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최영열기자]지난 6월 대구 북구의 왕복 6차선 도로 한복판이 갑자기 꺼졌다. 깊이 2.5m, 가로 1.8m 규모의 싱크홀은 아침 출근길 차량을 삼킬 뻔한 아찔한 사고로 이어졌고, 인근 상가와 주민들 사이에는 공포가 퍼졌다. 며칠 뒤인 6월 30일, 경북 포항시 장량동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재현됐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지하가 무너지는 이 ‘보이지 않는 재난’은 해마다 더 잦아지고 있다.싱크홀(Sinkhole)은 지하 공간의 붕괴로 인해 지표면이 갑자기 꺼지는 현상으로, 석회암이 빗물이나 지하수 등에 녹아 구멍이 생기는 자연 발생적 사고이었으나 현재는 대개 도로 등 도시 지역에서 대부분 발생한다. 석회암 지대가 적고 화강암과 편마암으로 이뤄진 국내 지질의 특성상 국내의 싱크홀은 노후 상·하수도관 손상이 대표적 원인이다. 관이 깨지거나 이음부에 틈이 생기면서 누수가 발생, 주변 흙이 물에 휩쓸려가 공동(空洞, 빈 굴)이 발생한다. 지하안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18 ~ 2024년 사이 국내에선 1396건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이는 연평균 200여 건으로 하루걸러 1건씩 발생한 꼴이다. 계절적으로는 집중호우 등 지표수·지하수의 이동이 잦은 여름철이 절반에 가까운 48.1%를 차지하며, 해빙기를 지나고 장마철이 시작되기 직전인 봄철에 27.9%가 발생한다. 봄~여름철(76% 발생) 발생률이 높은 만큼 하절기인 현재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하안전정보시스템(2018~2024년)에 지반 침하 발생 원인을 살펴보면 상·하수관 손상에 따른 지반침하 발생 비율은 절반이 넘는 51.7%나 된다.(하수관 45.5%, 상수관 6.2%) 그 외 상·하수관 공사 부실(2.9%), 되메우기 불량(18.0%), 굴착공사 부실(7.4%), 기타 매설공사 부실(2.0%), 기타 매설물 손상(6.4%) 등 도시화에 따른 지하매설물 관련 싱크홀 발생이 90%에 달한다. 특히 노후화된 상·하수도관의 교체만 적기에 이뤄져도 싱크홀 사고는 절반 이상 줄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대구·경북 지역의 싱크홀 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대구광역시(2020~2024)는 총 51건 발생했다. 지역별로는 북구(16건), 수성구(11건), 중구(9건), 달서구(8건) 등이다. 싱크홀이 관리 부실에 따른 인재인 만큼 지하철 노선, 복합 상업지구 밀집 지역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다. 경북 지역(2021~2024년)은 총 48건 발생했다. 주로 지하 개발 활동이 잦은 안동, 구미, 포항 등 중소도시 중심으로 발생됐다. 특히 포항은 지난 2017년 지진 이후 지반 약화 지역으로 싱크홀 발생 우려가 국내 어느 지역보다도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외에도 통계에 잡히지 않는 미신고 지반침하 사례가 다수 존재할 것이기에 농어촌지역보다 지하 개발이 잦은 도시를 중심으로 주의가 요망된다. 싱크홀은 단순한 ‘땅 꺼짐’이 아닌, 도시의 노후화, 지하 시설물에 대한 무관심, 관리 실패의 종합적 결과물이다. 전국의 20년 이상의 노후 하수관로 비율이 43%에 달하는데 대구는 무려 74%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하수도가 노후화되면 관로 균열은 물론 손상, 관로가 막혀 역류 등의 문제가 발생, 토사 유실→ 공동(空洞) 형성 → 지반 붕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대구 지역 내 상수관로 노후화 비율 또한 63.9%로 전국 최고 수준인 서울(66.1%)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노후된 상수관로 역시 누수로 인해 지반 붕괴를 초래하고 있다. 탐지·관리체계의 부재도 싱크홀 발생의 원인이 되고 있다. 관리 주체의 불명확성에 따른 피해다. 현재 지하 시설물인 상수도는 수자원공사, 전기는 한전, 가스는 도시가스공사, 철도는 교통공사 등 기관별 분산된 지하 시설물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통합 관리 DB 또는 책임 연계 시스템이 전무한 상태다. 게다가 2m 이하의 지반 공동 탐지가 가능한 GPR사업이 진행 중이나, 예산 부족으로 복구율 또한 미흡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시의 정밀 탐지된 위험 구간 중 60% 이상이 복구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 싱크홀은 더 이상 예외적 사고가 아니다지하 공간이 붕괴되며 지표면이 함몰되는 ‘싱크홀’은 과거에는 드문 현상이었지만, 최근 들어 연간 수백 건이 넘는 사고가 보고되며 사실상 ‘일상 재난’으로 자리 잡았다.