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겨우 벗어난 미 의회가 웹사이트 장애 문제라는 새 복병을 만났다.
문제의 핵은 개혁 건강보험법(오바마케어) 웹사이트다. 미 역사상 최초로 전(全) 국민 의료보험 시대를 열겠다며 지난 1일 개통된 건강보험 거래소 웹사이트가 접속 불통이나 아무런 표시 없는 화면 등 초보적 장애를 거듭하며 정쟁(政爭)의 새 도화선으로 부상했다.
오바마케어는 애초 미국에서 여야 간 갈등의 핵심 쟁점이었다. 지난 17일 셧다운(연방정부 부문 업무정지)·디폴트 정국에서 사실상 판정패를 당한 공화당은 사이트 장애를 `반(反)오바마케어` 공세의 카드로 활용하겠다면서 비판 압박을 높이고 있다. 백악관과 민주당 등 여권은 대통령 해명과 외부 기술진 충원 등으로 장애 논란을 진화하겠다면서 전의를 다졌다.
전 공화당 대선후보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은 오바마케어 사이트의 첫 등록절차가 `재앙`이었다며 "셧다운 정국이 이렇게 재앙 같은 사안을 덮은 건 참으로 아이러니"라고 강조했다고 CNN이 20일(현지시간) 전했다.
매케인 의원은 "(미국 정보기술 업계의 중심지인) 실리콘밸리로 대통령전용기를 보내서 똑똑한 인재를 워싱턴으로 데려와 이번 장애를 해결하라"고 비꼬기도 했다.
같은 당의 로이 블런트 상원의원(미주리)도 20일 폭스뉴스 채널에 출연해 "국민들이 (웹사이트에서) 가입할 의료보험 패키지도 못 챙겨 본다는 건 건 당국이 오바마케어를 운영할 능력이 없다는 증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과 오바마 행정부는 보험 거래소 장애가 제도 초기의 사소한 문제라고 반박했다. 사이트 개통 첫 열흘 동안 방문객이 애초 예측치를 넘는 1천460만명에 달해 기술적 장애가 생겼을 뿐 정책 신뢰성에는 영향이 없다는 주장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사이트 장애와 관련해 중요한 진전이 있었고 사안이 100% 해결될 때까지 계속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21일(현지시간) 직접 건강보험의 온라인 가입 불편에 대해 해명할 예정이라고 백악관 관계자가 CNN에 전했다.
제이컵 루 재무장관도 20일 NBC방송의 일요대담 `밋더프레스(Meet the Press)에 출연해 "실제 관건은 새 사이트로 건강보험에 가입한 국민이 실제 내년 1월 이후 원하는 혜택을 받느냐는 것"이라면서 "그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고 NBC가 전했다.
오바마케어의 주관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웹사이트 장애를 해결하고자 외부 기술진도 기용하는 일명 `기술 증원`(tech surge) 조처를 하겠다고 20일 블로그에서 밝혔다.
건강보험 거래소 웹사이트(www.healthcare.gov)는 조지아와 텍사스 등 36개 주를 대상으로 운영되는 연방정부의 온라인 보험상품 `장터`다. 캘리포니아 등 나머지 14개주와 수도 워싱턴이 있는 컬럼비아특구는 자체 거래소를 운영한다.
저소득층이 온라인 거래소에서 정부 지원으로 저렴하게 보험을 사도록 해 `전국민 100% 보장`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이 오바마케어의 골자다. 건강보험이 없는 미국인은 작년 기준 약 4천800만명(전 국민의 15.4%)으로 남한 전체 인구에 육박한다.
거래소 웹사이트는 지난 1일 미 연방정부의 셧다운 사태에도 차질 없이 문을 열었으나 보험 가입이 거부되고 웹페이지 본문 글자가 깨져 보이는 등의 황당한 장애가 계속 발생하면서 `오바마케어가 외면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응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보건부는 지금껏 47만6천여명이 건강보험 거래소에서 보험 신청을 했다고 홍보했으나 실제 가입이 완료된 인원에 대해서는 함구해왔다. 당국은 다음 달에야 가입자 수를 공개할 예정이다.
CNN은 주 정부가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보험거래소 15곳을 확인한 결과 가입 완료 또는 완료 예정자가 모두 25만7천여명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민주·공화 양당은 오바마케어에 대한 찬반 격론을 거듭하다 지난달 말 정부예산안 통과를 무산시켜 16일 동안 셧다운 사태를 일으켰고 국가채무 상한의 증액 협상을 지연시켜 디폴트 위기를 부채질했다.
미 의회는 지난 16일 공화당의 사실상 양보로 셧다운 사태를 풀고 채무 상한을 높였다. 그러나 이 조처는 내년 1∼2월까지만 유효해 오바마케어를 둘러싼 정쟁이 다시 격화하면 셧다운·디폴트 위기가 도래할 가능성이 크다.
디폴트는 미 정부가 채무 상한이 묶이면서 현금이 바닥나 국채 이자 등을 못 내는 사태를 뜻한다. 이는 달러화를 폭락시키고 한국 등의 세계 경제에 2008년 금융위기에 맞먹는 타격을 줄 `핵폭탄의 뇌관`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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