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돈 순교(527년)부터 석굴암 조성(751년)까지 224년이 걸렸습니다. 1784년 이승훈 영세에서 시작한 한국 가톨릭도 229년째로 접어들었으니 석굴암 버금가는 걸작이 교회 미술에서도 나오지 않을까요."
최근 `예수 모습ㆍ성경 미술`이란 책을 함께 펴낸 삼형제 정양모(78)·학모(75)·웅모(56) 신부의 바람이다.
삼형제 신부는 각자의 역량을 합쳐 같이 책을 낼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다가 올해 양모·학모 신부의 금경축(사제수품 50주년)과 지난해 막내의 은경축(사제수품 25주년)을 기념해 드디어 작은 소원을 이뤘다.
이들 형제는 한국 천주교에서 모두 이름난 신부들이다.
성공회대 교수였던 맏형 정양모 신부는 한국 신약 성서학의 권위자다. 프랑스 리옹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예루살렘 도미니코 성서연구소에서 성서학을 연구했다.
둘째 학모 신부는 독일 예수회 뮌헨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대구 가톨릭대 교수를 지냈고, 막내 웅모 신부는 신학대 졸업 후 홍익대에서 미술사를, 영국 뉴캐슬대에서 박물관학을 전공한 미술 전문가다.
책에는 삼형제의 장기가 잘 어우러져 녹아들었다.
정양모 신부는 신약성서에 나타난 예수의 일생과 의미를 62개의 장으로 나눠 풀었고, 서울대교구 성미술감독을 맡았던 웅모 신부는 관련 미술작품 200여 점을 엄선해 해석했다. 철학과 논리학을 가르쳐 온 학모 신부는 형님, 아우와 함께 전반적인 책의 틀을 잡았다.
서양의 고전 명화 가운데 성서를 주제로 한 작품을 소개한 책은 더러 있었지만 한국의 현대 가톨릭 미술까지 아우른 책은 없었다. 삼형제의 말처럼 `성서학과 미술사학의 성과를 함께 보려는 초유의 시도`인 셈이다.
저자들은 성경에 나타난 예수의 일생을 현실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성서학계에서는 어떻게 해석하는지 알기 쉽게 설명했다.
평생 종교 간 대화를 강조해 온 정양모 신부는 율법보다는 인간애가 우선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예수께서는 안식일 법보다 연민을 앞세워 안식일에도 병자들을 고쳐주셨다"면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을 위해 생긴 게 아니라는 마르코복음서를 인용한다.
이 책은 중세 기독교 미술의 변천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카타콤 벽화부터 인상파, 20세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전체 서양미술사에서 필사본, 벽화, 유리화 등 다양한 장르와 양식의 작품을 추려냈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도 많이 있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미술가들의 작품도 실렸다.
서로 교구가 달라 다른 지역에서 사목하느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진 못했던 형제들은 이 책을 통해 뜨거운 형제애와 공통의 신앙심을 새삼 확인했다.
삼형제 신부는 이렇게 입을 모았다.
"사랑에 젖지 않고 어찌 사랑의 하느님을 만나고, 사랑의 화신인 예수 그리스도와 인연을 맺겠습니까.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 진실과 사랑의 가치를 실현한다면 보람도 크겠지만 손해 보는 일도 적지 않을 겁니다. 예수님처럼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밑지는 삶, 비참한 죽음도 반드시 부활로 이뤄질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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