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일정한 공간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각자마다 일정한 자기만의 공간을 넓히고 만들어 가면서 생활한다. 이 공간들에는 자기만의 소유라는 경제적인 공간도 있는 반면에 마음의 공간도 있다.
경제적인 공간에는 자본주의가 부른 일종의 공간이다. 이는 저 멀리 고조선 시대까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살펴볼 수가 있다.
그때의 8조금법(8조법=범금팔조(犯禁八條)라고도 하며,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기록에 따라 기자팔조금법이라고도 한다. 8조 중 3조의 내용만이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 연조(燕條)에 전하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살인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相殺, 以當時償殺). ▲ 남의 신체를 상해한 자는 곡물로써 보상한다(相傷, 以穀償). ▲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자는 소유주의 집에 잡혀들어가 노예가 됨이 원칙이나, 자속(自贖:배상)하려는 자는 50만 전을 내놓아야 한다(相盜, 男沒入爲其家奴, 女子爲婢, 欲自贖者人五十萬). 이러한 조항은 위만조선을 거쳐 군현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에 인지의 발달에 따라 그 내용이 더욱 복잡해져 60여 조로 늘어났다.)에 남의 재산에 손해를 입히면 그에 상응하는 재산을 갚아야만 했다.
그 이후를 살펴보면 이 공간에 도시화 과정에서 생활공간이 아파트화하면서 공간들의 사이에는 도저히 넘을 수가 없는 철옹성 같은 벽이 생겼다. 다시 역사를 거슬러서 올라가서 공간담장을 보면, ‘육두품 이하의 집은 오채(五彩)를 꾸밀 수가 없고, 담장은 8척을 넘지 못한다. 오두품 집의 담장은 7척, 4두품 이하 일반 백성은 6척을 넘지 못한다. 석회(石灰)는 진골도 사용할 수가 없다’(三國史記 屋舍條) 이를 요즘의 높이로 환산하면 육두품도 240㎝ 정도이다. 일반 백성의 집도 겨우 180㎝일 정도이다. 누구라도 까치발을 하면, 옆집을 엿볼 수가 있었다. 요즘 아파트의 경우에 빗대면 담장이라고 할 수도 없을 지경이다.
하여튼 담장은 소통과 대화를 가로막는 높다란 막힌 공간이다. 안 그래도 현대인들은 이웃 간에도 서로가 무엇을 하는지를 모르는 판에 아파트 철문까지도 모자라 밖에 누가 왔는지를 미리 알기 위한 각종 현대적인 렌즈가 또 있다. 뿐만이 아니다. 아파트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파트를 둘러싸고 있는 입구의 수위실에서부터 신분을 확인받아야 한다.
그다음에야 겨우 남의 아파트 문 앞에 설 수가 있다. 이렇다고 해서 또 들어갈 수가 없다. 초인종을 눌러도 이 렌즈를 통과해야 한다. 이쯤에 주인은 문을 열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한다. 이 모든 과정의 그 역할에도 일정 부분 좋은 점도 있기는 있다. 이 일정 부분의 순기능을 제외하면, 역기능이 더 있지가 않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이렇게 소통과 대화 그리고 왕래를 가로막는 담장을 이제부터 없애자는 운동이 지난 1996년에 대구시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로 퍼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담장 허물기의 총 길이는 26.6km, 총 663개소, 이로써 조성된 가로공원은 350,294㎡이다. 이를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하면 연간 13억 원이다. 또 도심의 열섬현상을 보다 줄여준다. 가로공원의 나무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준다.
대구YMCA 김경민 사무총장이 대구시에서부터 시작한 담장 허물기는 서울, 부산, 인천 등지에서 벤치마킹해갔다. 뿐 만 아니라 2002년도 고등학교 교과서(법문사 발행)에 ‘인간사회와 환경’에 소개가 되어 시중의 화제가 되었다. 이후부터 권위의 상징이었던 관공서가 담장 허물기에 나섰다. 그리고 2004년부터 담장 허물기 사업의 명칭이 거리공원(Green Parking)로 바뀌어 어느 지역이든 관공서가 담장 허물기에 앞장서고 있다.
대구시와 대구사랑 시민회의가 올해부터 담장 허물기와 담장 안하기 운동 재도약 원년으로 삼았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 위의 사업 명칭 공모에 나섰다. 마감은 오는 28일까지이다. 올해 계획을 보면, 담장 허물기 사업 참여자를 연중 수시로 받는다. 조경자문위원회에서 대상 사업자를 선정한다. 선정이 되면, 일정액 상담 무상 시공과 담장 쓰레기를 무상 처리한다. 또 조경자문 및 무료 설계를 지원한다. 참여를 희망하는 시민은 대구시ㆍ군ㆍ구와 대구사랑운동 사무국에 신청하면 된다.
사람 인(人)자를 보면, 둘이 서로 기대어 받쳐줌으로써 사람(人)이 서 있다. 이를 서구적으로 표현하면,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動物)이다. 사람은 서로가 기대고 받쳐줌으로써만 비로소 동물 중에서도 의식이 있는 사람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한다.
담장 허물기나 담장 안하기는 사람들끼리 터인 왕래로 만나고 나아가 대화로써 ‘소통하는 사람이 되자’는 깊은 뜻을 함축한다. 이는 또 사회적인 사람으로서, 사회에서 일어날 수가 있는 문제풀이에 나서자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가 있다고 본다. 담장 허물기가 이런 의미로 해석된다면, 사람 사이에 물리적인 장애가 없는, 사회소통이다.
요즘은 이웃끼리도 스마트 폰 ‘문자시대’이다. 원래 문장보다 말이 먼저 있었다. 담장 허물기로 문자시대를 ‘말하기 시대’로 가자는 뜻만 잘 살려도 우리사회가 지금보다는 훨씬 따뜻한 사회로 갈 것이다. 말 못하는 사회가 얼마나 답답한 사회인가. 하여튼 담장 없는 사회가 가로막는 공간이 없는 터인 광장으로 가기를 바란다. 이를 요즘의 말로 표현한다면, ‘광장 보편복지’가 아닌가.
방기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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