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안종규기자]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건설 현장의 잇따른 사망사고를 강도 높게 질타하자, 업계는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포스코이앤씨는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전국 공사 현장의 작업을 전면 중단했고, 다른 건설사들도 안전 점검과 보강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현장 관계자들은 법적 안전 규정이나 징벌적 조치만으로는 사망사고를 막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공사 기간이 촉박하고 예산이 제한된 현실에서는 충분한 인력과 장비를 확보하거나, 안전 장치 설치와 작업 환경 개선에 필요한 투자가 제대로 진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안전 확보를 위해서는 제도적 규제 강화뿐 아니라, 공사 기간과 비용 등 현실적 조건을 함께 고려한 종합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21일 국토안전관리원의 건설공사 안전관리 종합정보망(CSI)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지난 17일까지(올해 하반기) 발생한 사망사고 13건 가운데 공공현장에서 7건, 민간현장에서 6건이 발생했다. 특히 낙찰률 90% 미만인 `저가 공사`에서 공공 6건, 민간 2건이 발생해 각각 85.7%, 33.3%를 차지했다.업계는 낮은 공사비가 현장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본다. 낮은 금액으로 계약한 시공사는 법적 최소 인원만 배치하거나 비용이 저렴한 장비를 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또 정부의 관리 대상인 안전관리계획에서 제외된 현장도 많다. 안전관리계획은 21층 이상 건축물과 지하 10m 이상 굴착공사 등 고위험 현장에만 의무 적용된다. 올해 하반기 사망사고 13곳 중 10곳이 이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다.건설업계는 적정 공사비와 충분한 공사 기간 확보가 안전 사고 예방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최저가 입찰제가 폐지되면서 과거보다 개선됐지만, 여전히 적정 공사비에는 미치지 못하는 현장이 많다"며 "안전한 공사가 가능하도록 적정 공사비 확보와 넉넉한 공사 기간을 확보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비가 부족해 사업장이 중단되고, 공사가 촉박해지면 현장은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는 무리한 공사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공사비 부족은 하청업체에 더 큰 부담으로 전가된다. 작업시간 미준수, 콘크리트 타공 부주의, 자재 관리 미흡, 추락 방지시설 미비 등이 주요 사망사고 원인으로 반복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적정 공사비가 확보되지 않으면 하청으로 내려갈수록 열악한 작업 환경이 심화된다"고 말했다.
대규모 공공공사에서도 무리한 공사기간 요구로 건설사가 참여를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 5월 10조원 규모의 부산 가덕도 신공항 사업에서 참여를 포기했다. 무리한 공사 일정과 공사비용 상승분 반영 불가가 이유였다. 입찰공고상 84개월 공사 기간을 기본설계상 108개월로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부지 조성 공사비도 기존 10조5천억원에서 1조원 증액 필요성을 주장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대구경북신공항(TK신공항)도 역시 자금 조달 문제와 주요 건설사들의 참여 불확실성으로 정상 사업 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도 B,C 노선에서 공사비 문제로 예정 공사 기간이 더 늘고 있다.업계 관계자는 "안전을 강화하려면 실질적인 비용 증가가 불가피하다"며 "공공공사에서 저가 발주와 촉박한 공기를 동시에 적용하면 사망사고 근절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건설업 특성을 고려할 때 업계만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한다.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건설 현장은 타 산업보다 위험 작업이 많아 재해 발생 확률도 높다"며 "안전 강화와 함께 촉박한 공사 기간과 적정하지 않은 공사비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심형석 우대빵부동산연구소 소장도 "한국 건설현장에서는 콘크리트 타설 등 현장 공정이 많다"며 "해외처럼 일부 공정을 사전 제작 방식으로 진행하는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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