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회복’을 내세운 정부의 31조8천억원 규모 2차 추가경정예산안이 결국 정치 논란의 중심에 섰다. 현금성 소비쿠폰과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국책 SOC 사업과 국방 강화 예산은 대폭 삭감했다. 심지어 스스로 “어디에 쓰는지도 모른다”며 전액 삭감했던 대통령실·검찰·감사원 특수활동비까지 슬그머니 부활시켰다. 이쯤 되면 민생 회복이 아닌 정권 운영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여론 관리를 위한 ‘정치 추경’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우선 심각한 문제는 영일만횡단대교 건설 예산의 전액 삭감이다. 포항을 비롯한 동해안권 주민들의 숙원 사업으로, 연내 착공도 가능하다는 국토부의 보고에도 불구하고 ‘불용 가능성’을 이유로 1821억원이 추경에서 삭제됐다. 이는 정부 의지 부족의 방증이자 수도권 중심의 정책 편향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포항시의원들이 “명백한 역차별이자 지역 홀대”라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더 심각한 것은 국방 예산 삭감이다. 국방부가 추진 중이던 아파치 대형 공격헬기 구입을 포함해 905억원이 빠졌다. ‘평화가 경제’라는 구호 아래 국방력 강화를 뒷전으로 미뤘다는 비판이 거세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 안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국방에 손을 댄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국회 국방위원회에도 사전 설명 없이 은밀히 삭감을 추진했다는 사실은 더 큰 문제다. 국방을 정치와 거래한 셈이다.반면 정작 민생과 무관한 지출은 당당히 포함됐다. 운영비만 550억원이 들어가는 소비쿠폰 시스템, 상위 10% 제외 선별에만 50억원이 소요되는 행정비용 등 부대비용이 너무 크다. 이외에도 태양광 지원에 1128억원이 추가됐다. 이쯤 되면 실질적인 서민 지원보다도 퍼포먼스와 전시행정이 아닌지 되묻게 된다.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특수활동비의 부활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대통령실과 검찰 특활비를 `불투명하고 불필요하다`며 삭감했던 이재명 정부가, 이번엔 그 예산을 아무런 해명 없이 전액 부활시켰다. 당시 이 대표는 “살림 못하겠다고 하는 건 당황스러운 얘기”라고 비판했다. 지금 이 말을 고스란히 돌려줘야 할 시점이다. 결국 그 삭감은 국정 발목잡기용이었으며, 이번 증액은 자기모순이다.정부는 사과도, 설명도 없이 "막상 운영해보니 어려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그런 변명으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책임 있는 국정 운영은 과거 언행과 일관된 태도에서 출발한다. 야당 시절의 원칙을 집권 후 쉽게 뒤집는 행위는 신뢰를 무너뜨릴 뿐이다.이번 추경은 본래의 ‘민생’이라는 명분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필요한 곳에 재정을 쓰기보다 정치적 목적과 운영상의 편의를 위해 예산을 자의적으로 편성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안보를 등한시하고 지역을 소외시키면서도,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에는 관대하다면 이는 결코 책임 있는 정부라 할 수 없다. 민생을 위한다는 이름 아래 오히려 민심을 저버리는 역설, 그 종착지가 어디인지 정권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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