니 야체뉵 대표는 러시아 국영 방송에 출연해 "최소한 미콜라 아자로프 총리라도 사임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날 여당 의원들이 기권한 가운데 치러진 불신임 투표가 부결로 끝난 뒤 아자로프 총리는 지난 주말 있었던 시위대 강경 진압을 사과했다.
그러나 그는 사과 직후 `협박`으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있는 발언으로 야당과 시위대를 더욱 자극했다.
그는 "우리(정부)가 손을 내밀었다. 만약 주먹으로 맞서겠다면, 솔직히 얘기해 우리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 시위 상황이 `쿠데타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지난달 21일 EU와 협력협정 체결을 잠정 중단하기로 발표하면서 시작된 시위는 지난 주말 30여만명이 참가할 정도로 확산했다. 이에 정부가 최루탄과 섬광탄으로 대응하면서 수십명의 부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각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사태에 우려를 표시하면서도 EU 협력 문제에서는 서방과 러시아간의 입장이 극명히 엇갈리는 모습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의 때문에 벨기에 브뤼셀 모인 나토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과도한 시위 진압을 비난하며 "우크라이나 정부와 야권이 대화와 개혁 절차에 나서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우크라이나의 선택에 대해 공공연하고 부적절하게 전쟁 위협을 해서는 안된다"며 우크라이나에 EU 협정 체결 거부를 압박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를 간접적으로 비난했다.
케리 장관은 또 5∼6일 우크라이나에서 열리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각료이사회에 참석하는 대신 지난달 말 EU와 협력협정을 가체결한 몰도바를 방문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와 EU의 협력에 앞장서는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친유럽파에 연대감을 표시하는 의회 결의안도 채택했다.
하지만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막강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국 중심의 경제통합을 구상하는 러시아는 반정부 시위가 혁명이 아니라 `비이성적 폭력(pogrom)`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는 EU와 러시아 모두에 경제 협력을 위한 사절을 보내기로 했다.
아자로프 총리는 성명에서 "우크라이나에 유리한 조건으로 협정을 체결할 수 있도록 EU와 협상을 계속하겠다"며 "러시아에도 별도의 사절을 보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증진하기 위한 무역회담을 하겠다"고 밝혔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소요사태에도 지난 3일 사흘 일정으로 중국 방문길에 올랐다. 그는 귀국길에 러시아에도 들러 푸틴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다. 이 같은 그의 행보에 대해 `시간벌기`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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