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申采浩·1880~1936)는 자의식이 매우 강했다. 온몸이 다 젖을지라도 일제 치하에 머리를 숙일 수 없다며 고개를 빳빳하게 든 채로 세수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18년 무렵에는 `중화신보(中華新報)`에 논설을 기고했다가 신문사 측에서 별 의미도 없는 어조사 `의(矣)`자 하나를 빠뜨리자 이곳에 기고하는 것을 관뒀다. 자의식이 강한 신채호로서는 자신의 동의 없이 글을 함부로 고친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체적이고 비타협적인 신채호였지만 사상적으로는 유연했다.
몰락한 양반 집안의 자제로 태어나 성장과정에서 실학과 서구의 근대 학문을 접한 신채호는 봉건 유학자에서 자강운동가로, 자강운동가에서 민족주의자로, 다시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로 사상적 변신을 거듭했다.
신채호는 1970년대 초 무렵부터 민족주의 역사학자로서 조명받기 시작했다. 개별 인물 연구에서 신채호만큼 조명을 많이 받은 인물도 드물다.
그러나 그동안 학계에서 이뤄진 신채호 연구의 대부분은 역사연구자 내지는 민족주의자로서 신채호에 집중됐다. 사회주의 수용의 선구자 또는 아나키스트로서의 신채호 연구는 미진한 실정이다.
신채호의 아나키즘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신채호를 아나키스트로 인정하기보다는 아나키즘적 방법론을 채택한 민족주의자로 받아들이는 형편이다.
역사학자 이호룡씨가 쓴 `신채호 다시 읽기: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는 이처럼 민족주의자라는 이름에 가려진 `아나키스트 신채호`를 재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신채호의 저술과 관련 문헌, 새로 발굴된 자료를 더듬으며 신채호를 아나키즘 수용의 선구자이자 아나키즘에 근거해 민족해방운동론을 집대성한 한국의 대표적 아나키스트로 부각시킨다.
"신채호가 대표적 민족주의자로 알려진 것은 1960~70년대의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는 일본 관동군 장교였던 자신의 이력을 가려줄 도구로서 민족주의를 내걸었고, 박정희 독재정권에 저항하던 민주화 운동세력들도 민족주의를 앞세우면서 박정희 정권의 반민족성을 비판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강권에 반대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실천에 옮긴 저항적 지식인의 표상인 신채호가 대표적 민족주의자로 부각된 것이다."(`책을 내면서` 중에서)
이씨는 이 책에서 신채호가 어느 시점부터, 또 어느 수준까지 아나키즘을 수용했으며, 그가 주장한 아나키즘이 어떤 독창성과 영향력이 있었는지 추적한다.
신채호는 1936년 뤼순 형무소에서 숨질 때 판결문 1통, 인장 1개, 수첩 2권, 서한 10여 통, 중국 돈 얼마, 그리고 서적 몇 권을 감옥에 남겼다. 그 서적 중에는 러시아의 아나키스트였던 표트르 크로포트킨이 쓴 `세계 대사상 전집`이 있었다. 돌베개. 332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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