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게 그저 좋습니다. 역사를 알리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친일행적과 독립운동에 관한 역사 자료를 모으는 데 평생을 바친 심정섭(71)씨가 방대한 양의 사료를 민간 연구소에 기증하면서 밝힌 소회다.
17일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심씨는 작년 4월부터 최근까지 일제강점기 도서류와 신문, 서간 등 근현대사 자료 3천300여점을 연구소에 기증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독립운동가 백강(白岡) 조경한 선생의 외손자이자 광주에서 활동하는 향토사학자인 그는 사료 수집에 열성을 다하기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 심씨가 자료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아무런 대가 없이 내놓으면서 올바른 역사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백강 선생은 해방 이후 친일파를 척결하고 독립운동가의 공로를 알리려 사료를 수집했다. 그러나 6·25전쟁을 거치면서 어렵게 모은 자료가 모두 사라져버렸다.
백강 선생은 역사에 관심이 많던 당시 초등학생인 외손자에게 "내가 잃어버린 자료를 뜻이 있다면 한번 모아보라"고 했고, 그때부터 심씨의 사료 수집 여정이 시작됐다.
심씨는 중학교 시절부터 역사와 관련된 책을 사는 데 용돈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해서 그가 고등학생 때까지 모은 자료만 해도 이미 1천점이 넘었다.
학생 신분에 값비싼 사료엔 손을 댈 수 없어서 저렴한 것들만 모았지만 그 어떤 것도 심씨에겐 하찮지 않았다.
심씨는 "교직생활을 하면서 여유가 생기자 고물상을 만나러 주말마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며 "그때부터 단골 고서(古書)상도 생겨났다"고 했다.
그는 본래 이렇게 모은 자료로 개인 박물관을 세우려 했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고민하던 때 민족문제연구소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것을 보고 뜻깊은 일을 하는 곳에 자료를 기증하면 의미 있게 쓰일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심씨가 지금까지 모은 사료는 5천점 이상으로 돈으로 환산하면 수억원대다. 이 중 3천여 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기증했다.
그동안 모은 자료를 엮은 사료집과 수필집도 낸 심씨는 내년 4월 13일 임시정부수립일에 맞춰 `일제의 순사들`이란 제목의 사료집을 출간한다. 여기엔 창씨개명에 앞장서는 등 일제강점기 순사들의 악행을 고발하는 내용이 담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준비 중인 시민역사관이 내년에 개관하면 사료 1천여점을 추가로 기증할 생각이다.
심씨는 그의 손을 거쳐 간 사료들에 대해 "친일파들의 치부를 파헤치고 세상에 알려 그들을 꾸짖고 민족정기를 선양시킨다는 데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내가 모은 것뿐 아니라 역사 자료를 많이 봤으면 해요. 우리 민족사의 울분과 설움을 알아야 제2의 일제강점기가 되풀이되지 않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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