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라고 하는 문화가 제일 많이 생겨난 게 온라인이잖아요. 온라인에서 그렇게 존재감을 표현하는 이유는 `외로워서`인 것 같아요. `나 좀 봐줘`라고 하는 거죠. 영화를 통해 이들과 공감하고 싶었습니다." 영화 `잉투기`는 실제 있었던 격투기 대회 `잉투기`를 소재로 한 영화다. 잉투기란 이름은 `잉여`들의 격투기란 뜻.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의 격투기 갤러리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잉투기`란 대회에 참가했던 데서 모티프를 따온 영화다. `잉여`라는 말이 요즘 젊은 세대에서 현실의 주류가 아니지만 온라인 상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이들을 지칭하거나 그런 스스로의 모습을 자조하는 보통 명사로 쓰인 지 오래지만, 한국영화에서 이렇게 전면에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7천만 원의 예산으로 만들어진 신인감독의 장편 데뷔작임에도 이 영화를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영화를 만든 엄태화(32) 감독은 스스로도 잉여 세대의 일면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잉여의 정서와 코드를 이해하는 서른두 살의 감독이 아니었다면 만들 수 없었을 영화다. 영화에는 온라인 게임의 아이템을 현금을 주고 거래하고 누군가 맘에 들지 않으면 댓글로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붓고 급기야 `현피`라는 이름으로 실제로 만나 난투극을 벌이기도 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지금 현실과 아주 맞닿아 있는 소재인데도, 이런 이야기가 영화로 한 번도 안 다뤄졌잖아요.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고, 딱 하기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어요." 최근 광화문에서 만난 엄태화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를 이렇게 얘기했다. "온라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던 차에 주변에 어떤 분이 `잉투기`란 대회가 있는데 재미있다고, 한 번 살펴보라고 했어요. 웃기는 줄 알고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대회가 너무 진지해서 놀랐어요.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진지할까 생각하면서 나도 한 번 진지하게 접근해 봐야겠다 마음먹었죠. 실제 그 대회를 만든 천창욱 대표(스포츠 해설가)를 만나 인터뷰를 시작했어요. `격투기 갤러리의 어머니`라 불리는 분인데, 격투기 갤러리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보면서 `격투기 대회를 열어줄 테니 정정당당하게 붙어봐라` 해서 만든 대회라고 하더군요." 감독은 실제 이 대회의 참가자들도 만나봤다. 영화 속 인물들의 기상천외한 아이디 `칡콩팥`과 `젖존슨` 역시 디씨인사이드에서 빌려온 것이다. "웹상에서 욕하고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이상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저도 편견이 있었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더라고요. 다들 아주 착해요. 평범하고 말도 잘 통하고요. 그렇게 만난 친구 중 한 명은 우리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어요. 잉투기에서 `희준`이랑 싸우는 `PK아도란` 역으로요." 감독이 잉투기에 주목한 것은 온라인 상의 익명성 뒤에 숨거나 고립돼 있던 이들이 이 대회를 통해 세상으로 한 발 내딛게 됐다는 점이다. "사람 대 사람이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서 얘기하다 보면 제대로 된 소통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 만나서 몸을 부대끼고 그러면서 변화한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집에서 안 나오고 오타쿠 생활을 하다가 잉투기를 하면서 실제로 격투기 선수를 하겠다고 운동을 시작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던 만화 관련 일을 시작하거나 한 경우들이죠. 세상으로 한 발 내딛는다는 말이 약간 오그라들긴 하는데, 어쨌든 이 대회가 그냥 웃기려고 하는 대회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영화는 그런 희망적인 이야기로 수렴되지는 않는다. "현실이 더 나빠질지언정 주인공은 자기 안에서 하나를 깨고 성장해요.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됐죠. 그 정도만으로도 됐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어떤 교훈을 주거나 강요하는 듯한 느낌은 최대한 피하려고 했어요. 보는 사람들이 그냥 내 얘기 같기도 하고 나처럼 아픈 친구를 보면서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으면 했죠." 그러면서 감독은 프랑수아 트뢰포의 명작 `400번의 구타`를 얘기했다. "`400번의 구타`에서 소년 앙트완이 바닷가로 달려가면서 뒤를 돌아보는 장면을 보면 `쟤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까` 하는 생각이 들잖아요. 그런 비슷한 고민, 정서가 지금 우리 20-30대에도 관통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인지 영화 `잉투기`는 `400번의 구타`처럼 슬프고 눅눅한 정서가 짙다. "요즘 `웃프다`는 정서가 있잖아요. 웃긴데 슬픈 느낌이 같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인 감독이 장편영화 제작과정 졸업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홍익대 미대 광고디자인을 전공하고 CF 일을 하다가 영화에 관심을 갖게 돼 영화 현장의 미술팀 스태프, 연출부로 일했다. 간간이 단편영화를 만들다가 장편 영화를 제대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으로 3년 전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이번 영화의 주연배우인 엄태구(30)는 엄태화 감독의 친동생이다. 류승완-류승범의 뒤를 이을 형제 감독-배우 콤비로도 관심을 끈다. 엄태구는 건국대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동생과 한동안 떨어져 살아서 어떤 고민을 하면서 배우의 길로 들어섰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도 뒤늦게 영화에 입문하게 됐는데,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됐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둘 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어서 다른 배우 또는 감독에게는 못 할 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 서로에게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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