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었네 피었네 우리나라 꽃~”오가향 곁, 장독대 주변에 무궁화가 피었다. 하얀 잎사귀 사이로 연보랏빛과 연분홍빛의 꽃이 번갈아 고개를 들며 여름을 밝혔다. 누가 일부러 심은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리에 무궁화를 뿌리내리게 하기까지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장아지매는 오랫동안 무궁화를 심고 싶어 했다. 나라꽃이지만 정작 주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꽃. 마당 한쪽에 무궁화를 키워보고 싶었지만 묘목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해, 포항 시내에 사는 친구가 식목일 행사에서 받은 무궁화 묘목을 건넸다. 아파트에서는 키우기 어려워 가져온 그 묘목이 오가향 장독 곁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하얀 무궁화는 이웃 마을에서 어렵게 얻어온 것이다. 그렇게 두 그루의 무궁화가 자리를 틀었다.어릴 적에는 무궁화를 학교 교정은 물론 집 울타리나 마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당시 정부 차원에서 널리 보급하려는 정책도 있었고, 사람들도 나라꽃이라며 자주 심곤 했다. 그러나 병충해, 특히 진딧물로 인한 피해가 많았고, 관리가 어려워 점점 자취를 감췄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정원수로 무궁화를 본다는 게 오히려 드문 일이 되었다.그렇게 잊힌 듯하던 무궁화가 오가향에서 다시 피었다. 다음 해에 처음 꽃을 피운 무궁화는 가뭄과 태풍에도 굴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맘때면 매일같이 새로이 꽃을 피운다.무궁화는 하루살이 꽃이다. 이른 새벽에 피고 저녁 무렵이면 조용히 진다. 그러나 그 자리에 멈추지 않고 다음 날 또 다른 꽃이 피어난다. 하루의 생을 다한 꽃은 조용히 물러나고, 그 뒤를 잇는 꽃이 다시 햇살을 맞는다. 그렇게 이어지고 이어지는 생명력 덕분에 ‘무궁화(無窮花)’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아직은 가지가 가늘고 키가 크지 않아 한꺼번에 많은 꽃을 피우지는 못하지만, 해마다 조금씩 자라며 마당의 한 풍경이 되어간다. 언젠가 오가향의 향기처럼 무궁화도 더 넓은 그늘과 꽃그늘을 드리우리라.무궁화는 1896년, 독립문 주춧돌을 놓던 날 애국가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과 함께 나라꽃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지금의 우리는 벚꽃이나 장미처럼 무궁화를 자주 찾거나 가까이 두지는 않는다. 애국가 속 노랫말처럼 ‘삼천 리 강산에 무궁화가 화려하게 피어나는’ 풍경을 다시 보기 위해선 우리 스스로가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요즘 나는 아침마다 오가향 아래 무궁화를 바라본다. 늘 새로운 꽃이 피어 있어도 놀랍지 않은 그 모습이 오히려 신선하고 경이롭다. 무궁화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에서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삶의 끈기와 조용한 희망을 가르쳐줄 뿐이다.자연이 주는 선물은, 때로 말없이 피어나는 ‘뜻밖의 응원’이다.그 한 송이 무궁화가 오늘도 묵묵히 오가향 곁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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