국토안전관리원이 발표한 ‘2024 지하 안전 통계 연보’에 따르면, 2019~2023년 사이 전국에서 총 957건의 지반침하 사고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8월이 241건으로 가장 많았고, 6~7월도 각각 138건, 130건으로 집계돼 여름철에 전체 사고의 절반 이상(53.2%)이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대구·경북 지역의 사고 건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만, 문제는 하수관로(74%) 전국 최고, 상수관로 역시 서울 다음으로 높은 63.9%를 차지하는 등 ‘지하 인프라의 노후도’는 전국 최상위’ 수준이라는 점에서 향후 대책 마련이 시급함을 잘 알 수 있다. ● 불시에 발생하는 사고, 원인은 ‘지하 노후 인프라’전문가들은 싱크홀 발생 원인을 △노후 하수관로 파열 △지하수 유출 및 토사 유실 △지하 공사와 배관 관리 부실이 복합적으로 작용 등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한다.실제로 2021~2024년 전국에서 발생한 583건의 싱크홀 중, 260건(45%)이 노후 하수관 손상에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와 경북은 1970~198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조성된 지하 인프라가 대부분 사용 연한을 초과, 예고된 사고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전문가들은 불시에 발생하는 싱크홀이 단순한 지반 붕괴가 아니라, 지하 기반시설의 붕괴가 만든 2차 재난이라고 진단한다.따라서 지하 시설물 간 통합 관리가 이뤄지거나 사용 연한을 넘은 시설들을 개선한다면 싱크홀 사고는 대폭 예방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도로가 울렁 대거나 맨홀 주변이 기울어지는 등 전조 증상을 신고해 대처한다면 재산과 인명 피해까지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 문제는 예산 부족이라 지자체는 ‘속수무책’대구시는 현재 150개 주요 도로 구간에 대해 GPR(지표 투과 레이더)을 활용한 지반공동 탐지사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탐지된 위험 지역의 60% 이상이 복구되지 못한 채 방치돼 있고, 경북 일부 지자체는 전문 장비조차 없어 민간 외주에 의존하는 실정이다.장마철 폭우가 쏟아지면 지하 수위가 급변해 약한 지반을 밀어내고, 그 틈으로 토사가 빠져나가 싱크홀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더 이상 예외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재해’로 분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정책적 대안전문가들은 지반 침하를 더 이상 운에 맞길 것이 아니라 선제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선 ‘지하 공간의 통합 관리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 상하수도, 통신, 전기, 도시철도 등 시설물의 위치, 상태, 이력 등을 통합 관리, 공사 추적 시스템 가동을 통해 책임을 부담시키면 사고율은 현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 외에도 △GPR, IoT 센서, 레이저 스캐너 도입해 위험 구간을 점검하고, △노후 배관 교체 로드맵 수립, △시민 참여형 위험신고 앱 운영을 통한 시민의 지반침하와 울렁거림, 균열 등 이상 징후들을 사진과 영상 등을 통해 접수받아 즉각 조치에 나선다면 피해 최소화를 이뤄낼 수 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이 더 공포스럽다. 싱크홀은 단순한 땅 꺼짐이 아니다. 도시의 노후화, 관리 부재, 구조적 무관심이 드러낸 ‘침묵의 재난’이다. 겉으로는 깨끗하고 잘 닦인 도로지만, 그 아래에는 오늘도 어딘가에서 지하수와 토사가 빠져나가고 있을지 모른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더 이상 운에 맡겨서는 안 된다.도시의 안전은 지상은 물론 지하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대구·경북이 안전한 미래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선, ‘지하’라는 보이지 않는 공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과 정책적 대응이 절실하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 제보하기
[메일] jebo@ksmnews.co.kr
[카카오톡] 경상매일신문 채널 검색, 채널 추가
유튜브에서 경상매일방송 채널을 구독해주세요!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 / 150자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비밀번호를 8자 이상 20자 이하로 입력하시고, 영문 문자와 숫자를 포함해야 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